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ug 02. 2017

민수기 23:14-25 광야학교의 신탁 4

민 23:14-25 

민수기 23:14-25 광야학교의 신탁 4


발람의 네 번째 신탁은 이스라엘이 모압을 향하여 어떻게 할지 예언하면서 이스라엘의 향후 모습과 열방을 향한 예언을 진행한다. 


* 발람의 책 구조(22-24장)

 A. 발람과 하나님의 대면(22:2~35) - 이스라엘의 현 주소

    a. 22:2-6  도입

    b. 22:7-14   발람과 하나님의 첫 번째 대면

    c. 22:15-20   발람과 하나님의 두 번째 대면

    d. 22:21-35   발람과 하나님의 세 번째 대면

       ① 나귀와 천사 1(22-23절) 

         ② 나귀와 천사 2(24-25절) 

         ③ 나귀와 천사 3(26-35절)

 B. # 발람의 신탁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a. 22:36-40  도입

    b. 22:41-23:12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첫 번째 축복

    c. 23:13-26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두 번째 축복

    d. 23:27-24:13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세 번째 축복

    e. 24:14-25 발람의 마지막 신탁(추가적인 신탁) 마지막 세 번의 예언

         ① 예언 1 - 왕정 초기 (14-19절)

         ② 예언 2 - 다윗왕 이후 (20-22절)

         ③ 예언 3 - 메시아의 날 (23-24)


# 발람의 책을 통해 보여주는 메시지

    광야여정 - 가나안 - 예수님의 광야시험 - 우리(교회)의 광야학교로 연결하며 읽기  

광야 옛 세대들의 비극적인 종말의 와중에서도 언약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섭리와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것이 초점입니다. 또한 발람을 통해서는 광야 옛 세대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고(22:1-35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한 이스라엘, 그리고 그들의 운명, 아울러 이제 가나안에 가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탁을 통해서 향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짐을 통해서 언약을 성취해 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22:36~24:25).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번성케 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4, 15절 오늘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전능자의 음성을 듣고 말하는 자입니다. 

발람은 이제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간다고 하면서 발락이 그토록 원하던 저주를 이스라엘이 아닌 모압을 향해 선언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시한번 예언하면서 자신의 예언에 대한 권위를 자신의 정체성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비록 마음에 품은 물욕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계속되는 신탁에 발람 자신이 이제 모압을 떠나야할 때라는 것을 어느정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이제 모압을 향한 예언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그 예언의 내용은 결국 발락이 그토록 원했던 저주에 해당되는 데 공교롭게도 그것은 모압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언의 권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발람은 자신의 예언의 권위와 근거를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은 이전에 브올의 아들로서 우상을 숭배하고 목술과 주술을 행하며 살던 자였으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는 눈을 감은 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었고, 지극히 높은 자(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자이며,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이고, 이제 그 하나님을 (엎드려)경외하는 일에 눈을 뜬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과정 속에서 발람은 하나님을 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세 번 대면하고, 하나님의 신탁을 세 번 진행하는 동안 비록 물욕으로 눈이 어두운 자였으나 조금씩 하나님에 대해 알아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도 우리도 발람과 같은 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부름을 받을 때에도, 애굽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도, 그리고 출애굽 이후에 광야에서도 이스라엘은 발람처럼 여전히 눈이 어둡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이후에는 우상과 무지에서 깨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쌓아 가면서, 하나님께서 계시하는 것을 보고 경외와 순종으로 살아가야 살 수 있는 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패역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대속함을 받게하시고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임을 기억하며 변화된 신분, 받은 은혜, 들려주신 그 말씀을 매일 들으며 사는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매일 주님의 기록된 계시 곧 성경을 늘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온전히 쌓아가며 바른 말씀 바른 신앙 바른 삶으로 영광 돌리길 기도합니다. 



17-19절 장차 주권자가 이스라엘에서 나오면 모든 열방이 그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입니다. 

발람은 지금 자신이 말하는 이의 일이 지금이 아니고 가까운 일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일은 바로 야곱(이스라엘)에게서 한 별과 한 규가 나와 일어나서 모압(셋)을 무찌르고, 에돔(세일)도 저복하게 되어서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발람이 본 환상을 통해 주어진 계시는 향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입니다. 가깝게는 이제 이스라엘에 다윗왕이 주변 나라 특히 에돔과 모압을 모두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시대로 하나님의 힘으로 용감히 행할 나라가 된다는 것이고 주권자가 마지막 남은 자들까지 다 멸절할 것입니다. 지금은 에돔과 모압등에 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며 나그네처럼 떠도는 백성 같지만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세번째 신탁에서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이제 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기에 발락에게는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의 규모보다 더 큰 두려움으로 이 예언을 듣게 된 것입니다. 더 멀게는 이 예언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에게서 온전하게 성취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며 압제하던 이들을 모두 멸하고 택한 백성을 해방시키실 분이 메시아이십니다. 


우리는 이 약속이 성취된 것을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에 합당한 반응은 그 말씀을 붙잡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지금 우리 가운데서 우리 삶을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나라를 이미 살고 있습니다. 날마다 선하신 사랑의 통치자 앞에 무릎 꿇고 그분의 선하신 인도를 따라 소망가운데 용감한 자로 이미 승리한 싸움을 싸우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20-22절 아무리 견고한 나라일지라도 영원한 나라는 없습니다. 

