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120호
20140815 - 소비자의 시선
다양한 리더십의 성향들이 시대마다 변한다. 여러 전문적 용어들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쉽게 말해서 “나를 따르라!” “진격하라!” “함께 가자!” 이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거기다가 섬기는 리더십이랄지 카리스마형이라든지 하는 등등의 유형도 덧붙일 수도 있겠다. 살기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영웅적 리더를 갈망한다. 자신의 힘으로 다할 수 없는 일들을 혜성처럼 나타난 영웅이 대신해 주길 바라고, 때로는 그런 영웅을 갈망하면서 현실의 어려움들을 극복해 가기도 한다. 난세일수록 더더욱 사람들은 이러한 영웅을 그린다. 최근 한 영웅을 다룬 영화의 흥행에는 이러한 경향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영웅적 리더들을 보면서 결국 오래도록 존경받는 이들은 꼭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물론 다른 여러 가지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난세 속에서 가장 소외되고 힘없는 백성의 편에 서든지 그들의 처지와 상황들을 깊이 공감하거나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기에 말 한마디 정책 하나 지도력들 모두 세심한 배려와 애정으로 감동을 주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따르고 존경해 마지않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요즘 우리나라의 일련의 일들을 보면 이렇게 국민이나 소외된 자들 그리고 소비자들의 시선으로 보고 정책을 펼치거나 일을 처리하는 일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굵직한 사건에서부터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일을 처리하고 국민이나 소비자는 그저 가만히 있든지 조용히 따라오든지 하라는 식이다.
세월호의 특별법도 유가족들이나 학생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이 진행되고 있다. 자동차는 해외로 수출하는 것과 내수용이 다르고, 서비스나 리콜도 분명히 다르다. 광고에서만 소비자가 한가족이고 실제로는 국내 소비자는 봉으로 안다. 이동통신사의 요금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더 기본료를 내야 하는지 언제까지 기만술에 소비자가 놀아나야 하는지 모른다.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그림 가운데 국외로 수출하는 과자나 식품과 내수용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있다. 양이나 질 모두 이건 사기꾼 중에도 아주 악질적인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변명은 구구절절하다. 대학 등록금은 또 어떤가? 벌써들 2학기 등록을 했을 터인데 독일의 예를 보면 우리의 등록금은 거의 재벌가의 자재 수준이다. 이 돈이 가계 부채의 주범임에 틀림없을뿐더러 정말 비싼 등록금에 비해 그만한 배움의 내용을 가르쳐 주고 있는지 따져 볼라치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복지정책도 부동산 정책도 가진 이들의 횡포 속에서 정작 그 일의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오래전 무상급식의 문제에서도 최근 경기도 지역의 아침 9시 학교 등교 문제에도 장이나 정당 그리고 학부모의 입장은 나오는데 정작 학생들의 의견은 아무도 들으려고도 물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이 나라에 오래도록 잘못된 군대식 리더십으로 인한 폐해인지 국민과 소비자의 시선으로 보는 법도 일도 정책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직시할 때마다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으로 답답해진다.
이러한 부분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면 나오는 소리들이 있다. 오해해서라 하고 잘 몰라서 그런다 하고, 국민과 소비자들에게 잘 설명하고 계몽하면 오해가 풀릴 거라 한다. 결국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국민과 소비자를 우둔하고 미련하고 자신들은 더 많이 알고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선거 때만 되면 그들의 말이 맞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그토록 착취당하고 이용당하면서도 또다시 표를 주는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착한 것인지 미련한 것인지 혼돈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깨어있는 민중들을 본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서도 탁월한 이들, 또 가장 낮은 곳에서 국민과 소비자들의 시선으로 함께하고 대변해주고 공감을 불러일으켜 정말 소외되고 약한 이들의 편에 서서 싸워주는 이들이 많아졌다.
수백 년 동안 그런 민중의 편에 서서 싸웠던 이들은 결국엔 기득권자들과 무지한 민중에 의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 부질 없는 것 같은 일들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한 처세 같은데도 불구하고 오늘도 여전히 이름도 빛도 없이 약자와 소비자의 편에 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싸우는 이들이 있다. 결국 이 나라는 이런 깨어 있는 이들의 희생으로 여기까지 지탱해 올 수 있었다고 믿는다. 오늘도 이 나라 곳곳에서 소외된 약자, 소비자의 편에 서서 공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마음을 담은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