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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ul 29. 2017

민수기 22:01-20 광야학교의 덤앤더머 1

민 22:01-20 

민수기 22:01-20 광야학교의 덤앤더머 1


이스라엘이 요단 서편 모압 평지에 진을 쳤을 때 모압 왕 발락은 두려워하여 당시 유명한 복술가 람람을 데려와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혹 자기 땅에서 몰아 낼 수 있을거라 생각하여 사람을 보냅니다. 발락의 사신들이 올 때마다 하나님께서 발람을 대면하여 행할 바를 말씀해 주신다. 오늘은 두 번의 대면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 발람의 책 구조(22-24장)

A. 발람과 하나님의 대면(22:2~35) - 이스라엘의 현 주소

 a. 22:2-6 도입

 b. 22:7-14 발람과 하나님의 첫 번째 대면

 c. 22:15-20 발람과 하나님의 두 번째 대면

 d. 22:21-35 발람과 하나님의 세 번째 대면

   ① 나귀와 천사 1(22-23절)

   ② 나귀와 천사 2(24-25절)

   ③ 나귀와 천사 3(26-35절)

B. # 발람의 신탁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a. 22:36-40 도입

 b. 22:41-23:12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첫 번째 축복

 c. 23:13-26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두 번째 축복

 d. 23:27-24:13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세 번째 축복

 e. 24:14-25 발람의 마지막 신탁(추가적인 신탁) 마지막 세 번의 예언

   ① 예언 1 - 왕정 초기 (14-19절)

   ② 예언 2 - 다윗왕 이후 (20-22절)

   ③ 예언 3 - 메시아의 날 (23-24)


* 발람의 책을 통해 보여주는 메시지

  광야 옛 세대들의 비극적인 종말의 와중에서도 언약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섭리와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것이 초점입니다. 또한 발람을 통해서는 광야 옛 세대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고(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한 이스라엘, 그리고 그들의 운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탁을 통해서 향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짐을 통해서 언약을 성취해 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번성케 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 그 어떤 위협에도 하나님의 인도는 신실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광야 40년의 막바지에 마침내 요단강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 모압평지에 당도합니다(이제 민수기 36장까지 더이상 장소 이동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곧 야곱이 애굽으로 떠난지 430 여년 만에 그의 자손들은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야곱과 같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이 기간을 거쳐오면서 하나님앞에 신실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사랑 받을 수 없는 이들이었고, 복 받을 만한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이들을 택하시고 약속하신대로 광야여정을 이끌어 여기까지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두움이었으며,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었으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받고 대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새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받고도 지난 우리의 신앙 여정은 많은 굴곡과 불순종으로 채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후로도 변함없이 신실하게 이끌어가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2-6절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반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발락은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것과 이스라엘 백성이 많아 지면에 덮여 강한 민족으로 자신들의 소유를 빼앗길 것이 두려워 그들을 쳐서 저주하여 몰아내려고 계획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3절), “지면에 덮여서”(5절), “우리보다 강하니”(6절) 등의 표현은 아브라함에게 했던 약속 중에서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져서 큰 민족을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성취된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진정한 주인과 백성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발락(‘파괴자’라는 의미)은 자신의 통치영역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들을 보고 두려워하고 번민하며 마침내 그들을 저주하고 쳐서 몰아내려 합니다. 이는 여호와가 아니라 자기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고수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동방 박사들이 왕이 태어난 곳을 물었을 때 헤롯이 가진 생각과 상황이 유사합니다. 결국 거짓 왕 헤롯의 반응도 발락과 같았습니다.


복음(왕이 태어나심, 전쟁에 승리함)에 대한 합당한 반응은 영접과 누림입니다. 두려움과 번민으로 저항하고 부인하고 저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천지만물의 진정한 주인은, 우리 소유의 모든 주권은, 우리 삶의 주관자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나라에 저항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며, 복을 받는 이가 아니라 복을 걷어차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고 거절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라 복음앞에 기뻐하며 환영하며 순종으로 누려가는 인생이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듣거든 반항이 아니라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7-14절 첫 대면 : 사람이 떡(복채)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발락은 당대 유명한 복술가였던 발람에게 사신을 보내 이스라엘을 저주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바람은 이들을 맞아 유훅하게 하고 여호와께서 이르시는대로 답하리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 말라 합니다. 그들은 복을 받은 자(하나님이 책하시고 함께하시는 백성)이기 때문임을 말씀하십니다. 이에 사신들은 발람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성경은 발람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31;8,16; 신 23:4,5; 벧후 2:15,16; 유 11; 계 2:14)합니다. 이러한 발람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현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광야 여정을 지나 오면서 보여주었던 불순종의 역사, 시험과 미혹의 역사들 속에서 이스라엘이 보여주었던 반응을 요약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채를 들고 온 사신을 집에 유숙하게 한 행동이 겉으로는 친절해 보이지만 그의 마음에 품은 뜻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 복채에 가 있었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만나를 먹이시고 이끄시면서 결국 이스라엘이 깨닫길 원하신 것은 사람이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며 떡(복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실패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에 사람이 떡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시며 이기셨습니다. 발람은 이 첫번째 대면에서 이 시험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의 신앙 여정에서 끊임없이 먹고 사는 문제 앞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기 보다는 여전히 돈이 우리를 살리고 부요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일평생 우리는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라는 유혹과 시험앞에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믿음으로 산다 하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복채를 향한 마음을 숨기고 있습니다. 함께 가지도 말고 저주하지도 말라 하시면서 이스라엘을 복을 받은 자라고 하신 뜻을 깊이 새겨 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큰 복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며,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거룩한 백성됨이 우리가 일평생 기억하고 붙잡고 누리며 살아야 할 복입니다.



15-20절 두 번째 대면 : 오직 여호와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겨야 합니다.

발락은 두 번째로 이전 사신들보다 더높은 고관들을 보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오면 발람을 높여 크게 존귀하게하고 원하는 것을 다 해 주겠다고 조건을 제시하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 합니다. 발람은 억만금을 준다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가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하루 더 유숙하라 하고 혹 하나님께서 다른 말씀을 하실지 알아본다고 합니다.


딱 한번 눈을 감고 발락이 해 달라는대로 하기만 하면 발람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조건, 존귀함을 받고 영광을 받을 만한 조건을 제시 받았습니다. 광야에서도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 때만해도 그들은 그에게 절하면 자신들이 이 광야에서 영화를 누릴 것이라 생각하며 기꺼이 금송아지를 자신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준 여호와로 착각하며 절합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자신에게 경배하면 천하 만국의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한 마귀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오직 여호와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줄 수도 없는 것을 준다하고, 세상이 주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존귀히 여기는 자를 존귀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여호와만 경배하고, 우리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는 이 유혹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기므로 결국은 자기 의를 드러내거나 스스로 영광을 취하려 한다거나 세상이 주는 영화를 동경합니다. 내 안에 있는 이 탐욕을 이기는 길은 우리가 진정으로 경배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 우리가 영광을 돌리고 존귀하게 여겨야 할 분이 누구인지 알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살리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 하나님인 것을 아는 믿음만이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자족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에벤에셀, 임마누엘, 여호와이레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고백하고 순종하며 살기 원합니다.

약속이 성취된 말씀을 볼 때마다

오직 주께서 만왕의 왕되시고

나의 참된 왕이심을 온전히 고백하고

주를 경배하고 즐거이 순종하는

복있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물질의 시험앞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기억하고

주의 말씀의 통치와 인도하심 앞에

날마다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세상의 부귀영화를 추구하기보다

하나님나라의 그 영광을 기억하고

오직 주만 존귀히 여기며 섬기는

지혜로운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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