민족의 으뜸으로 알고 있는 아말렉도 종말에는 멸망에 이를 것입니다. 겐족속 또한 아무리 거처가 견고하고 보금자리가 바위에 있다 할지라도 마침내 쇠약해지고 앗수르의 포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아말렉은 출애굽한 이후 이스라엘을 오래도록 괴롭히고 원수가 된 족속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대로 이스라엘의 대적입니다. 지금은 모든 민족들보다 더 강성해 보이고 으뜸가는 족속으로 군림할지라도 그들의 나라가 영원하지 못합니다. 결국 멸망에 이를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겐족속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처와 보금자리가 강하다 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됩니다. 그들보다 더 강한 앗수르라고 하는 나라가 겐족속을 포로가 되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은 실제로 모두다 이루어 집니다. 그러니 아무리 강성하고 견고한 나라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모두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 외에 인간이 쌓은 모든 성은 유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누리는 권세와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지금의 소유가 영원할 것처럼, 지금의 건강과 힘이 영원할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혜는 영원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아는 것이며, 그 나라의 백성되는 일이 가장 복있는 자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누리는 것입니다 지금 선자리, 사는 나라에서 우리가 겸손히 감사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허락하신 나라가 임마누엘의 나라로 주님께서 약속하시고 세우시고 다스리시고 인도하실 나라이며, 유일하게 견고하고 영원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23, 24절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일(심판)하실 그날이 오면 그 앞에 누구도 살 수 없습니다. 심지어 앗수르와 에벨족속(메소포타미아)이라도 마찬가지로 깃딤 해변에서 오는 민족들(블레셋이나 로마로 보기도 합니다)을 통해서 학대와 멸망을 당할 것이지만 그들도 역시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발락에게 이 이야기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이해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배후에 함께 계시는 여호와의 일하심과 계획하심을 믿음없는 발락이 알아들을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오랜 후에 발람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에게 그의 이야기와 예언은 결국 이스라엘과 이후에 성취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과 통치하심과 일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발람의 예언도 그렇게 찬양의 형태로 선포되고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모압과 에돔도 건재하고, 아말렉은 득세하고 있으며, 깃딤 해변의 족속과 앗수르, 에벨등은 아직 듣도 보도 못한 나라이기에 발람을 통해 선포되는 예언의 말씀 앞에서 발락은 아연실색하며 무기력하게 발람에 대한 위협도 못한채 돌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에는 그 누구도 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주님의 계획하심과 일하심에 대해서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 이루신 일들을 살펴보고 묵상하면서 식언치 않으시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며, 축복을 거두지 아니하시고 택하신 자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되 끝까지 행하시는 주님을 보면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면서, 바로 그 하나님께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음으로 감사하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 지혜로운 자이며 복있는 자이기에 오늘도 주님의 일하심을 겸손히 바라봅니다. 우리는 주님의 통치와 인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동역자로 부르신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해야 할 줄 믿습니다. 



25절 주님이 계시는 곳이 우리가 돌아갈 곳이며,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발람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고 발락도 자기의 길로 갑니다. 


발람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간다고 했기에 그곳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제대로 가지 못합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타락 사건에 중요한 모의를 모압에 제공한 자가 발람이라고 밝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의 신탁을 전하는 자로 쓰임받았고 하나님을 아는 부분이 어느정도 있었지만 그 믿음이 끝까지 가지 못한 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결국 모른 것입니다. 발락도 마찬가지 이렇게까지 하나님의 신탁을 듣고도 결국 완고한 자신의 고집을 꺽지 않고 자기가 가던 길로 계속 갑니다. 무지한 폭주기관차처럼 잘못된 길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돌이키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이전에 행하던 대로 그대로 간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자신이 여전히 왕으로 군림하고자 하는 유한한 길로 멸망의 길로 간 것입니다. 


우리가 늘 가야 할 곳, 서 있어야 할 곳, 그리고 바라봐야 할 곳은 주님이 계신 곳입니다. 주님이 다스리시고, 인도하시고, 함께하시고, 보내시고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그 곳으로 가야 합니다. 우선은 이 모든 역사가 이루어지는 말씀의 자리 곧 주님을 대면하는 자리로 가장 먼저 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가야 할 곳을 바르게 인도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선 곳이 거룩한 땅인지, 아니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부정한 땅인지 눈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우리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발락이 가는 길이 아닙니다.  세상이 가는 길이 아닙니다. 악인의 꾀(방법), 죄인의 길(방향), 오만한 자의 자리가 아닙니다. 주님이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르는 길로 살아가야 합니다. 



*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모든 나라 모든 만물의 주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뵈옵고 주의 말씀을 바로 듣고 깨닫게 하옵소서.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끝까지 기다리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성실로 살게 하옵시며, 

헛된 나라, 힘, 권력을 탐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나를 소망가운데 바라보며

이미 허락하신 그 나라를 이 땅에서 합당하게 살게 하옵소서.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에

주님을 기뻐 맞이할 수 있는 믿음으로

오늘 주어진 이 광야를 또한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가 마땅히 서야 할 곳, 가야할 길로 

온전히 행케 하옵소서. 

매거진의 이전글 민수기 23:27-24:13 광야학교의 신탁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