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ug 27. 2017

민수기 35:22-34 광야학교의 생명 사랑

민 35:22-34 

민수기 35:22-34 광야학교의 생명 사랑


레위인이 거주하는 성 중에서 도피성으로 도망친 부지중 살인한 자에 대한 행동지침과 판결 규례를 설명하고 고의로 살인한 자에 대한 처벌과 약속의 땅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땅이기에 부정하게 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33:50~36:13은 수미에 같은 말씀으로 감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모두 모압 평지에서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들입니다. 대부분 땅에 대한 법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약속의 땅을 거룩한 백성으로 온전히 누리는 길에 대한 조언과 명령으로 오늘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우리에게도 영감과 교훈을 주시는 말씀으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① 가나안 사람들과 그들의 종교를 제거할 것(33:50-56)

  ② 약속의 땅의 경계를 정함(34:1-15)

  ③ 누가 분배할 것인가를 규정(34:16-29)

  ④ 레위인들을 위한 도시 지정(35:1-8)

  ⑤ 피 흘린 죄에서 땅을 정결케 하는 법(35:9-34)

  ⑥ 지파의 땅이 옮겨가는 것을 막는 규정(36:1-12)


# 법 규정과 함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① 대적들에게 승리를 주심(33장)

  ② 땅에 대한 약속(34장, 36장)

  ③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심(35)



22-25절 여호와께서는 부지중 살인한 죄는 보복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악의가 없이 우연히 사람을 부지중에 해하였다면 피해자의 가족들이 보복하는 일에 희생되지 않도록 규례대로 판결하여 도피성으로 돌려보내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곳에 있도록 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생명을 인위적으로 빼앗거나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부지중에 실수하여 사람의 생명을 해한 경우가 발생된다면 더이상의 생명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보복의 고리를 잇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규례대로 판결하게 했지만 마음에 품은 피해자 가족의 앙금이 보복하려고 할 때 당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 살인한 자는 도피성으로 보내서 그곳에서 거하도록 했습니다. 고의가 아닌 경우에 한해서 또 다른 살인은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당한 자는 많이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멀쩡하게 의도치 않은 실수로 살아 있는 사람의 생명을 해하게 하는 일은 최대한 막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범죄할 것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런다고 이것을 우리가 악용해서도 안되고 남용해서도 안됩니다. 어떻게든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고,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중요하겠습니다. 



26-28절 부지 중의 잘못일 지라도 그에 대한 대가는 지불해야 합니다. 

살인자는 도피성으로 들어가면 함부로 지경 밖으로 나와서는 안됩니다. 만일 이를 어기고 나와서 밖에서 피해자 가족이 그를 죽일지라도 그에게는 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살인자는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에 살다가 마침내 죽은 후에야 자기 땅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레위인의 성읍이 정방형으로  사방 900여미터의 공간입니다.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오래도록 이곳에서 피신해 있어야 했다면 그의 삶은 자유는 상실된체 유배지와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비롯 부지중에 지은 죄일지라도 그것을 통해 생명은 잃지 않겠지만 부주의한 죄에 대한 대가는 지불해야 합니다. 이러한 부분이 없다면 얼마든지 이 제도는 악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이 우선이지만 또한 공의가 바로 세워지는 일도 공동체를 온전하게 세우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실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복은 면할 지라도 책임은 감당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생명에 대한 부분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과 마음으로 지은 살인에 대해서도 좀더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적극적으로는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서도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당대에만 잘먹고 잘 살련느 이기적인 생각에는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 얼마든지 경시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한 일들이 우리 당대에 머물지 않고 그 피해가 후손에게까지 가도록 하는 일들은 심각한 범죄행위입니다. 탐욕을 버리고 좀더 불편하게 살아가는 삶의 질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때입니다. 



