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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ug 06. 2017

민수기 26:52-65 광야학교의 신입생 반배치 원칙

민 26:52-65 

민수기 26:52-65 광야학교의 신입생 반배치 원칙


인구조사의 목적대로 이제 약속의 땅에서 기업으로 줄 땅의 분배에 대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이어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하는 레위인에 대한 인구조사에 대한 요약 보고와 요게벳과 아므람(모세, 아론, 미리암의 부모)의 계보를 특별히 언급하면서 레위인이 계수에 들지 않은 이유가 기업이 없기 때문임을 밝힙니다. 마지막으로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 아무도 두 번째 인구조사에 포함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52-56절 하나님의 나라는 공의(정의 미쉬파트)와 공평(체다카)의 나라입니다. 

인구조사를 한 목적이 땅의 분배와 군사적 목적이었기에 인구 계수 후에 바로 약속의 땅을 분배하는 원칙을 다시한번 제시합니다. 명수대로 땅을 나눠 줄 것이며(공평), 지역은 지파별로 다소를 막론하고 제비 뽑아서(공정) 나누라고 명합니다. 


먼저 정의(미쉬파트)와 공평(체다카)은 성경에 여러 가지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의와 공도(창 18:19); 공의와 법도(신 33:21); 의와 공(삼하 8:15; 왕상 10:9; 시 99:4); 공의와 심판(욥 37:23); 정의와 공의(시 33:5); 의와 판단(시 36:6); 의와 판단력(시 72:1); 의와 공의(시 106:3); 의와 공평(잠 21:3; 사 1:27; 5:7; 32:16; 56:1; 59:9); 정의와 공평(사 9:7; 렘 4:2; 22:3; 23:5); 정직과 공평(렘 9:24); 의리와 공평(렘 22:15); 의와 법(겔 18:5,19,21,27; 33:14,16); 공의와 공평(겔 45:9); 정의와 공법(암 5:7,24; 6:12).


지파별로 인구의 수가 차이가 있습니다. 당연히 인구가 많은 지파와 그렇지 않은 지파간에 필요한 땅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계수한 대로 많은 자에게는 많이, 적은 자에게는 적게 계수된 수대로 기업(땅)을 공평하게 분배하라고 명합니다. 또한 어떤 지역(위치)의 땅을 분배 받을지에 대해서는 땅의 질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 좋은 땅을 차지 하기 위해서 나이나 힘이나 여타 돈의 힘으로 서로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분쟁이 일어날 수 있기에 이것은 모두 공정하게 제비 뽑아 나누도록 했습니다. 이는 요행을 바라기 보다는 제비 뽑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나누라는 것입니다. 지파와 가문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들의 필요와 처지를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제비 뽑아 나누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하에 결정되어서 가장 적절하게, 필요와 처지에 따라서 배정받을 수 있게 조치한 것입니다. 


공평은 모두가 일률적으로 동일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적절하게 나눠지는 것을 말합니다. 공정함도 서로 인정할 만한 분배가 이뤄지고,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 서로 섬기는 자세라야 분배한 결과들을 놓고서도 억울해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공평과 공정함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결국 비교와 탐욕을 버리고 서로 나누고 섬기며 내가 좀더 부족하다 하더라도 남을 배려하는 자기부인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자기부인이 가능한 이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함께 하심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음을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곧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공평과 공정함 그리고 공의가 이뤄지는 나라이기에 그 안에 부족함이 없을 뿐 아니라, 그런 부요하신 하나님의 넉넉하심이 어떤 상황에서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믿기에 넉넉히 자기를 부인하고 더 나누고 베풀어도 부요한 자로 살 수 있게 됩니다. 많이 가진 자가 부요한 자가 아니라 나눌 수 있는 자가 부요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차별과 탐욕, 포학과 폭력, 힘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을 명하심과 동시에 공평과 정의의 나라로 우리를 초대하신 것입니다. 



57-62절 거룩한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한 분깃입니다. 

레위의 게르손(립니, 시므이), 고핫(아므람, 이스할, 헤브론, 웃시엘), 므라리(말리, 무시) 자손의 종족들과 고핫의 자손 아므람(요게벳)의 자녀 모세, 아론, 미리암과 이스할의 자손 고라에 대해서 소개하고, 아론의 자녀 나답과 아비후,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과 이다말을 소개합니다. 특별히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리므로 죽은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자손의 계수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호와기 기업이기에 이들은 다른 지파처럼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임을 밝힙니다. 


레위인의 계수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도 모세와 아론 그리고 미리암에 대한 특별한 언급들은 이들의 리더십에 대한 권위를 세워주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비록 미리암과 아론은 죽었지만 남은 모세의 권위는 마지막 리더십을 이양하는 순간까지 분명하게 세워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에 대해서 이들이 다른 불(제단에서 여호와께서 정하신 불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가져 온 불 = 여호와께서 인정할 수 없는 방식)을 드리므로 죽었다는 것을 상기합니다.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이어서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에 들지 않은 이유가 기업(땅)이 없기 때문임을 밝힙니다. 1차 인구조사에서 밝히듯이 레위인의 기업은 여호와께서 기업이 되십니다. 이스라엘이 결국 추구해야 할 모델은 레위인처럼 오직 여호와가 기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며, 여호와께서 모든 것의 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여호와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중요한 것이며, 오직 여호와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과 허락하심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교육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하늘의 백성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소유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복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만일 소유로 우리의 행복이 보장된다면 하나님은 넉넉한 소유를 허락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의 유한함과 탐욕은 서로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기에 소유는 한정지으셨습니다. 인간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채워지는 존재로 지음받았기에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가운데서 부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 관계가 깨어진 인간은 이 세상의 유한한 자원으로는 그 무엇으로도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없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 관계를 회복 하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만족한 부요한 온전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기업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소유로도 여전히 부족하다하고 궁핍하다하고 만족하다 하지 못한다면 위험합니다. 주님으로 족합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을 갖길 원합니다. 



63-65절 하나님의 신실 하심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어야 합니다. 

2차 인구조사에는 1차 인구조사(시내 광야에서)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은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광야에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광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에게는 출애굽한 부모들의 죽음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 그들이 불순종으로 그렇게 죽을 수 밖에 없었는지 상기시켜 줍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실 함이 얼마나 분명한지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불신앙적인 이들에게는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려는 이들에게는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 약속을 신뢰하기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철저하게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불의하고 폭력적이며 포학한 세상 속에서도 공평과 정의를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으며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에 순종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 이들에게 신실 하심은 현실의 모든 일들을 이기며 인내할 수 있는 강력한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며, 변개치 않으시며, 복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십니다.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서 버리시기까지 하시면서 택한 백성을 거룩하게 세우시는 일들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임을 최고의 사랑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를 새백성 곧 주님의 몸된 교회로 세우신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지금도 교회된 우리를 향하신 약속은 변함없이 유효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누리며, 주신 사명을 이어가며, 다시 오마 약속하신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우리의 삶이 오늘도 영원한 소망가운데 퍽퍽하고, 이해할 수 없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고난과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넉넉하게 이기며 나아갈 수 있길 원합니다. 



* 기도

나의 영원한 기업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공평과 정의의 나라로 우리를 불러 주시고

공평과 정의를 이루며 살아갈 힘과 능력과 지혜도 주시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땅에 부질없는 것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영원한 주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 수 있는 

믿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누릴 수 있는 

믿음과 손종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있게 하옵시며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주님의 신실하심이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으로 믿는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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