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26호
20120831 - 방천(防川)
사실 그 일을 하러 가기는 정말 싫었습니다. 더더군다나 날이 더워서 숨쉬기도 헉헉거리는 그런 날이면 더더욱 그랬지요. 비가 오고 난 뒤에도 꼭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물이 제대로 들어 있는지 어디 물이 새는지는 없는지 살펴야 했지요. 산다랑지에 계단처럼 주욱 늘어져 있는 논을 논다랑지라고도 하고 논배미라고도 불렀습니다. '삿갓배미'는 그런 다랑 지나 배미 중에서 작은 것을 일컬었던 말이지요. 천수답 논농사를 짓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을 잡는 일부터 시작해서 논을 가는 일도 쉽지 않았지요. 기계가 못 들어가니 소나 사람의 손으로 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논두렁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한 마지기에 논두렁은 들에 있는 논의 갑절이나 있었고, 그나마 풀은 또 왜 그리 잘 자라는지... 농약을 치는 일도 그렇고, 나중에 모내기나 기타 모든 일들이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산을 일구어서 바위로 대충 계단처럼 쌓아서 그 위에 여기저기서 모은 흙을 얇게 덮어 놓은 터라 천수답 계단식 논들은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농사였습니다.
비가 온 뒤나 가끔은 논을 둘러봐야 했습니다. 산다랑지에서 특별히 필요한 살핌은 바로 방천이었습니다. 흙도 얇은뿐더러 두더지 같은 녀석들이 구멍을 내면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논의 물이 빠져 버리고 처음엔 조그맣던 구멍이 나중에는 논두렁을 아예 무너뜨리기도 했지요. 원래 방천이라는 말이 물을 막는 둑인데 사투리로 ‘방천나다'하면 이 둑이 무너지거나 터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논에 가면 일부러 논두렁을 일일이 살펴야 했습니다. 초기에 발견하기도 하고, 물고에는 물이 많이 들어오는데 논이 말라 있는 곳이 있다면 여지없이 그런 물구멍으로 물이 새고 있다는 증거였지요. 그럼 냇가로 가서 돌을 주워다가 그 구멍을 막아 주어야 했습니다. 자칫 작은 돌로 막을 수 있는 이도 서둘러 막지 않아서 논두렁이 와그르르 무너져 내리면 정신 정신없이 막아야 했습니다.
들에는 논과 논 사이의 높이가 거의 일정하지만 산다랑지는 그 차이가 거의 사람 키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번 논둑이 무너지면 다시 그 논둑을 보수하는 일은 하루 이틀을 꼬박 걸리는 일이었지요. 거기다 무너져 내린 부분은 벼가 다 못쓰게 되어 이래저래 손해가 나게 됩니다. 자주 살피고 미리미리 아주 조그마한 구멍이라도 미연에 방지해야만 그런 손해를 줄일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실수하고, 작은 유혹에 빠지는 것 등 처음엔 우습게 보이고 그냥 그런 모든 것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고 하지만 모든 일은 작은 일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주 사소한 잘못이나 유혹들, 그리고 오류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고 방치한다면 얼마 가지 않아 여러 가지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일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우리의 눈과 귀와 생각을 야금야금 물이 새게 하는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성적(性的), 도덕적, 사상적, 사회적으로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썩어 있고, 어느 곳엔가 물이 새고 있는 그런 일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점검하고 돌아보지 않으면 어느새 방천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가을이 오고 있는데 여기저기 태풍만큼 흉흉한 소식들이 전해지고, 선거로 몸살을 앓게 되는 일에 미리 염려가 엄습합니다. 한번 더 우리 주위를 살펴서 더불어 살아가는 일에 필요한 방천을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금 더 함께 나누며 희생하므로 자라나는 아이들이 마음대로 꿈을 꾸며 놀 수 있고 아름다운 수고의 열매를 기대하는 그런 곳으로 함께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