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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ug 04. 2017

민수기 25:01-18 광야학교의 비행사건

민 25:01-18 

민수기 25:01-18 광야학교의 비행사건


옛 세대의 자화상과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준 발람의 사건(21-24장)이 종결 된 이후 깃딤에 머물던 이스라엘은 결국 발람을 통해 보여준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어 심각한 비행 사건을 저지르고 맙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비느하스의 거룩한 분노로 사건이 종결된 이후 모압과 미디안을 향한 심판을 명합니다(출애굽기 31장 금송아지 사건과 유사한 패턴으로 전개됩니다). 


1-3a절 외부의 요인보다 내부의 타락이 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싯딤에 머문 이스라엘은 모압여인들과 음행을 시작합니다. 모압 여인들이 자신들의 신들에게 제사할 때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자 이에 응하여 함께 먹고 심지어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며 바알브올 곧 우상숭배에 가담합니다.

 

모압왕 발락의 집요한 저주 요청에 대해 하나님은 발람을 통해서 막으셨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발람을 통해 보여진 이스라엘의 자화상은 탐욕으로 점철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모압 여인들과 음행(이것 자체로 종교적 성창을 행한 것으로 봅니다)하고 그들의 제의에 참여하게 된 것은 단순한 종교적 타락을 넘어서 그들의 우상숭배를 통한 풍요제의에 넘어간 것입니다. 모압의 신 그모스(바알브올)는 결국 바알 숭배와 동일한 것으로 풍요제의를 위해 만들어진 우상일 뿐입니다. 발람이 끝까지 버리지 못한 탐욕을 이스라엘도 버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모압 여인의 미혹에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이 일의 배후에는 결국 발락이 개입되었다는 것을 모세는 후에 밝힙니다(민 31:16).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과 저주 그리고 여러 위험 요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부의 분열과 부정과 타락입니다. 탐욕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 아닌 것을 경배하는 죄를 범하게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마음에는 그들이 품은 것이 표출되었을 뿐입니다. 결국 외적인 면도 위험하지만 내면의 정결과 온전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를 미혹하고 있고, 우리 눈에 좋아 보이는 달콤한 유혹들, 탐욕을 부채질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이기려면 우리 주님으로 만족함을 경험하는 역사가 아니면 안됩니다. 주님으로 만족 하시는지요? 아니면 음란한 세상과 풍성함의 유혹들이 더 우리를 부요케 할 것 같은가요?



3b-5절 여호와의 하나님 되심과 거룩을 지키는 일이 광야학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스라엘의 범죄함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이에 모세를 향하여 백성의 수령들을 공개적으로 목매어 속죄하라 명하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다시 바알브올에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 합니다. 


이스라엘의 단체적인 음행 사건 그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범죄이지만 하나님께서 이토록 진노하신 더 큰 이유는 바로 이 음행 사건(바알브올 사건 또는 고스비 사건)이 상징하는 바가 출애굽하고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알기 원하는 거룩한 백성을 향한 중요한 목적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깨닫길 원하시는 일은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 아는 것과 거룩하신 하나님을 따라 거룩한 백성으로서 거룩을 지키고 세워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음행의 사건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브올(또는 그모스 신)에게 절하며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일을 거역하고 배반한 일이었으며, 그들과 음행하므로 말미암아 한분 하나님만을 섬겨는 순결한 백성의 길을 떠나서 하나님 아닌 것들을 섬기는 음행으로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는데 이로 말미암아 죄에 대한 댓사를 수령들을 공개 처형하므로 속죄하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여기에 더하여 바알브올에 가담한 자들을 죽이라 합니다(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지 않은 것으로도 보고, 혹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확대하여-하나님은 수령들을 죽이라 했는데- 아예 그 사건 자체에 참여한 모든 이들을 죽이라 한 것으로도 봅니다). 이 범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진노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는 판결입니다. 


여호와의 하나님 되심과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됨에 대한 인식은 광야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시험에서 바로 이러한 부분들을 분명히 기억하고 그대로 이기셨습니다. 이제 광야학교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신앙에 있어서도 바로 하나님의 유일하신 주 되심과 우리는 주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으로서, 거룩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자라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대속하신 예수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며 천하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로, 그리고 이 땅에 메시아(그리스도)로 만왕의 왕으로 우리의 구주되시는 주님을 바로 알고 믿고 순종하는 길이 우리 삶에 가장 소중한 가치이며 변함없이 지켜야 할 과제입니다.



6-9절 온전한 순종과 거룩을 향한 열정이 생명을 살리게 합니다. 

회중들이 회막 문에서 울고 있을 때 시므온 가분의 지도자 시므리가 공공연하게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옵니다. 이에 비느하스가 회중 가운데서 창을 들고 시므리가 자행하는 우상숭배의 상황을 보도 두 사람을 창으로 찔러 죽이자 이스라엘 자손 중에 염병이 그칩니다. 이 염병으로 이만 사천명이 죽었습니다. 


지도자 시므리의 음행은 바알브올에 가담한 이들을 대표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보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의 모범이 되어야할 지도자가 버젓이 백주 대낫에 공공연하게 이방 여인을 데리고 와서 음행하려는 것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므리의 모습은 결국 그 가문과 지파를 넘어 이스라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두가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들을 처단합니다. 이 비느하스의 분노는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이 사건으로 죽은 자들에 대해 이만 사천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고린도 전서 10:8에서는 이만 삼천명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불일치는 여호와께서 처음에 수령들을 메달라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모세가 바알브올에 가담한 이들을 죽이라는 명령들을 모두 불순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불순종의 상황이 지속되었기에 시므리가 버젓이 공개적으로 음행을 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느하스의 순종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거룩을 지켜야 하는 레위와 제사장의 의무에 대한 충성된 열정이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게 한 것입니다. 비느하스의 중보적 모습이 부각됩니다. 


