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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ul 05. 2017

순례자

쉴만한 물가 - 105호

2010704 - 순례자 


20여 년 전쯤 지도하는 학생들과 함께 고흥에서부터 여수까지 순례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더운 여름이었기에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에서 아스팔트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히고 신발 위로 올라오는 열기는 금세라도 발을 데울 것 같았다. 오히려 비가 오는 시간이 더 걷기 쉬웠다. 가야 할 이유가 있었고, 목적지가 있었으며 동행도 있었고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여력도 있었기에 하루하루 순례의 여정이 목적지에 가까울수록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경험들을 가슴에 쌓고 나눌 수 있었다. 오래도록 그 여정에서 느꼈던 느낌과 이야기들과 풍경들 그리고 여타 소소한 일들은 쉬이 잊혀지지 않는 경험이었다.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와 작가와 사람들이 인생을 논할 때 순례의 여정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톨스토이, 파울로 코엘료,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서 등등 많은 이들이 순례를 통해서 인생을 그린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네 발로 기어 두발로 서다가 다시 세 발로 걷다 생을 마감하는 여정, 유아기와 청소년기와 청년기와 장년에 이르러 노년이 차는 여정, 생로병사의 시간과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인생의 굴곡들은 모두가 순례의 여정과 일맥상통한다. 우린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수용과 거부 그리고 진보와 퇴보, 망각과 회고, 변화와 성숙을 거듭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많은 만남과 관계 속에서 사건과 이야기들을 양산해 가고 그런 이야기가 전해지며 전통이 되고 전설이 되어간다.  


순례는 보통 종교적인 의무나 신앙의 고취를 목적으로 시행한다. 기독교의 성지순례가 그렇고, 일생에 한번 메카를 향한 순례를 꿈꾸는 이슬람의 순례도 마찬가지이다. 대개 선각자들이 살거나 걸었던 그 길들을 따라 걸으므로 그들의 가르침을 따른다거나, 그를 추종해 간다거나, 선각자들의 여정에서 얻었던 어떤 것들을 함께 얻어보기 위함도 있고, 이러한 일련의 시간들을 통해서 책이나 귀로만 들었던 일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현장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을 통해서 인생의 선각자들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보고자 하는 바람 속에서 시행된다. 효과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여정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최근에는 국토를 순례하는 일을 통해서 역사를 배운다거나, 현실의 문제에 대한 이의 제기의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이 땅 곳곳을 밟아 가면서 그 여정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몸으로 보여주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를 기대한다. 그래서 이렇게 전달된 메시지는 순례를 하는 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 모두에게 큰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 여정이 길수록, 더 힘겨울수록, 그리고 더 극한의 고통의 여정일수록 그 효과는 더 크게 마련이다. 온몸으로 극한의 고통을 감내하며 순례하는 이들의 여정을 외면한다는 것은 그래서 웬만한 비정함 아니고서는 가슴을 울릴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전국 도보순례단이 서울에서 대구에서 부산에서 출발하여 진도 팽목항을 향해 가던 중에 우리 지역도 지나갔다. 먼발치에서나마 바라보고 응원하며 한편으로 비라도 보슬거려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아직도 그 안타까움이 비로 적셔지는 것 같아서 가슴은 여전히 아파온다. 이젠 그 또래 아이들을 향하여 뭐라 하기 힘들다고도 하고, 제발 건강하게만 무사히 자라라 하는 것이 인사이며, 그런 예쁜 우리 아이들이 끔찍한 일을 당했을 것을 생각하면 이 트라우마가 결코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아니 잊혀져서는 안 된다. 국정조사랍시고 이미 언론을 통해 다 드러난 사실을 앵무새마냥 뇌까리는 방송을 보고 분통이 터져서 이 땅 곳곳을 밟아 그 애통한 마음의 흔적과 생채기들을 온몸으로 이 나라에 그려보고 싶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날이 없었다면 지금 함께 웃고, 떠들고 때로는 화도 내고 이러저러한 일들로 여름을 맞이했을 터인데 문득문득 지난날들이 회고되는 유족들에게 지난여름의 추억들은 순례의 여정 가운데 새록새록 마음을 괴롭혔으리라. 많은 이들이 잊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리본 하나 마음 씀씀이 하나 행동하나 여전히 진행 중이기에 두 눈 부릎뜨고 이 순례의 여정들을 채워가야 한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여전히 돈과 권력에 눈먼 이들이 탐욕스러운 거드름으로 진실을 덮으려 하는 그 거적데기를 젖히고 이 땅 곳곳에 함께 순례하는 이들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린 모두 이 시대를 같은 나라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아가는 순례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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