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160호
20140620 - 감자 이야기
어른들이 한창 논과 밭에서 기승을 부리며 자라난 잡초와 김을 매는 일이 많아지던 시기에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감자를 깎는 일이었다. 지금은 간식거리로 먹거나 요리에 간간이 쓰이는 감자이지만 그 시절엔 한 끼 식사이거나 부족한 밥에 함께 넣어 먹었던 주식에 가까웠다. 그래서 지금처럼 껍질을 벗기지 않고 피감자로 삶아 먹기보다는 껍질을 잘 벗겨내야 밥에도 넣고 그냥 삶아서도 먹기가 좋았기에 이맘때 학교에 다녀온 후에 해야 할 집안일 중 하나는 감자 껍질을 잘 벗겨 놓는 일이었다. 그 시절 말로는 '감자 깎는 일'이었다.
지금에야 감자를 깎기 좋은 기능성 칼이 있어서 쉽게 껍질을 벗겨내는데, 그때는 일명 '닳아진 숟가락'이 제일이었다. 그냥 숟가락이 아니라 '닳아진' 숟가락이다. 그것도 스테인이 아닌 놋숟가락이었다. 감자를 손에 잡고 놋숟가락을 대고 긁어서 껍질을 벗겨냈는데 신기하게도 숟가락이 닳아서 초승달 모양으로 숟가락 머리가 닳아져 간 것이다. 놋이 닳아서 그런 모양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감자를 깎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숟가락 통에 있던 그 신기한 것이 딱 감자를 깎는 도구라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이다.
왼손과 오른손 중에서 어떤 손잡이냐에 따라 숟가락이 닳아진 방향은 달라졌다. 그리고 아이들이 많은 집에서는 그런 숟가락이 한두 개 더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닳아진 양은 서로 달랐다. 그만큼 벗겨낸 양이 달랐기에 더더욱 그렇다. 서로 좋은 숟가락을 차지하기 위해 투정도 부려 보았다. 닳아진 부위가 클수록 감자에 접촉하는 면이 더 많기에 더 빨리 깎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열이 정해진 상태에서 감히 그 연장을 탐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한편으론 그렇게 형님이나 누님이 일을 더 많이 해서 내 일이 줄어드는 일이기에 주어진 분량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고집 피울 일은 아니었다.
산골 작은 동네에는 전설이 생겼다. 무슨 대단한 전설은 아니고 누구네 아이는 감자 한 양푼 깎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뭐 그런 전설이다. 무슨 감자를 깎는 대회를 열지 않았기에 그런 소문이 나게 된 내력을 보면 똑같이 하교를 하고 집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난 후에 함께 놀기 위해서 모이다 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부터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이 늘상 정해지기 마련이다. 으레 모두들 집에 돌아가면 당연히 감자를 깎는 일이 공통으로 주어진 과업이다 보니 자연 동구 밖으로 나오는 시간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빨리 일을 처리하고 왔는 지를 가늠케 된 것이다. 물론 그 집 식구들의 숫자가 많으면 깎는 양이 달라서도 그렇겠지만, 대부분 다른 집의 사정들을 뻔히 아는 터라 그 양도 가늠케 되는데 훨씬 더 많이 깎아야 하는 집 아이가 빨리 나오는 것이면 분명 그는 거의 달인의 경지에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나온 아이들의 얼굴에는 재미있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있었다. 특히나 콧잔등에는 더욱 그런 현상이 많았는데 바로 하얀 점들이 주근깨처럼 얼굴에 덮여 있다는 것이다. 어른들 분으로 장난치다가 그것이 밀려난 것이 아니라 감자 때문이었다. 감자 껍질을 닳아진 숟가락으로 긁다 보면 당연히 녹말가루가 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을 빨리 깎기 위해서 속도를 내다보면 녹말이 얼굴에 튀는 일쯤은 개의치 않고 가속도를 내면서 감자를 긁어 댄다. 이를 '뺑오리(팽이) 돌리듯 감자를 돌려 깎아 댔다'라고 했다. 그런 전설 중에 우리 큰 형님도 포함이 되어 있다. 늘상 장남 장녀가 동생들을 거느리고 이런 일을 해야 했고, 누구보다 더 할 일도 많았고, 더군다나 책임을 맡은 자로서 당연했다. 거기다가 감자를 깎는 일 외에 아침 일찍 깔(소 먹이는 풀)을 베어 두지 않았다면 학교 다녀와서 그 일까지 해야 했기에 더더욱 감자 깎는 속도는 그만큼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기에...
하지감자를 왜 그렇게 부르는지 농사의 절기를 배우게 된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기에 그 시절 여름날 깎는 감자는 당연히 하지감자라 하는 줄로만 알았다. 막 캐낸 감자는 닳아진 숟가락으로 긁지 않아도 껍질이 연해서 커다란 그릇에 담고 그냥 비벼서 벗겨내는 경우도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왜 매번 이렇게 하지 않나 생각도 했었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기의 감자가 따로 있었던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시골집에서 그 닳아진 숟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숟가락이 보일 때마다 들려주던 전설 같은 이야기들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실 어른들도 어느새 노쇠해지셨다. 형님과 누님들 그리고 동구 밖에서 함께 놀던 그 아이들도 어느새 다들 어른이 되어서 감자 이야기는 어느새 추억이 되어 있다. 주식이 아닌 간식이 된 감자처럼 감자 하나에도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자리는 다른 것으로 대체되거나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감자처럼 내게 주어진 일들은 점점 늘어만 간다. 그런 일들에 더 능숙한 자가 되기 위해서 오늘도 부지런히 콧잔등에 땀을 내며 긁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