부정한 일들이나 문제가 오래되고 공공연하게 자행될 때 황당함이 기승을 부리면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왕자왕하면서 정작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는 경우들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느하스의 행동은 가장 중요한 본질을 깨어서 결행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방황하고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깨어 있는 지도자 한 사람이 멸망으로 치닫는 공동체를 다시금 깨울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모두가 회복되어야 할 온전함과 열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가 힘써 버리고 지켜야 할 거룩의 걸림돌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분노를 품고 결행하고 결단하고 있나요?



10-13절 사명을 온전히 감당한 이를 향한 보상을 하나님은 신실하게 이루십니다. 

비느하스를 향하여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헤아린 부분을 칭찬하십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평화의 언약을 주어서 그의 후손들이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자손을 위해 속죄한 것 때문입니다. 


비느하스의 후손들은 평화의 언약을 통해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보장받습니다. 실제로 이 약속은 성전이 훼파될 때까지 그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제사장 직분을 이은 것으로 성취됩니다. 원래 레위와 시므온은 둘 다 디나 강간사건을 통해서 함부로 칼을 쓰므로 인해 사실 심각한 저주를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31장의 금송아지 사건 때에 레위는 다시한번 칼을 쓰는데 이 때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반역한 무리들을 처단한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를 얻게 됩니다. 칼을 쓰던 이들을 성막의 거룩을 관리하는 지파로 임명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칼로 거룩을 지키면서 동시에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거룩한 성막 가까이에 거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므온 지파는 이러한 회복의 계기에 적극 동참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들은 점점 몰락한 지파가 되었습니다(26장의 2차 인구조사에서 드러남). 이제 바알브올의 사건에서 비느하스의 행동은 다시한번 대제사장의 가문을 보장받는 평화의 언약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비록 이들의 부족함에도 이 언약을 성전이 멸망할 때까지(A.D 70년) 지켜 주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주님의 마음으로 자신을 살피고,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주님의 마음으로 행동하고 사는 것 그것이 곧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한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상이 큽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 진 사명들은 자격없는 우리, 부족한 우리를 아심에도 불구하고 맡겨주신 축복의 기회입니다. 충성으로 감당하는 길만이 우리가 취할 자세입니다. 



14, 15절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일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전철을 밟지 않게 할 강력한 조치입니다. 

비느하스에게 죽임 당한 남녀의 이름을 밝히고 있습니다. 시므온의 지도자 시므리와 미디안 수르 수령의 딸 고스비입니다. 


이들은 모두 지도자과 연관된 이들이었습니다. 지도자들까지 이럴 정도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심각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지도자일지라도 이러한 범죄는 더더욱 용납될 수 없다는 것도 상징합니다. 아울러 이들마저 타락할 정도로 이스라엘의 타락의 정도가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름을 밝히므로 인해서 이어지는 미디안에 대한 전쟁의 정당성과, 시므온 지파의 몰락에 대한 이유를 미리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광야 옛세대의 몰락에 대한 이유도 포함됩니다. 


부끄러운 역사, 실패한 역사, 죄악된 역사에 대해서도 우리는 배우고 또 후손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들을 기억하게 될 때 다시는 동일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는 교육적인 목적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절기마다 이러한 역사들을 되새기고 배우고 암송하면서 기억하도록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배움과 자녀와 후손들을 향한 교육 중에 이러한 역사에 대한 기억을 위해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포장되고 가려진 역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배워서 교훈을 삼고 반면교사를 삼아야 다시는 전철을 밟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역사도 교회의 역사도 우리 자신의 신앙의 역사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다시금 정리하고 배워야 할 이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16-18절 하나님의 주권과 거룩에 대해 도전하는 세력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적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미디안을 치라 명합니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속임수로 대적하였고 고스비 사건으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많은 이들을 죽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힙니다. 


비록 범죄한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미혹하고 범죄하게 한 세력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심판의 주권을 가지고 단행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택한 백성을 미혹하고 대적한 것은 곧 하나님의 주권과 거룩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이들의 행위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행하십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부정과 외부에서 우리를 미혹하는 것들입니다. 내 외적으로 우리가 싸워야 할 대적이 있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받고 지키고 누려가는 일은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내용이며 가치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보배로운 소유로 대속해 주셨고, 우리를 거룩하신 주님처럼 하나님을 대면하고 동행하며 함께 할 수 있도록 거룩한 제사장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의 내용은 거룩함입니다. 아울러 그렇게 구별하여 세우심은 열방으로 주께로 인도할 축복의 통로로서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을 지키고 전하는 일에는 반드시 거룩을 위협하는 대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바로 이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의 부정함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들과 싸우는 거룩한 백성들을 거룩한 성전이요 거룩한 군사라 하는 것입니다. 이 거룩을 지키는 영적 전쟁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나아가길 원합니다. 



*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금 우리가 부정과 음행으로

주님의 주권과 거룩을을 훼손하는 죄의 길을 행하고 있다면

속히 발견하고 끊고 돌이킬 수 있게 하옵소서. 

주께서 명하신 거룩의 길을 온전히 순종하게 하옵시며

심각한 부정에 대하여 신속한 정결규례를 적용케 하시며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게 하옵소서.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 언약을

우리로 기억하고 지키고 누리며 증거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가 또한 기억해야 할 역사를 상기하고

자녀들을 향하여서도 잘 교육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가 싸워야 할 거룩한 전쟁을 기억하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용감히 행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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