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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ug 05. 2017

민수기 26:01-51 광야학교의 월반 출석부

민 26:01-51 

민수기 26:01-51 광야학교의 월반 출석부


염병이 그친 후에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에 거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새롭게 인구조사를 명합니다. 지파별로 전쟁에 나갈 20세 이상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계수하도록 하자 모세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은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축복한 순서대로 계수하는데, 인구는 1차 계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민수기 26-26장 : 새로운 세대를 향한 이야기

   민수기 26-36장은 이제 옛 세대들이 죽고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하여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가 전개됩니다. 그래서 1-25장보다 더 희망적이고, 여러 규례에 있어서도 이전보다 더 타협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서 어떻게든 새로운 세대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나고, 아울러 약속의 땅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주는 말씀들로 전개됩니다. 비록 이전 세대는 광야에서 온전한 길로 행하지 못하였지만 새로운 세대는 부모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새롭게 약속의 땅에서 정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타나는데 특별히 1-25장과 26-36장의 이야기 전개 패턴이 유사한 구조로 이어지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유사한 패턴을 볼 수 있습니다. 

   ① 같은 형식으로 시작하고(1:2-3; 26:2), ② 같은 12 지파의 목록과 지파들의 순서를 기록하고 있으며, ③ 곧바로 따라 나오는 레위인들의 인구조사(1:47-54; 26:57-65)도 같은 패턴이고, ④ 여성에 관계된 법(5장; 27장), ⑤ 서원에 관계된 법(6장; 30장)이 동일하게 언급되고 있고, ⑥ 레위인들의 부양 문제(18:21-32; 35장)를 다루고, ⑦ Sacrifice(희생)와 offering(헌신)(15장; 28-29장)에 대한 언급과, ⑧ 유월절(9장; 28:16-25)에 대한 언급, ⑨ 바알브올의 음행 사건과 미디안 성전(25장; 31장)등이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1-4절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약속 이행에 대한 성취 희망이 가득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지파를 따라 전쟁에 나갈 만한 20세 이상 된 자들을 중심으로 인구조사를 명합니다. 이에 명하신대로 계수합니다. 


인구조사의 목적은 크게 군사적인 목적과 땅 분배의 목적이 있습니다.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오래전에 정탐했을 때 그곳에는 두려워할 만한 가나안 족속들이 이미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미 그 땅을 다 얻은 것처럼, 그리고 장차 그 땅을 다 분배하실 것처럼 미리 인구조사를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들어갈 수 없다면 이런 군사적 정비와 땅 분배를 위한 인구조사가 의미가 없을 것인데 조사를 명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정복하고 분배해 주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심어주고 계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인구조사에 대한 명령을 모세와 엘르아살에게 명한 것은 리더십이 이양될 때까지 변함없이 이들의 리더십을 인정해 주고 끝까지 사명을 완수할 것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들의 지도를 잘 받는 것이 결국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라는 것을 다시금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나라에 대해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살아갈 뿐 아니라 장차 온전하게 완성되는 그 나라를 소망가운데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이미 우리는 그 나라의 복을 이 땅에서 누리면서 장차 완성될 나라를 맛보며 소망가운데 오늘을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이루신 그 약속을 바라보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인도하시고 이루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주신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11절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없습니다. 

르우벤 자손 가운데는 이전에 고라의 반역에 합류했던 이들은 죽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않았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소위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말하면서 조상의 죄를 자손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끊어야 한다고 특별한 헌신과 에물을 요구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지극히 그럴싸하게 많은 이들이 미혹되어 조상들의 죄를 회개한다면서 여러가지 어리석은 일들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죄로 죽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해 타인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나 부모의 죄나 조상의 죄로 자손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부당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불의하신 분이 아닙니다. 비록 고라는 반역했으나 하나님은 그의 아들들을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불법한 부모의 죄로 자녀들이 억울하게 죽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노가운데 늘 긍휼을 잃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알게 되면 감사와 겸손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늘 주님을 배반하지만 주님은 단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택하신 자를 오래참음과 긍휼로 살리시고 회복되기를 기다리시며 기어이 그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역한 불신이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자초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여호와를 바로 아는 지식과 지혜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12-14절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불순종은 결국 멸망의 길입니다. 

