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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逆鱗)

쉴만한 물가 _ 102호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20140607 - 역린(逆鱗)


역린(逆鱗)은 용의 턱밑에 거꾸로 난 비늘을 뜻하는 말로, 그것을 건드린 자는 용의 노여움을 사 죽는다고 알려져 있다. 유래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법가사상서 한비자 중 역린 지화(逆鱗之禍)의 고사에서 나온다. 여기서 용은 나라의 왕이나 직장상사 같이 전권이 있는 지배층이나 윗사람을 의미하며, 그 사람의 눈에 들어서 실세가 되면 올라타는 것이다. 오늘날 역린은 윗사람의 약점, 콤플렉스 혹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권한을 뜻한다. 왕정시대에 왕은 자연 이러한 역린에 임감 할 수 있다. 상하 위계가 분명한 직장에서도 우리 사회의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도 개개인의 역린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별로 흥행은 되지 않았지만 지난 4월에 같은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었다. 민감한 시기에 개봉되어서 호불호가 갈렸지만 영화야 늘 그렇게 평가는 양분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시대극인 경우에는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해석 내지는 왜곡된 부분에 대한 교정이 있기에 짧은 영화에서 그러한 부분들을 다 교정하기는 힘들다. 마치 선동하는 문구는 하나이지만 그것에 대해 반박하려면 무수한 자료와 증거물을 요하고 결국 반박에 성공하더라도 대중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는 괴벨스의 말처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해석 내지 교정은 그만큼 어렵다.


영화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기 마련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협업을 통해서 마침내 한두 시간의 짧은 영상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그런 메시지에 관심이 없고 다른 영화적 요소들에 집중하다 보면 본질보다는 외적 요소로 평가가 갈리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어찌 되었건 관객의 욕망에 충족하기 위한 노력은 그런 관객이 있어야 제작자도 보람이 있으니 이런 간극들을 얼마나 잘 메꿔가느냐 하는 것은 감독의 재량에 달려 있다. 어찌 되었건 한편의 영황에서 단 하나의 메시지를 그것도 감독의 의도를 발견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한 두 시간과 만원 안짝의 투자가치에 만족한다는 이야기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 즉위 1년에 실제 암살 시도들이 있었는데 살아야 하는 자(왕), 죽여야 하는 자(암살자), 그리고 살려야 하는 자들(주변인)의 운명을 그린 영화다. 사도세자에 대해서도 단순히 당파싸움의 희생양으로 뒤주에서 죽은 사실로 동정 어린 시선이 있긴 하지만 그가 행한 많은 살인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진 않다. 영화에서는 그의 안타까운 죽음이 부각되고, 그의 아들로 왕위에 올라 여러 위협 속에 왕위를 이어가야 할 정조가 행한 지혜로운 처신에 집중한다. 그래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대사가 있는데 역린을 건드렸음에도 품어 살려 함께 나라를 세워간 정조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게 되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뀐다. 온 정성을 다해 하나씩 배워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극 중에서 정조가 예기의 중용 스물세 번째 장에 있다고, 문자를 넘어 실제를 논해야 한다면 주장하며 환관에게 외우라고 한 대사다. 아마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선거 전에 시국의 여러 사안에 대한 촛불이 힘을 내지 못하고 있던 시기, 세월호의 영향에 눈물 흘려야 했던 때에 나온 메시지였다.


민주국가이나 아직 왕정국가에 사는 것 같은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여전히 대통령의 역린을 교묘히 이용하는 무리들이 득세하고 진실과 정의는 더 멀어진 듯한 시대에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개혁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는 너무도 많다. 여전히 잊지 말아야 하고 계속 밝혀지고 바로잡아가며 세워가야 할 불의함이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 있다. 오히려 권력은 잡은 이들은 국민의 역린을 건드려 버린 현 상황에서 자신들의 부정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늘이 사람에게 준 것을 본성이라 하고,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 한다.” 예기의 중용에 있는 내용이다. 오늘도 이 가르침을 하나씩 잘 배워 간다면 세상은 바뀐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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