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_ 103호
20140614 - 게토(GHETTO)
‘게토'라는 말은 원래는 유대인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은 도시의 거리나 구역을 가리켰던 말이다. 게토라는 이름은 1516년 베네치아에서 처음 등장했다.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화교들처럼 자신들이 함께 생활하는 지역이 있었는데 14, 15세기에는 이들에 대한 강제 격리가 이루어졌고 19세기부터 점점 사라지다가 1870년 로마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는 유대인을 전멸시키기 위해 집단 수용소 형태로 게토를 다시 만들었었다.
요즘에는 소수 민족들이 따로 모여 사는 도시의 특정 지역을 게토라 부른다. 특히 미국 등지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로 빈민 거주 지역을 의미하는 속어로 흑인 밀집 빈민가 등에서 흑인 특유의 문화와 맞물리면서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여 고유명사화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게토에 갇힌다'라는 의미로 사회에 융화되지 못한 이들의 사고나 문화 생각 등을 비꼬는 말로 쓰이고 있다. 아무래도 외부와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살다 보니 자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가치관과 세계관이 고착되어서 보편적인 인식의 범주에도 못 미치는 이상한 문화에 살면서도 자신들은 지극히 정상적이라 생각하는데 외부에서 봤을 때는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들이다.
최근 시국의 어수선한 틈새에 꼭 끼어 있는 종교가 있다. 우리 사회에 그런 종교인들이 많은 것도 한 이유이겠지만 유독 빠지지 않는 종교는 필자가 머물고 있는 종교다. 세월호에서도 그렇고(한편으로 억지로 그쪽으로 내어모는 감이 없진 않지만), 영화와 문화적인 충돌, 그 외 여러 시국 사안들에 꼭 연관되어 있고 무엇보다 자체 부정과 비리가 폭로되면서 뭇매를 맞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총리로 물망에 오른 자의 역사 인식이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밖에서 보면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으로 종교들이 크게 구분이 되겠지만 각 종교 내부에는 수많은 종파가 존재한다. 또 그 안에는 정통과 이단이라는 부분으로 또 나누어진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다양한 사람만큼 신앙의 형태에 있어서도 그렇게 다양한 모습의 종파가 존재한다는 것은 긍정적이긴 하다. 그러나 사실 부정적으로 보면 그런 종파의 나눔에는 스스로 게토에 갇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 신분을 밝히면 기도를 부탁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런데 이 기도에 대해서도 종교 종파마다 이해하는 면이 많은 차이가 있다. 보통은 기복적인 치성의 의미로 많이들 부탁하지만 사실 천주교와 기독교의 기도는 그런 의미는 거의 희박하다. 그러나 바른 이해가 없다 보니 이전에 무속 종교에서 치성을 드리는 기도를 그대로 기독교의 기도로 이해하고, 또 그런 기도를 부탁하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그럴 때마다 참 난처하다. 왜냐하면 개인 수양의 형태로서의 천주교의 기도와 자기 부인의 몸부림으로서의 기도가 기독교의 원래의 기도 의미이기 때문이다. 소통되지 않았기에 이해가 다른 한 예이다.
기독교 안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 중에 극명하게 갈려지는 부분이 있다. 행복을 위해서 개인이 열심히 하고 노력하고 변화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하는 부류가 있고, 그렇게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 없이는 궁극적으로 행복해질 수 없기에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다. 대개 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성향과 비슷하다. 하지만 또 그 안에는 더욱 복잡한 이해타산에 따라 나눠진다. 사람과 교회의 수만큼 많은 시각들이 사회나 종교 안에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사상이나 신앙이 게토에 갇히는 경우다. 특히나 신앙의 경우 게토에 갇힌 경우는 정통과 이단을 떠나 무서운 힘이 작용한다. 이성이 마비되고 사고하지 않으며 교주와 지도자가 하는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버리고 그렇게 형성된 신앙에 기초한 가치관이나 세계관 그리고 역사관들이 전통이 되고 불변의 진리인양 신봉 내지 맹종하게 된다. 그렇게 자라고 배우고 형성된 ‘관'은 개인과 가정과 소속된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런 이들이 국가의 지도자들이 되면 더더욱 그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건강하지 못한 가정, 사회, 종교 단체, 국가로 전락하기 쉬운 것이다.
게토에 갇힌 편협한 역사관, 가치관, 세계관은 가정에서부터 그리고 학교와 여타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고착되어 있다.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그것이 자꾸만 부정적인 산물로 불쑥불쑥 드러나고 있는데, 사회와 세상과의 소통을 끊어버리고 세상을 부인하는 게토에 갇힌 그 어떤 사상이나 단체나 종교든 그것은 건강하지 못한 결말로 귀결된다. 뼈아픈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마지못해 문을 열지만 전통으로 굳어진 것들이 바뀌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고 우리 사회 곳곳에 가로막힌 게토의 장벽들을 깨뜨려 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지금 여기저기 터지는 왜곡된 사상의 결과물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 다시 재건할 수 있는 희망이라도 생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