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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ul 05. 2017

더 나은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용기와 실천으로만

쉴만한 물가 - 161호

20150627 - 더 나은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용기와 실천으로만 가능하다


조선시대의 역사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로 분분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당수는 승자와 일제에 의해서 왜곡되거나 평가절하된 인식이 우리도 모르게 자리하고 있다. 하여 당쟁으로 얼룩졌다거나, 왕조가 별 볼 일 없었다거나, 백성들의 수준이 게으르고 미개하여 개조가 필요했다는 등의 낭설 내지 망발이 공공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도 단일 왕조로서 500년의 역사를 이어온 나라가 극히 드물다고 한다. 거기다가 실록의 분량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양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당쟁으로 얼룩졌다고 하는 것도 상당수는 과장되거나 폄하하는 인식으로 여겨진다. 백성들의 수준도 수많은 상소와 여타의 민란 등에서 보여주듯이 왕조가 잘못되거나 조세의 불공정에 대해서는 저항으로 맞섰다는 것으로도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일부의 내용에서부터 전체 역사에 대한 재평가 내지 인식을 위한 작업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제가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한 식민사관을 우리는 그대로 우리 역사로 배우며 스스로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것이 사실이다.  


조선의 건국 과정을 그린 많은 책들과 사극들을 통해서 부각되는 여러 인물들에 대해 재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어떤 인물과 사건의 배경에 대해서 고증과 사료를 통해서 재평가되기도 한다. 그런 인물 중에서 실로 오래도록 매도된 인물이 있다. 조선의 사상인 성리학의 체계를 잡고 완성한 사람이기도 하고, <<조선경국대전>>이라는 책을 통해 정치제도를 수립하고, <<경제문감>>이라는 책을 통해 과전법 등의 경제체제를 세웠으며, 한양의 도시를 설계하고, <<고려사>>를 집필하며 전 왕조의 역사에 대한 정리도 했고, 사병을 혁파하여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여 요동정벌을 추진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실로 사상과 정치와 경제 그리고 여타 조선 건국의 이론적 바탕을 구축하고 재상정치와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의 기반을 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정도면 조선의 역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500년 동안 간신과 모사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그는 바로 삼봉 정도전이었다.  


역사와 인물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평가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삼봉에 대한 평가는 승자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가 좀 더 겸손하고 포용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개인적인 욕심은 과연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를 제거한 태조 이방원에 의해서 삼봉은 철저하게 간신으로 매도된다. 아이러니하게 이방원은 정도전은 폄하하고 정몽주를 대신 충신으로 부각시킨다. 이를 통해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충성을 강요하기 위한 근거로 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왕권을 강화하여 조선을 왕의 나라로 삼고자 한대 반해 정도전은 철저히 조선을 백성의 나라로 애민 민본 정신을 추구하며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고 했다.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생각으로 정치는 벼슬아치들의 입신양명의 수단이 아니라 농사짓는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생각들은 그가 오랜 귀양살이에서 철거민처럼 떠돌며 백성들의 삶을 깊숙이 경험했기에 누구보다 더 간절하게 이런 정책들을 세울 수 있었다. 조선시대 백성들의 입장에서 개혁정책을 편 이들은 대부분 직접 백성의 삶을 경험한 자들이었다. 광해군의 대동법이나,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대동법의 아버지라 일컫는 김육 등도 모두 어떤 형태로든 백성의 삶을 경험해본 사람들이었다. 책상머리에서 책으로만 읽거나, 아예 그런 경험 없이 권력과 지배자로만 살았던 이들은 결코 민초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기에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기에 말 한마디 정책들 하나하나 어설프게 나올 수밖에 없다.  


조선의 역사를 크게 초기에는 왕권이 강한 시기로, 중기에는 재상 정치로, 후기에는 민의 힘이 부각되는 시기로 본다. 하지만 봉건 세력들은 이러한 민강의 시기에 외세를 끌어들여 억압하고 식민지배를 수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한다. 이런 권력자들은 친일, 반공으로 이어져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하게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늘까지 권력을 유지해 온 것이다. 지금이 분명 봉건시대는 아닌데 아이러니하게도 민주공화국이라 하면서도 왕정시대처럼 살아가고 있다.  


오늘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서 삼권분립이 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입법부의 구성원인 국회의원이 행정부의 수장에게 공개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왕정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 이 나라에 자행되고 있다. 행정부 수장은 자신이 왕인 줄 알고 자신의 권력을 자신을 위해 휘두르고(아닌 그런 권한을 가진 여왕인 줄 착각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변하여 입법과 의정활동을 통해 행정부를 돕거나 견제해야 하는데, 천상 왕과 재상의 세력다툼 속에 꼬리를 내리며 제 역할과 권한을 망각한다. 그 속에서는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치밀한 손익계산이 이뤄지고 있고 그 와중에 국민은 안중에도 없음에 틀림없다.  


과연 이 나라에 애민 민본의 정책과 정치를 하는 이들이 있는가? 더 근본적으로 정치 토양이 이런 근본적인 순수함을 지켜서 정치가로 사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 유구한 역사와 치욕스러운 아픔들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짧은 시간 동안 경제적 성장을 이뤘지만 정치에 있어서는 아직도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이상한 지배자에게 익숙하고 강요당한 예속과 굴욕적인 고역에 비천해진 우둔한 백성으로 살아가려 한다. 조선 후기에 발생된 민란으로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때 지배자들이 자행한 일을 기억한다면 오늘날 우리 정치사에 벌어지는 일들을 직시하며 깨어있는 민중으로 살아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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