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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만한 물가 - 66호

20130621 - 몫


몫몫이나 돈 몫, 말 몫, 나눔몫에서처럼 여럿으로 나누어 가지는 각 부분을 말할 때 쓰는 ‘몫’이 있고, 몫 일등 과업이나 해야 할 책임들을 얘기할 때에도 ‘몫'이라는 말이 쓰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도 구분되지만 일상에서 ‘몫'은 챙겨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보통은 챙겨할 몫으로 많이들 사용하지만 해야 할 책임으로도 혼용되기 때문에 그 상황들을 잘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보리밥에 한 줌 넣은 흰쌀밥이 솥에 핀 밥꽃은 아버지나 막내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바깥일을 나가신 어른들이 오시기 전에 하지감자를 숟가락으로 긁어놓아야 할 일은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이 해야 할 몫이었고, 소 꼴도 한 망태 베어 놓는 일도,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일도, 간혹 내리는 비 설거지를 하는 것 등등해야 할 몫이 있었고, 그렇게 각자의 몫을 조금이라도 거들어야 분주한 가정이 조금이라도 제대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독일 어느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유태인을 잡아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므로./ 그들이 동성애자들을 잡아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므로./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잡아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땐,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 글을 패러디한 우리나라 어느 시민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들이 민주주의 지지자들을 탄압할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열성 지지자가 아니므로./ 그들이 가난한 서민을 탄압할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가난한 서민이 아니므로./ 그들이 공장 노동자들을 탄압할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장 노동자가 아니므로./ 그들이 나를 탄압하러 왔을 땐,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 근현대사에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서 싸울 때 제 몫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한켠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탄압하고 비웃고 조롱하면서 그 몫을 외면한 사람들이 늘 공존했었습니다. 어느새 30여 년이 다 되어가는 87년 6월 항쟁의 시기에도 꽃병과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간 이들이 있었던 반면 도서관에서 다방에서 다른 일들을 하는 이들도 있었고, 학생들이 부모님들이 어렵게 등록금 마련해 학교 보내주면 공부나 하지 쓸데없이 정치에 관여한다고 뭐라 하면서도, 정작 학생들이 전경에 의해 괴롭힘 당하면 왜 얘들을 그렇게 하냐고 최루탄에 눈물 흘리며 함께 손을 들어주는 그런 일들도 있었습니다.


시대마다 세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챙겨야 할 몫도 해야 할 몫도 있습니다. 그러나 몫을 제대로 챙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몫을 제대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몫은 무엇인가? 투표용지 한 장 시민의 손에 쥐어주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이들이 희생해서 얻은 것을 비열한 무리들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타락하며 민주주의를 유린하면서도 온갖 권모와 술수로 덮어 국민을 우롱하는 상황에서, 역사의 주인은 여전히 제 역할을 감당하는 이들의 몫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각자의 몫을 그 어느 때보다 다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몫'이라는 단어가 '목숨'이라는 말의 축약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은 목숨처럼 몫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선거법이나 추징금 공소시효도 다 되어간다 하고 거기다 6월도 다가는 즈음 이어 안타까운 마음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목숨처럼 소중하게 제 몫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 퍼시 - 작자 미상


이건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하자.

그냥, 이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이 시대에 태어난 우리가 그냥 묵묵히 해야 할 책무라고 생각하자.

87년 그 날에 우리가 눈물로 뛰어다니며 열었던 이 길들을

오늘에 우리가 다시 열고 있다고 그렇게 믿자.


동지들아, 나는 너희들이 참 좋다. 고맙다.

세상에 타협하지 않고 이렇게 꿋꿋하게 버티어준 너희들이 너무 든든하다.

그때 전대협의 얼굴이었던 총학생회장들이 모두 변절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타락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절망했었다.

하지만 역시 그 때나 지금이나,

전대협의 깃발을 지키는 동지들은 우리 처럼 이름 없는

묵묵히 꽃병을 나르고 파이를 들고 백골단과 싸우던,

바로 우리다.

우리가 바로 역사의 주인공이다.

고맙다, 든든하다, 사랑한다. 내 동지들아.

눈물이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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