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119호
2140808 - 하늘이 온다.
방학이라고 종일 텔레비전만 보던 초등 일학년 막내녀석이 저녁을 먹으면서 대뜸 전쟁을 했으면 좋겠다 한다. 뜬금없는 소리에 중일짜리 누나가 한 마디 쏘아 붙인다. ‘너 전쟁이 뭔지나 아니?’ 그랬더니 인석이 ‘응, 싸우는 거'라고 대답한다. 그럼 엄마 아빠 다 죽는 거라 했더니 그제야 자신이 미처 계산에 넣지 못한 부분이 있는 줄 알고서 말이 쑥 들어간다. ‘텔레비전에서 뭘 보길래 그런 소릴 할까? 매일 싸우는 것만 봐서 그러나 보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많이 속상했다. 케이블TV를 설치하지 않을 때는 가끔 스마트폰 게임은 해도 이런 소릴 안하더니 종일 여기저기서 만화영화에서부터 온갖 보고싶은 프로는 줄줄이 꿰면서 보는 것을 터득한 이후로는 말하는 것에서 부터 행동 하나하나 섬찟섬찟 놀라게 한다. 얼마 전에는 시골에 가는 길에 비행기가 날아가는 걸 보더니 손으로 총을 쏘는 시늉을 하고, 급기야 그런 포즈를 가족들에게도 들이댄다. 눈을 부릅뜨고 그러는 거 아니라고 했지만 이미 아이의 마음에 날아가는 새와 사람을 향하여 텔레비전 만화와 현실을 동일시하는 생각이 고착된 듯 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가 어느 날 저녁에 매일 직장에서 아이들만 보고 집에 오면 집안일 하느냐 뉴스도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몰라 바보가 되는 것 같다 한다. 그러면서 뉴스라도 보고 싶어하고 가끔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해 보더니만 곧잘 이러이러한 사건 소식을 접해 봤냐고 물어온다. 그럴 때마다 청소년 딸네미들이 먼저 반응한다. 어느 지인이 세월호 이후 아이들이 뉴스에 관심을 갖고 시사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더라니 우리 아이들을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고 집안일과 직장 일에 몰두하던 아내도 요즘엔 뉴스에 관심을 갖는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갖는 일은 좋으나 한 켠으로 씁쓸한 마음이 드는 이유가 있다. 왜곡된 언론의 폐해와 더불어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는 뉴스들이 자극적이고 험악한 것들이어서 더더욱 그렇다. 사건 사고가 멀리 다른 나라도 많이 있지만 점점 더 가까운 곳까지 근접해 온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든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다. 손에 들린 스마트폰이 소통의 도구임과 동시에 예전엔 들을 수 없던 수많은 사건 사고 소식이 수시로 들려오고 지인들이 보내는 메신저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댄다. 처음엔 귀찮다가 어느새 손에없으면 불안해 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미 끊을 수 없는 중독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자각만 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시골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예전 같으면 흐르는 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쉬었을 터인데 눈과 손가락은 연신 세상의 소식들을 훑어 입력하여 세상의 아우성이 머리를 시끄럽게 울려 댄다. 외부에서 들려오고 보여지는 것들이 더 많은 수록 내 안의 소리들과 정말 들어야 할 자연의 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우리 아이들이 험악한 세상을 보는 것보다 먼저 아름다운 것들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다 같은 마음이리라. 그런데 그럴 수 없는 문화 속에 이미 살아 버린 지 오래다. 부모는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뭐가 그리 바쁜지 오붓하게 한 가족이 한 상에 둘러 앉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성적보다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신앙교육을 통해서 병행해 보려고 했던 맘만 있었지 정작 구체적으로 아이들에게 이러한 방향으로 시도한 양육은 너무도 부족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나라 안팎에서는 더 식은땀 흘리게 하는 일들이 연일 계속된다. 그럴 때마다 무엇보다 더 속상한 것은 무기력함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무엇이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고 그래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지 못하게 하는지 욕망의 끝이 도대체 보이지 않고 끝날 줄 모른다.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그렇게 가만히 성실하게 살 수 없도록 하는 많은 것들과의 싸움이 인생이라 하고 세상이라 하던데... 그런 세상 가운데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것들과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시 맘을 고쳐 먹고서 고삐를 당긴다. 비 개인 뒤의 하늘을 보니 그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서라도 다시 길을 나서야 한다는 부름이 들리는 듯 하다. 역시 눈을 들어 어느새 파랗게 변한 하늘을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서 태풍도 오지만 그 너머 가을도 함께 온다고 하니 괜스레 꿍한 마음에 설렘이 스멀거린다. 그렇게 하늘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러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