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목자의 음성에 가슴이 설레는가?

요한복음 10:1-21

요한복음 10:1-21 그대, 목자의 음성에 가슴이 설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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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명제: 참된 신앙은 나를 지배하려는 세상의 거친 소음에서 벗어나, 내 이름을 다정히 부르시는 선한 목자의 음성에 응답하며 생명의 풍성함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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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자기를 따르라는 소란스러운 외침으로 가득합니다. 저마다 자기가 길이고 진리라고 강변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개는 양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기보다 자기의 배를 채우려는 ‘절도며 강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담을 넘어 들어와 우리를 위협하고, 공포와 욕망이라는 채찍으로 우리를 길들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대문으로 당당히 들어오셔서 우리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십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 10:3)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집니다. ‘각각 불러 인도한다’는 것은 우리가 익명의 군중에 매몰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마주 서 있음을 의미합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가 말한 ‘나와 너’의 인격적인 사귐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신앙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은 대개 종교의 거대 담론이나 딱딱한 교리적 요구에 지친 이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대단한 성과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길 잃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아무개야” 하고 이름을 불러주실 뿐입니다. 그 음성을 알아듣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감옥에서 해방됩니다.

주님은 당신을 ‘양의 문’이라 말씀하십니다. 문은 경계이자 통로입니다.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에서 생명의 푸른 초장으로 건너가게 하는 유일한 틈입니다. 적극적인 신앙이란 어떤 열광적인 행위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이신 주님이 우리 앞에 먼저 가실 때 그 발자국을 신뢰하며 따라가는 ‘순명(順命)’의 걸음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에 타인의 음성을 따르지 않습니다. 우리 영혼의 귀가 세상의 잡음이 아닌 하늘의 선율에 예민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는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삶이 고단하여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을 때, 우리 곁에는 삯꾼이 아닌 선한 목자가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삯꾼은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지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제 목숨을 버립니다. 연약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무모한 내어줌’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양이기 때문에 끝내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지극한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두고 다시 수군거립니다. “귀신 들렸다” 혹은 “미쳤다”며 비난합니다. 진리가 세상의 상식과 충돌할 때 일어나는 소란입니다. 그러나 목자의 음성을 아는 이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세상의 거친 요구들에 귀를 닫고 고요히 주님의 음성을 기다려 보십시오. “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그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그 다정한 음성이 우리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할 것이며, 우리는 그곳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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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1-21 삯꾼의 소음을 넘어, 생명의 문을 여는 ‘다정한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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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우리를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세상의 매서운 소음을 뒤로하고, 우리 이름을 다정히 부르며 생명의 꼴을 먹이시는 선한 목자의 음성에 온전히 귀 기울이는 '안식의 묵상'을 통해 그분의 한없는 은혜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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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붙었던 대지 아래로 보이지 않는 생명의 수맥이 흐르고, 기어코 연둣빛 새싹을 밀어 올리는 경이로운 3월의 봄날입니다. 저마다의 무거운 삶의 짐을 짊어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모호함과 짙은 회의 속에서도 여전히 진리의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께 생명이신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은 참으로 냉혹합니다. 사람의 가치를 '쓸모'와 '효용성'으로만 평가합니다. 능력이 있을 때는 환호하지만, 쓸모가 다했다고 여겨지면 가차 없이 폐기 처분하는 무서운 폭력이 공기처럼 떠다닙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10장의 본문은, 바로 그런 세상을 지배하는 ‘삯꾼’의 논리와 우리를 온전한 생명으로 이끄시는 ‘선한 목자’의 사랑을 극명하게 대비하여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양의 문"(요 10:7)이자 "선한 목자"(요 10:11)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의 배경에는 직전 장인 요한복음 9장에서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자를 가혹하게 내쫓아버린 바리새인들의 횡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이라는 앙상한 모범답안에 갇혀, 상처 입은 양을 돌보기는커녕 정죄하고 억압하는 '절도며 강도'(요 10:8)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반면, 삯꾼은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납니다(요 10:12). 양이 자신의 소유가 아니기에,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들입니다. 세상의 인연이 대개 이러합니다. 우리를 평가하고 재단하는 세상 삯꾼들의 말은 얼음장처럼 차갑지만, 예수님의 말씀에는 우리의 얼어붙은 영혼을 녹이는 펄펄 끓는 ‘사랑의 온도’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 어느 목자가 보잘것없는 양 떼를 구하려고 맹수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집니까? 이것은 경제적 논리나 세상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거룩한 낭비이며, 지독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저 멀리 높은 보좌에서 우리를 관망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오물 같고 냄새나는 뻘밭 같은 현실 속에 기꺼이 뛰어들어오셔서 우리를 위해 ‘끙끙 앓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소란하고 위협적인 세상 속에서 삯꾼의 거짓말에 속지 않고 선한 목자의 음성을 따라가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은 “안식”입니다.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고 성과를 내라고 다그치는 세상의 억압을 거절하고, 사람을 부품처럼 버리는 세속의 탐욕으로부터 물러서서 주님의 품 안에서 영혼의 긴장을 푸는 거룩한 쉼입니다. 묵상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대화”입니다.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시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나 역시 그분의 음성을 알아듣고 반응하는 깊은 친밀함의 시간입니다.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흠이 많은데, 주님이 나 같은 양을 끝까지 책임져 주실까?” 하며 회의에 빠진 분이 계십니까? 남들처럼 번듯한 헌신을 하지 못해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져 위축되어 계시지는 않습니까? 내가 너무 연약해서 자꾸만 길을 잃는 것 같아 자책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우리의 구원과 안전은 양인 우리가 얼마나 똑똑하게 길을 잘 찾고 목자를 꽉 붙잡고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잃어버린 양을 기어코 찾아내어 어깨에 메고 돌아오시는 선한 목자의 그 맹렬한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요 10:14)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약함과 상처,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눈물까지도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십니다.

이제 내가 더 완벽해져야 한다는 종교적 강박과 무거운 짐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두려움을 조장하는 세상의 차가운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속삭이시는 주님의 다정한 음성에 영혼을 맡기십시오.

이번 한 주간, 세상의 무자비한 평가 기준을 훌훌 벗어던지고,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와의 깊은 대화(묵상) 속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넉넉한 참 안식과 기쁨을 누리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불안한 밤에 칭얼거리는 아이가 듣는 ‘어머니의 자장가’와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두려움을 거두고 평안히 잠들 수 있는 것은 자장가의 가사 뜻을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음악적 구조를 분석해 냈기 때문이 아닙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등을 다정하게 토닥여주며 노래를 불러주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를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임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위협이 이리 떼처럼 몰려와 우리를 불안하게 할지라도,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의 자장가 같은 은총의 말씀에 영혼의 귀를 기울이고 묵상할 때, 우리는 마침내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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