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Sep 27. 2017

예레미야 06:16-30 여호와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렘 06:16-30 

예레미야 06:16-30 여호와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율법을 따른다면 다시 평강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이스라엘은 제의적으로만 나아갈 뿐 불순종의 길을 걸어갑니다. 이어서 북방 민족이 얼마나 잔인하고 부자비한지 강조하고 두려워하며 슬퍼하고 통곡하라 합니다. 그 날이 갑자기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련을 통해 이스라엘을 온전하게 빚어 보길 원하셨지만 악행이 근절되지 않았기에 마침내 버려진 은과 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16-21절 하나님께서 제의에 앞서 정의의 실천 곧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옛적 길 곧 선한 길을 찾고 그리로 간다면 평강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스라엘은 거역하고, 파수꾼을 통해 말씀을 전하지만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재앙을 선포합니다. 이는 그들의 생각의 결과이면서 여호와의 말과 율법을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그러면서도 비싼 제물을 가지고 제의적으로 나오는 이들의 제물을 달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총체적으로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찾아야 할 옛적 길과 선한 길은 우선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로도 볼 수 있고, 또한 그곳에서 주신 거룩한 백성의 길 곧 율법의 길(19절)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길로 간다면 심령이 평강을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길로 행하지 않습니다. 또한 팟꾼을 세워 나팔 소리를(여호와의 말씀) 부는데도 불구하고 듣지 않겠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과 인도에 대한 불순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당하는 재앙은 스스로 자초하고 책임져야 할 재앙이면서(그들의 생각의 결과), 또한 하나님께서 배반한 백성을 징계하고 보복하는 차원(21절의 ‘장애물’)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제의적으로는 귀한 선물과 제사를 준비하였지만 여호와께서 이 번제를 받지 않고 희생제물도 달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과 율법에 대한 순종 곧 선한 삶이 배제되고 실천되지 않는 상태에서 드리는 제의가 아무리 귀한 예물을 드린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삶이 예배자가 되지 아니하면 아무리 값비싼 제물과 예물을 드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헛된 예배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제물보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십니다. 제의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형제와 화해하라신 주님의 말씀처럼, 삶에서 먼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자로 거룩하고 흠없는 제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됨은 단지 교회에 소속되고 예배에 충실한 것만 한정하는 것은 온전한 신앙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우선 요구되는 선한 길로 행하는 삶을 따르고난 뒤에 하나님께 제의를 드릴 때 이것을 받으신다. 이렇게 믿음과 삶이 일치된 신앙이 신실하고 온전한 믿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제의적 종교로 신앙과 예배의 삶을 소극적으로 가까스로 치루듯 예배하고 출석 도장 찍는 식으로 드리든지, 아니면 화려하고 값비싼 제물을 준비하여 내는 것으로 예배하든지 먼저 보시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상에서의 삶이 정말로 그 말씀의 뜻과 율법의 가르침 곧 선한 길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백성으로 살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오늘도 나는 예배자입니다. 삶의 자리 바로 그곳에서 먼저 순종의 제사를 드리고 이어서 제의적으로 예배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 받으시는 분입니다. 신실한 삶이 배제된 종교적 행위(제의적 행위)는 그저 몸짓에 불과할 뿐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예배라 할 수 없습니다. 

#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 내가 서있는 곳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 내 영혼 거룩한 은혜를 향하여 / 내 마음 완전한 하나님 향하여 / 이 곳에서 바로 이 시간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어노인팅 ‘나는 예배자입니다’ 찬양 가사 중에서)



