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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ug 23. 2017

민수기 35:01-21 광야학교의 완충지대

민 35:01-21 

민수기 35:01-21 광야학교의 완충지대


여호와께서는 기업이 없는 레위인을 위해서도 거주할 성읍과 초장을 주고 가축과 짐승을 두도록 조치하고, 성읍의 크기와 도피성을 두는 목적과 살인에 대한 처벌 규정을 정해 주십니다. 


# 33:50~36:13은 수미에 같은 말씀으로 감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모두 모압 평지에서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들입니다. 대부분 땅에 대한 법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약속의 땅을 거룩한 백성으로 온전히 누리는 길에 대한 조언과 명령으로 오늘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우리에게도 영감과 교훈을 주시는 말씀으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① 가나안 사람들과 그들의 종교를 제거할 것(33:50-56)

  ② 약속의 땅의 경계를 정함(34:1-15)

  ③ 누가 분배할 것인가를 규정(34:16-29)

  ④ 레위인들을 위한 도시 지정(35:1-8)

  ⑤ 피 흘린 죄에서 땅을 정결케 하는 법(35:9-34)

  ⑥ 지파의 땅이 옮겨가는 것을 막는 규정(36:1-12)


# 법 규정과 함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① 대적들에게 승리를 주심(33장)

  ② 땅에 대한 약속(34장, 36장)

  ③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심(35)



1-8절 레위인의 기업은 이스라엘의 거룩에 대한 리트머스 종이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받은 기업중에서 레위인을 위한 성읍과 초장을 내어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그 성읍에서 레위인들이 거처하고 가축과 짐승들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성읍의 크기는 정방형으로 규격을 정해 주셨고(가로 세로 각각 900미터 정도), 모든 지파에서 48개의 성읍을 주되 그 중에서 6개는 도피성으로 정하도록 했습니다. 성읍을 줄 때는 많이 받은 자는 많이, 적게 받은 자는 적게 두라고 명합니다. 


땅을 제비 뽑고 각 지파의 인구수에 따라 분배받은 땅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 중에서 일부를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이스라엘의 거룩을 담당하는 레위인을 위해서 일부를 내어 주라는 요구는 자신들의 모든 기업의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기억하게 하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레위인은 그 성읍에서 이스라엘의 거룩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역할도 있었고, 하나님나라의 모형으로도 기능을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역에 걸쳐서 임재하고 계심을(이스라엘 전역에 48개의 성읍을 고로루 두어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자신들의 소유를 내어 놓음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기에 레위인의 성읍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상태를 점검하는 리트머스와도 같습니다. 


레위인의 성읍의 크기는 그렇게 크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48개 성읍의 크기에 레위인이 거하게 하고 그 성읍의 크기를 한정 지어서 레위인으로 하여금 너무 부해서 나태해 지지 않고, 너무 부족해서 불평하지 않을 정도의 적정규정을 준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신앙의 상태에 따라서 레위인은 이 성읍이 부족할 수도 있고 넉넉할 수도 있습니다. 레위인은 그래서 사명을 갖고 이스라엘의 거룩을 지도해야하고,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하고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서 더욱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했습니다. 레위인과 이스라엘은 상호 거룩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가정과 교회과 여러 공동체에는 이러한 상호 책임과 의무에 대한 부분들을 감당해야 할 곳이 많습니다.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지 아니하고 즐거이, 온전히, 넉넉하게 감당할 수 있길 원합니다. 


레위인을 위한 성읍을 줄 때 각 지파마다 획일적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내어 놓도록 했습니다. 분배도 드림도 모두 공평과 정의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많이 받은 지파는 많이 내어 놓고, 적게 받은 지파는 적게 내어 놓도록 했습니다. 거룩함과 신앙에 대한 부분의 무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에 대한 삶도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원칙에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첩경이 됩니다. 탐욕은 정 반대로 많이 가진자들은 적게 내려고 법망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가난한 이들은 없는것도 만들어서 내야 하는 부당한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나라는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나라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거하는 이스라엘이 그런 나라를 세워가도록 원칙을 정해 주신 것입니다. 


