미쇼르(공평)공동체
"법도 시대가 바뀌면 바뀌어야 됩니다. 법이 과거에 갇힌 화석이 아니라 시대에 맞춰 살아 숨 쉬는 규범이 될 수 있도록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국회의 고귀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프로보노>에서 주인공 강다윗은 70년 동안 변하지 않은 '친족상도례'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국정조사장에서 외친 말입니다. 이 강렬한 일침은 비단 법조계뿐만 아니라, 오랜 전통과 관습 위에 서 있는 종교 공동체, 특히 오늘날의 한국 교회에 뼈아픈 성찰의 계기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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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윗이 비판한 '과거에 갇힌 화석'으로서의 법은, 본질을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은 교회의 율법과 전통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말하지만(히브리서 4:12), 오늘날 많은 교회 현장에서 말씀은 현대인의 고통과 고민에 응답하기보다는 과거의 해석에 매몰되어 박제된 문자로 전락하곤 합니다.
교회의 전통과 신학적 유산은 소중한 자산이지만, 그것이 고착화되어 오늘의 시대적 도전에 응전하지 못할 때 교회는 사회로부터 고립됩니다. '친족상도례'가 가족 내 범죄를 방치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듯, 교회의 낡은 관습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시대적 정의를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야 합니다. 진정한 종교적 권위는 과거를 고수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시대 속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의 본질을 '살아 숨 쉬는 규범'으로 새롭게 해석해낼 때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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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강다윗을 시대의 아픔을 읽어내는 '목회자'로,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프로보노(Pro Bono) 팀을 '교회 공동체'로 상정해 본다면 교회의 존재 이유는 명확해집니다.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라는 뜻처럼, 교회는 자신들의 안위가 아닌 세상의 아픔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강다윗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싸우듯, 교회는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의 낮은 곳에 흐르도록 대변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를 돕는 팀원들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각자의 달란트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살려내는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세상이 외면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법적·영적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회의 참모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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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강다윗이 소속되었던 거대 로펌은 오로지 승률과 수임료, 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자신들의 성을 공고히 하는 곳입니다. 이는 본질을 잊고 세속적 가치인 '성장'과 '성공', '기득권 유지'에 함몰된 기성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과 닮아 있습니다.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사유화된 권력을 휘두르고, 약자의 눈물보다는 강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은 예수가 채찍을 들어 정화하고자 했던 성전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참다운 교회란 건물이나 조직의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대형 로펌'식 신앙에서 벗어나, 현장의 고통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개혁의 시작입니다. 종교개혁의 핵심 원리인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는 명제처럼, 교회는 끊임없이 자신을 화석화하려는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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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국회의 사명이라는 강다윗의 말은, "말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말로 치환될 수 있습니다. 법과 종교가 과거의 유물로 남느냐, 오늘의 희망이 되느냐는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시대의 변화를 두려워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 그 변화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 소외된 이들을 효과적으로 사랑하고 보호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교회가 박물관의 화석이 되기를 거부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숨결이 닿는 곳마다 생명을 불어넣는 '살아있는 규범'의 공동체가 될 때, 비로소 세상은 교회를 향해 다시 희망을 노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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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집사님이 묵상하시면서 보고계신다고 찾아 보게된 드라마를 보다가, 오늘 우리의 교회를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시편 143:10에 주님이 인도하시는 ‘공평의(미쇼르) 땅‘, 미쇼르 공동체가 되는 교회이길 바라며, 지금 주님이 꿈꾸시고 세상이 바라는 교회의 정체성을 다시 새롭게 하길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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