시므온 지파의 인구는 1차 조사 때보다 숫자가 37,000여명 정도의 인구가 감소합니다. 이는 다른 어느 지파에도 없는 심각한 현상입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기도하며 예언한 말씀이 성취되어 갑니다. 세겜 족속의 디나 사건과도 연관이 있고, 가깝게는 수령 시므리의 모압 여인들과의 음행 곧 우상숭배와 부정의 죄를 범한 일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만 것입니다. 한 두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지파 전체가 이러한 경거망동과 불순종과 음행에 깊이 연루되어가서 지파 전체가 몰락해 간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는 거의 유다나 타지파에 흡수되어서 유명무실한 지파가 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순종하고 부정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번성을 부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역사는 이러한 죄인들의 흥왕함이 결코 3대를 넘어가지 못하였음을 수도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얻는 성공 또한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허락지 않은 모든 것은 헛되고 멸망의 길임을 분명히 신뢰하고 고백하며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29-24절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자가 얻게 됩니다. 

시므온 지파와 달리 므낫세 지파는 반대로 더 흥왕해 집니다. 더불어 헤벨의 아들 스로브핫은 아들들이 없고 딸들만 있는데 이들의 이름(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이 상세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요셉의 자손인 므낫세 지파의 번성은 이미 창세기 48장에서 언급하고 있고 이러한 약속이 성취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민수기 후반부에서는 므낫세 지파인 슬로브핫의 슬하에는 아들이 없고 딸만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 슬로브핫의 딸의 이야기가 후반부 처음에 등장하고 마지막 36장에서도 이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당대 아들만 상속권이 있던 시기에 딸들에게도 상속권을 허락해 달라는 제안을 수용하면서 결국 이 딸들의 약속대로 땅을 상속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합니다. 민수기가 약속의 땅을 가는 여정을 기록한 책이라면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야기는 그 약속의 땅을 누가 과연 기업으로 얻게 되는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택하심이 주요하지만 결국 택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고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은 때로 상식과 이성에 갇힐 수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상식과 이성 곧 지식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때로 하나님의 역사는 초월적이기도 하고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도 있습니다. 우리가 다 이해하고, 우리가 다 알고, 우리의 이성의 차원에만 머무는 하나님이라면 이미 화석화된 하나님이십니다. 모다 더 역동적이고 크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일평생 겸손히 알아가는 일이 중요함을 고백합니다. 



51절 오직 주님만이 신실한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인구는 1차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1차 603,550명, 2차 601,730명). 


옛 세대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놀라운 사랑으로 많은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부르심의 사명이 무엇인지도 무관심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반역과 불순종으로 일관했습니다. 심각한 반역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범죄의 대가로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숫자에 변동없게 하시며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공급하셨으며 오늘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제 약속의 땅을 눈앞에 바라보는 이스라엘이 있게 했으며, 그 사랑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를 대속하게 하셨으며, 그 사랑이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게 했으며, 그 사랑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있고, 이후로도 주님이 예배하셨을 것을 믿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약속의 말씀들을 오늘 묵상하고 그 앞에 나아가는 것은 이 땅에 모든 것은 다 변할 지라도 오직 변하지 않는 분은 우리 주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약속에 신실하신 주님의 그 말씀을 묵상하며 그 길로 갑니다. 주님의 선하신 인도와 역사를 기대하면서…



* 기도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더욱 깨어 있어서

주님의 인도와 통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이제 군사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이

부름 받은 이를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지금도 부르신 그 뜻을 이루는일에 전심 전력하게 하옵소서.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면서

변함없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인내와 믿음으로 경주하게 하옵소서. 

오직 변하지 않는 주님만이 우리의 희망이시니

오래참음과 믿음으로 이 삶의 여정을

묵묵히 한 걸음씩 나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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