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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Sep 26. 2017

예레미야 06:01-15 포학한 성 예루살렘을 벌하리라

렘 06:01-15 

예레미야 06:01-15 포학한 성 예루살렘을 벌하리라


포학한 예루살렘의 임박한 재앙의 상황을 실제적으로 예언하고, 포학이 가득한 모습들을 제시하며 황폐하게 되리라 선언하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 그들을 향해 본노하며 결국 모든 소유를 잃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또한 가증한 일을 행한 그들을 반드시 벌할 것에 대해서도 선언하십니다. 


1-5절 하나님의 심판의 심판을 피하려거든 이제라도 여호와의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인근에 사는 베냐민 지파에게 피난하고, 나팔을 불고, 깃발을 들라고 명합니다. 북방에서 큰 파멸을 엿보는 자들이 오는것이 암박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자칭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2)이라고 하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는 포학이 가득한 성(6)일 뿐입니다. 이들을 멸절하기 위해서 이방 왕들이 모의하며 쳐들어 옵니다. 급기야 이들을 여호와께서 지휘하시면서 시간을 막론하고 요새를 헐라고 명령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실 때도 만일 전쟁이 임박하다는 징조와 소문을 듣게되면 피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24, 막13, 눅21). 전쟁이 참혹해서도 그렇지만 심판이 분명하다는 것도 함께 강조됩니다. 이제 남유다의 예루살렘을 향해서도 동일한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예루살렘 인근에 살고 있기에 북방에서 오는 군대를 피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예루살렘을 아름답고 우아한 성이라고 생각하고 그곳에 있으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속에서 온갖 포학과 음행과 우상숭배를 일삼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이제 이방의 왕들이 군대를 몰고와서 예루살렘을 칠 준비를 합니다. 급기야 여호와께서는 이들을 진두지휘하면서 정오든지 날이 기울었든지 이제 올라가서 그 요새를 헐라고까지 명합니다. 남유다를 향한 심판이 임박했고 분명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가득하고, 정의와 공의가 무너졌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고 탐욕으로 점철된 곳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며 거룩한 성전과 하나님이 언약이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너무도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가장 거룩해야 할 곳이, 가장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섬겨야 할 곳이, 가장 정의와 공의가 바로세워져야 할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답고 우아해야 할 예루살렘이 지금 하나님의 심판 앞에 헐려버릴 위기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고를 여전히 듣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영적 감각이 이미 죽어버린 상태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가 몸담은 곳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거해야 하는 거룩한 성전으로 삼으신 교회된 우리는 우상숭배와 음행과 정의와 공의로워야 함 앞에서 뭐라 마할 수 있을까요? 그 질병이 오래 되어 아예 아픔과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 스스로 자정 능력 없이 오판한 신앙을 가지고 헛된 확신으로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6-8절 예루살렘은 이제라도 여호와의 훈계를 듣고 모든 포학한 것들을 멈춰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을 에워싼 군대를 향하여 성을 넘을 목책을 만들라 합니다. 예루살렘은 벌받을 성이며 포학으로 가득한 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예루살렘 성 안에는 폭력과 탈취로 인한 질병과 살상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선지자를 통한 훈계를 전하지만 그들은 이를 싫어하니 하나님은 심판을 진행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포학한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더 포학한 북방의 군대를 들어 쓰는 아이러니를 보게 됩니다. 더이상 선지자의 말과 하나님의 여러 통로를 통한 계시를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깨어나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포학이 가득한 그들에게 남은 일은 이제 벌 받을 일만 남은 것입니다. 많은 제사장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선지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이 성이 이렇게 폭력과 탈취를 자행하고 이로 말미암은 질병과 살상이 계속되고 있는지 통탄할 일입니다. 귀를 막고서 여호와의 훈계를 듣지 않으려 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기에 그 끝은 멸망 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땅을 황폐하게하여 주님 없는 땅으로 만들라 선포합니다. 


예루살렘의 포학을 폭력과 탈취로 설명하고 그로 인한 결과가 질병과 살상으로 나타납니다. 힘있는 이들의 횡포가 힘없는 이들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군림하면서 그들의 고혈을 탈취합니다. 피폐해진 백성의 삶은 질병과 많은 이들이 희생당하는 결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성이 무너져 가는 상황에 백성이 돌이키지 않는다면 마침내 이 땅은 황폐하여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될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질병과 살상이 가득한 땅이 되어버린 것은 전적으로 불순종하고 어리석으며 무지하고 패역한 이스라엘로 말미암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을 잘 인도해야 할 선지자와 제사장 그리고 지도자들의 타락은 결국 백성들도 무지한 모습으로 전락해 버려서 예루살렘은 총체적으로 타락해 버린 것입니다. 


