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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ul 06. 2017

비(雨)

쉴만한 물가 - 20호

20120706 - 비


오랜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가 옵니다. 우산장사 아들을 둔 어미나, 어렵게 모를 심어 두었는데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에 타들어가는 모를 보며 가슴까지 찢긴 농부에겐 반가운 단비일 것입니다. 소금 장사를 둔 어미에겐 한 켠으로 걱정도 되고, 슬픔에 있는 자들에겐 하늘이 대신 울어주는 위로의 비이기도 할 것입니다. 


비의 종류는 참 많습니다. 오는 계절에 따라서, 그리고 비의 모양이나 양을 따라서, 농사와 연관되는 종류, 어부들과 관련된 종류들, 산에 사는 사람들이 말하는 비, 그리고 때를 따라서 장소를 따라 이름 지어진 비의 종류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가 단비라고 말하는 것은 시기적절하게 내리는 반가운 비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복비라고도 하고, 약비 또는 꿀비라고도  합니다. 이런 단비도 채찍 비와 장대비가가 되어서 폭우가 되면 또 여기저기 피해를 주기도 할 수도 있습니다. 황순원의 소설에 나오는 소나기는 청초한 사랑의 연결고리가 된 반면 멜로드라마나 영화의 소낙비는 사단의 전초가 되기도 합니다.


종류만큼이나 사연도 많은 것이 비이지만, 사람도 그렇게 많은 부류가 있습니다. 여우비처럼 잠깐 뿌리다 만 비 같은 사람도 있겠고, 도둑비처럼 모래 살짝살짝 내리는 비 같은 사람들, 해비로 호랭이 장가가는 것처럼 가늠하기 힘든 비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란비처럼 오래오래 곁에 있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른 비처럼 있으나 마나 한 사람들, 우레 비처럼 소란스러운 사람들, 찬비처럼 차가운 사람들, 누리비처럼 오래오래 내리는 비 같은 사람들... 바람비, 억수, 웃비, 모다깃비, 이른 비, 늦은 비...


긴긴 장마가 시작되면 방안에서 하는 놀이 지겹고 끓어오르는 열정을 삭이지 못해 아이들은 안달이 납니다. 산으로 들로 그리고 냇가로 다니며 한참이나 놀아야 할 그즈음에 장마가 시작되면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지금에야 텔레비전에 컴퓨터가 있어 비 오는 날이 더 좋지만 그 시절엔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에 문간에서 비 오는 마당을 향해 그렇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비야 비야 오지 마라 내일모레 떡해 줄게 비야 비야 오지 마라 내일모레 콩 볶아 줄게" 아이들과 마음이 맞으면 합창을 하기도 했지만 이내 저쪽에서 심술궂은 녀석들이 "야 그 노래해도 소용없어!" 합니다. 때론 되는 일이 없고 오래도록 그러한 일이 반복되어도 어느 날 쨍하고 해 뜰 날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벤 풀 위에 내리는 비"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단비같이 적절한 시기에 내리는 비를 말합니다. 사연 많은 궂은비와 더위로 인해 짜증이 나더라도, 곁에 있으므로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리는 동심원 물결처럼 멀리 있는 이들에게까지 잔잔한 힘과 위로를 주는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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