거룩함을 위한 나의 섬김과 시간관리는 과연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돌아봅니다. 삶의 영역 곳곳에서, 하루 일주일 한달 일년의 시간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교제와 영적 관리를 위해서 어떻게 시간과 장소를 활용하고 적용하고 있는가요? 그 시간의 여부가 우리 신앙의 현 주소 입니다. 또한 영적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자꾸만 이기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들이 생깁니다. 섬기고 나누는 일보다 받으려고만 하고 내 것만 내 가정 내 교회만 챙기는 일 들도 마찬가지 왜곡된 신앙입니다. 상호책임에 대한 부분들을 늘 마음에 품고 살지 않으면 금새 우리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옹졸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공평과 정의에 따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9-15절 주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우리의 생명을 살리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도피성은 부지중 살인한 자가 복수하는 자의 칼을 피해 판결을 받기까지 도피하는 곳입니다. 요단 동서에 각각 세개씩 두도록 했고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 그리고 거류하는 자들 모두 이 도피성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나그네와 여행객은 제외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가 원치 않는 실수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잘못을 저지를 때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살인을 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 안에는 많은 오해와 그로 인한 보복 살인들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보복의 악순환과 억울한 희생자들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이것이 더 발전되면 공동체 전체가 와해되거나 분열될 위험이 커집니다. 그래서 부지중에 살인하는 일들에 대한 구제책과 공저한 재판이 이루어지도록 완충지대를 만들어 배려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피할 곳이 요단 동편과 서면 모두 세개씩 두어서 너무 멀리 있지 않도록 했고, 남용되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나 타국인이나 거류민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은 무고하게 억울하게 생명을 잃거나 보복의 악순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의 뿌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이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지중에 살인하여 피의 보복이 진행되어 공동체를 위협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되기에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주신 것입니다. 더불어 또 다른 무고한 생명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영적 음행을 범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면서 주님이 주신 생명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부지중에 그 생명을 자꾸 잃어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완충지대, 완충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를 돌이키고 우리의 실수를 통해 배우게하고 살리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날마다 피난처 되시는 주님께 나아가는 일이 결국 사는 길이고, 실수를 줄여가는 일이며, 영생의 길을 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6-21절 거룩함은 외면 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다스려 져야 합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살인죄가 있습니다. 그것은 연장을 써서 살인한 자요, 마음으로 미워하며 보복할 것을 생각하고 행한 살인은 모두 용서받을 수 없는 살인죄입니다. 


살인 도구를 준비해서 누군가를 살해하는일은 치밀한 계획과 분명한 의지를 갖고 행한 것이기에 부지중에 살인한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계명을 알고 있고, 그래서는 안되는 일을 강행할 것이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요, 생명을 해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자행한 패역이요, 피를 흘린 죄로 당까지 오염시키는 심각한 범죄입니다. 그래서 연장을 써서 살인하는 이들은 그 죄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나도 모르게 이러한 살인을 자행하고도 무디어진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사법살인, 인격살인, 댓글 살인 등등 우리는 많은 말과 여타의 도구들을 가지고 살인하는 일을 자행함에도 의식하지 못한채 살아갑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미움은 결국 말과 행동으로 표출되어서 결국 보복의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미움은 결국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살인 바이러스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안에 미움이 존재한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것을 버릴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보복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생명도 하나님의 것이고, 모든 생사화복의 주관자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그 앞에서 잠잠히 하나님의 도우심과 심판을 기다릴 뿐입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더욱 많은 현실 앞에서 원수를 향하여 사랑하되 그럴 수 없거든 하나님의 처방을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께로 나아갈 때 우리는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주님을 부인하고 주님을 영화롭게도 안하고 주님 아닌 것을 섬기는 죄악에서 돌이켜 주 앞으로 나아오는 길만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더불어 그렇게 거룩한 백성으로 우리를 살리셨다면 우리는 외면 뿐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새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이로서 우리의 언행심사를 잘 다스려 생명을 살리는 자로 살아가면서 생명의 주권자인 주님에 대한 신뢰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기도

우리의 피난처요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 아버지

거룩을 위한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고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일정한 시간들을 정하고

항상 거룩을 살아가는 삶이게 하옵소서. 

거룩한 백성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소홀함이 없게 하옵소서. 

우리를 살리시길 원하시는 주님께 피하고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임을 깨닫고

외면과 내면의 모든 불의를 버리고

정결한 심신(心身)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미움을 버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신뢰하며 인내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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