22-26절 슬퍼하고 통곡하라 멸망시킬 자가 갑자기 우리에게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유다 백성들의 죄악을 고발하시면서 계속 이들을 심판할 도구인 북방의 군대를 군데군데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북방에서 오고 큰 나라이면서 잔인하고 사랑이 없으며, 그들이 오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군대입니다. 소문만 들어도 손이 약하여지고 고통과 아픔이 해산하는 여인 같을 정도입니다. 결코 그들을 대적할 수 없고 피할 수 없기에 다만 그 앞에서 슬퍼하면 통곡할 뿐입니다. 그들은 갑자기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방 군대의 잔인함과 용맹이, 하나님의 심판의 측면에서는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반드시 이루어지며, 두렵고 떨림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면,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고통이 클 것임을 말하기에 해산의 고통에 비교합니다. 그 앞에서 다만 슬퍼하며 통곡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심판이 시작되는 상황 앞에서 인간의 어떤 노력과 수고가 그것을 피하고 면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 고통이 그리 오래지 않길 기도하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에 깨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북방의 군대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도구로서, 하나님의 통치에 따라서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임받고 있습니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군대, 입박한 심판, 피할 수 없는 현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며 여호와의 말과 선한 길을 따르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아는일에 무지했고, 진실과 정의 그리고 공의를 행하는 데에 게을렀으며,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아닌 것들을 섬기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계시와 가르침들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떠난 결과로 마침내 당면하게 될 심판의 현실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매순간 매시간 매일 채워가는 것은 무엇인가요? 



27-30절 연단과 제련에도 악행을 근절하지 않는다면 버려진 은과 같은 신세로 전락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비롯하여 여호와의 백성들을 연단하고 제련하는 자로 삼아서 그들의 길을 알고 살피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반역한 자, 비방하며 돌아다니는 자, 놋과 철같은 자, 사악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풀무불에 담금질을 해 단련하여 이모든 악한 것들을 제거하려 했지만 결국 제거되지 않아서 버림 받으니 사람들이 그들을 ‘내버린 은’(찌꺼기)’이라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여러가지로 표현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와의 관계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반역한 자들이며, 하나님과 이웃사이에 소동을 일으키는 자들이며, 놋과 철처럼 강퍅하고 고집스러운 자들이며, 사악한 자라고 표현합니다. 모두다 풀무불에서 맹렬히 불려 불순불이 제거되어야 하는데, 헛된 일이되어서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었습니다. 결고의 말을 듣고 징게를 받았음에도 죄악으로부터 떠나기를 거절하는 이스라엘도 더 이상 새로워질 가능성이 없기에 버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길 거절하고 자신의 악한 길을 가는 이스라엘은 제련에 실패한 벼려진 은일 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더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쓸모 없다고 판단하고 버리셨기에 이스라엘에게는 멸망의 심판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연단과 제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는 주님이 손길을 연단과 제련의 과정으로 깨닫고 볼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믿음을 갖길 원합니다. 또한 그렇게 깨닫게된 것들로 편협한 신앙을 양산하기보다, 겸손히 수용하고 돌아보면서 참으로 주께서 원하시는 선한 길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안에 제거 되어야 할 잘못된 관행과 습관과 왜곡된 전통들 그리고 개인과공동체에 쓸모없는 것들을 모두다 버려야 합니다. 관행과 관습, 전통과 전례라는 이유로 고질적으로 자리하고 있고 도무지 변하지도 바뀌지도 성장하지도 열매 맺지도 못하는 현실, 맛을 잃은 소금처럼 다만 밖에 버려질 뿐입니다. 



* 기도

우리에게 선한 길을 허락하시고 나팔소리로 깨워서

거룩한 주님의 길로 행하게 하시고 

그런 주님을 알아가고 묵상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의보다 먼저 삶에서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고

주님의 찾으시는 예배자로

어디에 있든 바로 그곳에서 예배자로 부족함 없게 하옵소서. 

그 어떤 예물 보다 순종의 제사를 합당하게 드리게 하옵소서.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 깨닫고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고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우리 안에 오랜 전통과 전례와 관행과 관습이라는 이유로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그대로 안주하지 아니하고

바로 고쳐야 한다는 믿음으로 신실하게 행하게 하옵소서. 

단련하는 주님의 손길을 따라

버림받은 은이 아니라 보배로운 소유로 변화 성숙되는

그래서 정금같이 되는 역사되길 소망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레미야 06:01-15 포학한 성 예루살렘을 벌하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