이 나라는 둘째치고 오늘 교회의 모습들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여호와의 훈계를 즐겨 듣지 아니하고 외부의 공격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스스로 돈과 많은 자원들로 힘이 있는 줄 착각하여 교회 안과 밖의 힘없는 이들을 향한 정죄와 포학을 스스럼 없이 자행하고도 그것이 정의인줄 착각하는 알량한 신학과 대의정치 체제의 책임을 특권과 권력으로 착각하여 서로 우두머리가 되겠다고 부정부패를 일삼으면서, 정작 하는 일은 폭력과 탈취한 지금을 더 많이 모으고 누리려는 이기적인 모습들이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우린 그런 교단과 교회의 일원으로 있습니다 지도자의 위치이든 누구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 모두는 동일한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손가락질은 쉽지만 내가 그 길을 바르게 가는 일은 더욱 어렵습니다. 더 황폐한 땅이 되기 전에 정의를 세워갈 그 한사람이 되어가는 일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9-12절 여호와께서 분노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경책하는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때 남김없이 다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듣지 못합니다. 심지어 이렇게 전하는 말씀을 자신들에게 하는 욕으로 여기고 즐겨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배신과 반역입니다. 이 일은 총체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분노는 남녀노소르 막론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되어서 이제 유다의 모든 소유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삶의 자리에서 거룩한 백성의 삶을 추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 아닌 것을 주인삼고 자신들의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총체적으로 타락해 갔습니다. 그들을 깨우기 위해서 세운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며 오히려 평안한 때에 심판을 예언한다고 오히려 그것을 욕으로 여기며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해서 듣지 않는다면 더이상 회복할 길이 요원한 것입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을 살게 하는 말씀을 욕으로 여긴다니 생명을 전하는 말씀에 대한 모독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경책 하시는 말씀에 대한 반응은 메신저를 위협하고 비방하는 것도 아니요, 나와 상관 없는 이야기라고 회피하는 것도 아니요, 듣기 싫은 이야기라고 욕으로 폄하하는 것도 바람직 한 반응은 아닙니다. 마음의 할례 곧 자신의 탐욕을 내려놓고 가감없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용했어야 합니다. 핑계와 지식과 이유와 거부반응이 더 많아지고 길어질수록 이미 그 안에는 불순종과 불신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불순종은 여호와의 분노를 낳고 마침내 우리가 소유한 많은 것들을 타인의 소유가 되게 합니다. 자기가 수고한 땀의 열매를 얻고 누리고 물려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13-15절 백성들의 탐욕과 종교지도자들의 거짓 행함의 가증한 일이 결국 여호와의 벌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백성들의 탐욕과 종교지도자들(선지자, 제사장)의 거짓은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닙니다. 백성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모두가 탐욕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말씀을 맡아 거룩한 백성으로, 거룩한 나라로 살게 해야 할 제사장과 선지자는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면서 거짓 예언을 일삼고 이를 빌미로 자신들의 밥그릇을 채워가는 형국입니다. 이 가증한 일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기에 하나님은 그들이 마침내 엎드러져 벌을 받아 거꾸러지리라 선포하십니다. 


탐욕으로 가득찬 이들은 권력자나 피지배자, 유식한 자라 무식한자, 무자나 가난한 자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이들의 탐욕에 점철된 신앙에 대하여 심각하게 경고하여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데 오히려 거짓을 행합니다. 그러니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이 없이 총체적으로 심각해 진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잘못된 메시지를 전하고 탐욕에 물든 판다을 하게 되니 이들의 모습은 백성들의 완악함을 더 강화시켜 버립니다. 샬롬(평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죽을 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문제가 없다하고 잘 될 것이라 하면서 그 심각성을 깨우지 못합니다. 멸망이 다가오고 있지만 여전히 만사형통(萬事亨通)을 주장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사람들의 귀에 좋은 이야기를 합니다. 말씀을 맡은 자들의 이러한 타락은 심각한 수준에 이릅니다. 


이들의 가증한 모습은 일상 속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진행됩니다. 그러니 그들의 탐욕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죄를 범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해 집니다. 이렇듯 수치를 모르고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완악함 뒤에 남은 결과는 하나님의 벌로 멸망당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맡은 자들의 오판과 무지와 탐욕은 그것이 미치는 영향이 교회의 생명을 좌우합니다. 탐욕과 거짓은 거룩한 공동체와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것들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고, 시대를 옳게 분별하며, 지금 우리 자신의 문제와 대안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닫고, 탐욕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이루어지길 힘써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부여잡고 추구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지도자와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 기도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 아버지

시대를 옳게 분별할 뿐 아니라

오늘 교회된 우리의 모습을 말씀의 거울에 비춰서

얼마나 우리가 빗나가고 오판하고 왜곡하는지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는 영적 감각을 허락해 주옵소서. 

임박한 심판을 늘 기억하여 깨어 살게 하옵시며

우리 가운데 있는 포학 곧 

모든 폭력과 탈취로 자행되는 일들을 멈추고

주의 교양과 훈계를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고

주님의 말씀을 잘 듣는 귀를 허락해 주시고

모든 세대가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로서의 자부심을 갖되

거룩한 백성과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는 오직 주님의 소유로 주님의 통치를 따라 살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탐욕과 거짓등의 가증한 일들을 버리고

우리 주님 앞에 부복하며

주께서 이끄시는대로 온전히 순종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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