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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ul 10. 2017

갈라디아서 04:21-31 율법이 말하는 유업을 얻을

갈  04:21-31 

갈라디아서 04:21-31 율법이 말하는 유업을 얻을 자녀가 되는 길


바울은 율법을 가지고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을 향해 율법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브라함의 두 아들의 예를 들어 말하면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변론하고 있다. 


* 변론의 내용 (1:11~4:31) : 바울은 총 네 가지 변론을 차례로 이어간다. 

 1. 변론 1(부차주제) : 복음의 출처 - 인간/하나님 (1:11~2:14)

 2. 변론 2(주요주제) : 복음의 내용 - 율법의 행위/그리스도의 신실함 (2:15-4:11)

 3. 변론 3(부차주제) : 거짓 교사 - 나(바울)를 따라 변화되라 (4:12-20)

 4. 변론 4(주요주제) : 율법 아래 - 율법으로 볼 때, 자유있는 여자의 아들 (4:21-31)

 - 바울의 변론은 크게 두 가지 변론 주제를 다루는데, 먼저 부차적인 주제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유대주의자)에 대한 것이고, 주요주제는 바른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율법과 관련해서 다룬다. 이렇게 두 가지 주제에 대한 변론을 각각 두 번씩 네번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4:7에서(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했다) 언급한 종과 아들 중에 유업을 이을 자에 대한 두 번째 변론에 이어 다시한번 주요 주제에 대한 변론을 율법을 통해서 마무리 하고 있다. 


21절 (논제) 율법이 말하는 바를 제대로 들으라

그토록 율법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향하여 바울 사도는 그렇다면 율법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 되묻고 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지금 갈라디아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이들에게 율법은 어떤 의미인가? 바울사도가 봤을때 이들은 율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고, 율법을 제대로 보고 듣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율법 그 자체가 자신들의 의나 권위를 지키는 수단이 되어버리고 법의 정신에는 관심도 거리도 멀어져 버린 상태로 보인다. 그러므로 죄를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그 율법을 소유하고 가지는 것 자체만으로 언약백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나, 율법을 지켜야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그것을 의의 백성이 되는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로서 과연 그 말씀을 옳게 깨닫는가? 아니 깨닫기 전에 바로 보고 읽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먼저일 것이다.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고 인도를 받고 살아가는 일도 중요하고, 그 말씀을 바로 알아야 우리의 삶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는 정도를 행할 수 있고 거짓된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22-23절 (제시) 아브라함의 두 아들 중에도 육체를 따라 난자와 약속으로 말미암은 자가 있다. 

아브라함이 낳은 두 아들 곧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는데 여종 하갈에게서 낳은 아들과 자유 있는 여자 하갈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다. 여종은 육체를 따라 낳다고 하고 자유 있는 여자는 약속으로 말미암아 낳았다고 말한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서 자손을 약속하셨다. 하지만 오래도록 자식이 없자 아브라함은 임의로 여종에게서 이스마엘을 낳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는 약속의 자손이 아니라 한다. 이는 아브라함이 육체로 낳은 아들인 것이다. 마침내 모든 가능성이 끊어진 상태에서 사라의 태를 열어 하나님께서 이삭을 낳게 해 주셨는데 이가 바로 하나님이 약속한 아들이었다. 육체를 따라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육체를 따라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마침내 낳은 아들이 이삭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 아들을 약속의 자손이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의 언약을 진정으로 이루는 자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자녀들이다. 율법에 묶여 있으면 결국 종이 되는 것이다. 누가 진짜 종이고 아들이냐? 이스마엘은 종에게서 나서 종이다. 사라를 통해서 난 이삭이 약속의 자손이다. 

지금도 육체와 약속 사이에서 우리는 믿음의 여정을 지나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자니는 인내로 경주하지만 불신하는 자들은 육체적인 욕망에 이끌려 자신이 주도해서 삶이 이끌어간다. 처음에는 일이 이루어지고 뭔가를 남기는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의 탐욕으로 점철된 욕망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구원을 받았으며 의의 백성이 되었다. 다시오마 약속하신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이 성도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대로 이루기까지 우리를 기억하시고 복주시는 그분의 섭리를 신뢰하면서 이해할 수 있을 때나 그렇지 않을때에도 약속을 신뢰한 수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24-27절 (해석) 첫 언약으로는 종을, 새 언약으로는 자유자를 낳는다. 

바울사도는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육체와 약속으로 비교해서 말한 것은 비유라고 하고 여종과 자유있는 여자를 두 언약으로 연결한다.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 하갈은 시내산과 지금의 예루살렘으로 연결한다. 그러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아들을 낳은 자유자 사라가 지금 우리의 어머니라 한다. 

지금 약속의 후손은 바로 교회된 우리들이다. 지금의 예루살렘은 오히려 종을 낳은 하갈과 연결하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은 자녀가 참된 약속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다. 첫언약과 새 언약(그리스도의 언약)으로 연결할 수 있다. 26절 이후에 언약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새로운 언약으로 말한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새언약을 이루는 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새언약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언약으로 보인다.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강요하는 지금 있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종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이들은 아브라함의 자녀들로서 약속된 복을 받은 자유인이요 언약자손이다. 이사야 54:1-2절을 인용한 구절을 통해서 사라의 예를 들어서 비록 약속이 더디 이루어져 잉태하지 못하고 산고를 모르고 외치고 있지만 마침내 약속을 이루실 그날이 되면 수많은 약속의 자손들을 낳게 된다.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잉태치 못한 여인이 보게될 약속의 자녀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고 마침내 모든 것이 성취된다.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도 그리고 이후 믿음의 선진들에게 주셨던 약속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이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약속하신 것들도 역시 이루실 것임을 믿으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약속을 기다리는 자들로 하나님이 시간을 살아가는 자요, 주 안에서 자유자요 약속의 자손이다.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자들이 예언의 말씀을 이룬 자들이다. 


28-31절 (적용) 약속과 성령을 따라 난 자녀가 유업을 얻는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 형제라고 부르고 그들이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임을 재확인한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박해한 것같이 지금도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이 약속의 자녀들을 박해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육체를 따라 난 종의 아들은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한다. 교회된 우리는 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육체로말미암지 않고 아브라함의 피가 아니라 약속을 따라 난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곧 오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약속의 자녀다. 약속의 성취가 그리스도이기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난 이들이 아들이 되고 새사람 새백성 새이스라엘 새언약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육체와 성령에 대한 대조는 갈라디아서에 여러번 나온다. 3:3, 4:29, 5:16-24, 6:8). 결국 율법의 아브라함 자손 이야기의 틀도 결국 주요논제(그리스도로 말미암음)를 지지하고 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가, 약속을 따라 난 자들이, 성령을 따라 난 자들이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손이다. 종으로 말미암아 난 자들은 유업을 얻지 못한다. 

오늘 우리는 약속과 성령을 따라 유업을 얻는 자 되었으니 우리는 믿음을 따라, 성령을 좇아,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며 살아야 한다.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약속의 자손은 늘 육체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핍박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성도에게 세상과의 불화나 고난은 불가피하다. 이여정을 인내로 경주해 가야 한다. 감당할 힘과 능력을 주신 주님의 인도를 따라서 사랑받는 자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 기도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신실하심으로 약속하신 바를 다 이루시고

마침내 언약을 이루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종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 성령으로 난 자, 자유자의 자녀, 위로부터 난 자이기에

박해와 환난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늘에 속한 자로 온전히 인내하며 완주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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