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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ug 21. 2017

설국열차

쉴만한 물가 - 73호

20130816 - 설국열차


세상이 온통 꽁꽁 얼어버린 시간, 역설적이게도 더위뿐 아니라 답답한 정치적 현실과 고물가와 다양한 시국들이 더욱 폭염에 부채질을 할 즈음이어서인지 영화 ‘설국열차’를 타는 사람들이 700만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먼 미래의 이야기도 아닌 내년 즈음에 설국이 시작된다는 설정에서부터 오랜 역사 가운데 이어져온 체제 보수와 개혁 그리고 제3의 길에 대한 끝나지 않는 논쟁에 대해서, 프랑스의 원작 만화를 각색하여 영화화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각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논쟁과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단순한 유희를 원했던 이들에겐 시시할 이야기이며, 짜릿한 감동을 원했던 이들에게도 덤덤했을 터인데, 시국과 상징성 그리고 의미를 더듬어서 봤던 이들에겐 깨알 같은 장면 하나하나의 의미들이 깊이 각인되오 고민케 하는 그런 영화였다. 


역사 이래 체제의 지배계급은 늘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일정한 희생이 필요하고 그런 체제를 유지해 주는 대가로 당연히 지불되어야 하며,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한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기 자리(계급)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이 통제된 질서를 유지해 가는 것이 능력이며 그런 일을 하는 지배자에 절대복종하고 찬양하는 것은 각계각층에 있는 사람들이 당연히 수용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현대사의 모든 독재자들이 그래 왔듯이...


그러나 체제 유지를 위해서 부당한 희생과 복종을 강요하는 것을 거부하고, 좀 더 나은 모습으로 개혁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체제 전복 내지 변화를  꾀하는 자들에게는 마찬가지 일정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있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정작 동일한 체제의 끝에 가서는 학습된 독제체제와 기존 질서 이외의 길을 열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80년대 후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난 뒤 그 세력들이 비슷한 방황으로 당황했던 일들도 오버랲된다. 


오랜 시간 여러 모양으로 살아오다 이제 익숙해져 버린 체제에서는 모든 것이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틀로 고착화된다. 그러나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그 벽과 창문을 넘어 전혀 다른 세상의 문을 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문을 여는 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이 헤겔의 정반합으로 갈지, 아니면 빙하기 이후의 전혀 다른 세상처럼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런 그림들이 애초부터 계획된 대로 역사가 호락호락 이뤄져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으리라는 생각을 꿈이라고 말하고 설국열차 같은 세상에서 타협과 저항 사이에서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다. 열차는 굴러가고 있지만 물고 물려 있는 관계 속에서 모두가 타인의 희생 속에 공존해 있음은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바라기는 뫼비우스같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세상도 수없이 많은 변혁의 계기들이 생기기 마련이기에 우리의 눈이 앞 뒤만 보는 것이 아니라 때로 좌우도 그리고 아래 땅과 위로 하늘도 봐야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더 강력한 희망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이 높아만 간다. 그 하늘은 이 땅에서 허우적 대는 인생을 향하여 잠시 눈을 들라한다. 안일한 만족으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 아니라 살아 있음에 생동하는 것이 이 열차 안에서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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