30-32절 생명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고의 살인자라 할지라도 사형을 결정해야 하는 재판은 공정해야 하며(두 증인 이상), 고의로 살인한 자는 어떤 경우라도 속전을 받고 면죄 받지 못하고 죽이도록 했고, 이 외에 도피성에 피한 자는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돌아가지 않게 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억울함 없게 하고, 살인자라 할지라도 그가 공정한 재판을 통해서 판결이 확정되도록 증인의 숫자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의로 살인한 자는 속전을 받고 풀어주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는 반드시 죽여야 했습니다. 도피성에 피하여 판결 후에라도 속전을 받고 거주지로 바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판결을 통해 무고함이 해명되었다 하더라도 뜻하지 않게 죽임을 당한 가족들은 앙금이나 보복의 마음까지 해소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제도를 악용하여 돈으로 생명을 살 수 있다는 경시풍조가 만연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오가는 문제에 있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하며, 공정하게 판결이 될 수 있어야 하며 어떤 경우에라도 또 다른 생명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사법정의가 세워지는 일이 참으로 시대마다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현실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돈과 권력 앞에 사법의 정의가 무너지고 고무줄처럼 돈과 권력 앞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가 계속되다면 사회적인 혼란은 물론 생명경시풍조가 만연되어 결국 살아남은 자마저도 혼돈스런 세상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정의가 물같이 긍의가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는 나라입니다(암 5:24).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러한 사법정의를 세우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윤리적 소비나 생명 존중에 대한 여러가지 분야의 적폐들을 청산하고 바로 잡아가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종교적 욕심을 채우기 위한 행동들이 자칫 이기적인 행동으로 치닫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미 교회는 권력과 돈을 가진 거대한 공룡과 같은 집단입니다. 충분히 자신들의 탐욕을 종교적 신앙윤리로 위장하여 돈과 권력의 힘으로 세상을 향하여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면서 결국 생명을 경시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더욱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분별력을 잘 갖길 원합니다. 



33-34절 약속의 땅을 정결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레위인의 성읍과 도피성 제도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목적과 가치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더럽힌 땅은 피흘리게 한 자의 피를 통해서만 속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땅은 여호와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이기에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은 생명을 통해서만 속전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이 결국 살고 있는 땅을 더럽힙니다. 인간의 탐욕이 자연과 세상을 부정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과, 여호와께서 거룩하시기에 그들도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광야학교에서 오래도록 배워왔습니다. 이제 실제 약속의 땅이 현실이 되어서 그곳에서 살아갈 때 마침내 이스라엘은 그 땅에 더렵혀진 우상숭배와 음행을 청산하고 거룩한 땅으로 세워가야 합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더럽혀진 땅이 다시금 거룩한 땅으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죽음을 통해 대속하셨기에 우리도 땅도 그 부정에서 정결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은혜를 입은 우리가 거룩을 온전히 세워가는 일에 함께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거룩하게 대속해 주셨기에 거룩을 세우가야하고,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거룩을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전에 모든 부정한 데에서 구원을 받아 새 생명, 새 사람, 새 백성, 새 인류로 거듭난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부정하고 음란하며 타락한 가치와 세계관과 문화에 휩쓸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가치와 세계관과 거룩함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하나님나라,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삶의 내용과 방향과 열매는 우리 자신과 공동체와 세상을 주님의 몸된 성전으로, 거룩한 공동체로, 주님과 함께 동행하여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되어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날마다 거룩한 길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임재, 코람데오, 임마누엘 가운데 온전히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새 생명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빠진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허락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우리에게 주어진 새 생명의 가치를 또한 귀하게 여기는

믿음을 주옵소서. 

부지중에 잘못한 일일지라도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지불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더욱 죄가운데 빠지지 않길 힘쓰는 자 되기 원하오며, 

우리가 사는 땅 곳곳에

거룩함을 심는 삶이길 원하옵고,

새생명 주신 주님 앞에

날마다 거룩을 향하여, 하나님의 임재앞에서

합당하게 살게 하옵소서. 

매거진의 이전글 민수기 35:01-21 광야학교의 완충지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