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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ug 13. 2017

봇물을 기다리며

쉴만한 물가 - 72호

20130809 - 봇물을 기다리며


바쁜 농사일이 주춤해 지고 한여름 더위를 피해 물가로 간 동네 어른들은 가끔 냇가에서 보를 막아 고기를 잡았습니다. 


적당한 둠벙을 찾아 먼저 물이 흘러 오는 위쪽에 돌과 자갈로 대충 보를 만들고 냇가 주변에 있는 버들가지며 풀들을 베어다가 자갈틈에 배겨 넣어서 흐르는 물길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큰 돌들로 대충 보를 막고 그 위에 베어온 풀들을 켜켜이 쌓아가기 시작하면 어느새 줄기차게 내려오던 물길은 한 켠으로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한방울이라도 덜 새어 나오게 하려고 잔돌을 붓기도 하고 흙을 막기도 했습니다. 


쏴아 하며 쏟아지던 물소리가 어느새 똑똑 거리다가 이내 멈추고 막힌 물이 다른 쪽으로 다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보 아래 둠벙에 찬 물들이 차츰 빠져 나가며 물이 마른 곳곳에서는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이 퍼득거렸습니다. 


바위 틈 곳곳에는 메기며, 쏘가리, 꺽지, 피래미, 버들피리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그럼 양판 하나 들고 다니며 주워 담기 바빴고, 운이 좋은 날이면 장어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른들은 그걸 가지고 회로도 먹고 매운탕도 해서 드셨는데 잡는 것 보는 재미만으로 너무 즐거웠고 어느새 물가에서 더위가 가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고기를 다 잡고 난 후에 막았던 보를 트는 일은 너무도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쌓아둔 돌이랑 풀들을 들어내기 시작하면 막혔던 봇물들이 밀물처럼 내려가고 말랐던 둠벙이 다시 물이 찰랑찰랑 차는 것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물이 흐르고 잠시 몸을 말리고 다시 그 둠벙을 보면 어디서 왔는지 금새 물고기들이 돌아다녔습니다. 거기다 이전보다 훨씬 더 깨끗해 진 느낌이 듭니다. 


잠시 우리네 삶에도 보가 막힌 것 같은 날들이 있습니다. 도무지 생기도 기력도 없고 자꾸만 정서도 인정도 의욕도 막혀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는 일도 제대로 안되고 활력도 떨어지는 바로 그런 때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그리 오래가진 않습니다. 잠시만 참고 기다리면 이내 봇물이 터지며 또다시 찰랑거리는 일상의 활력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또 이것저것 너무나도 복잡한 일들이 많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면 보를 막는 것처럼 잠시 우리의 일상을 멈추고 내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서 그 안에 책상을 정리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걸림돌들을 걸러내고서 다시금 우리 일의 물을 채워간다면 이전보다 더 깨끗하고 정리된 마음으로 일상에 전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벌써 입추가 지나고 나니 가을의 전령인 잠자리들이 날아다닙니다. 휴가 끝의 무기력함을 훌훌 털고서 봇물처럼 우리의 삶을 밀고 갈 활력을 되찾고 거침없이 또 달려가는 날들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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