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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Oct 24. 2017

예레미야 17:19-27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렘 17:19-27

예레미야 17:19-27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에게 조상들이 불순종한 안식일을 이제는 거룩히 하라고 명합니다. 그렇게 하면 계속 열방 가운데 예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멸망하게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19-20절 여호와의 말씀은 모든 세대 모든 상황에서 들어야 살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유다왕들이 출입하는 문과 평민의 문에 서서 유다왕과 모든 백성,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합니다. 


예레미야의 간구(17:14-18)에 대한 응답처럼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듣도록 말씀을 전하라고 합니다. 출입하는 모든 문에서 백성들(유다 왕들 뿐 아니라 평민들까지)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합니다. 유다 왕과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으로 국한하고 있지만 결국 이 말씀들은 오늘 우리에게까지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출입하는 문에서 전하라 하는 것은 단순히 예배당 안에서 뿐 아니라 골방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적용해 가야 하는 뜻입니다. 


아직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말씀을 맡은 예레미야만이 아니라 적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모든 이들이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된 새이스라엘이요 새백성이요 새사람된 이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기본은 바로 주의 말씀을 주야로 듣고 묵상하며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나와 자녀들 그리고 함께 하나님 나라의 가족된 모든 이들이 듣도록 온 몸으로 듣고 순종하며 전해야 할 것입니다. 



21-23절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모든 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문으로 들어오지 말고, 집에서 짐을 내지도 말고 어떤 일도 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조상들에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거룩히 하라고 하면서 조상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고 목을 곧게 하여 듣지도 않고 교훈을 받지도 않았다고 고발합니다. 


안식일 제정은 창세기와 출애굽기에서는 여호와께서 창조 후 안식한 것을 근거로 제정하고, 신명기에서는 출애굽을 근거로 제정합니다. 창조 후의 안식은 인간 창조의 목적이 안식이며, 우리의 근본과 정체성은 결국 여호와로 말미암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고백하는 것이요,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결국 주님의 뜻에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을 근거로 제정하시는 것도 마찬가지로 애굽의 종되었던 데에서 해방되어 구원받은 날을 기념하고 고백하는 의미로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결국 창조와 출애굽 모두 우리의 근본과 정체성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안식일을 지킴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명과 창조의 일이 결국 여호와의 주권에 해당되고 여호와의 허락하심에 따라 창조와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고백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짐을 지고 문을 들어오지 말라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일들의 성취여부는 여호와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알고서 여호와를 의뢰하고 믿으며 사는 것이 결국 일의 성취와 결과를 보장받는 것이니 이 때에 일하는 것은 곧 여호와의 주권을 부인하고 여호와를 신뢰하지 못하는 반역적 불신앙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조상들은 여호와의 명령에 불순종하는데 결국 여호와께서 창조하시고 인도하신 모든 역사를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행동입니다. 그것이 결국 불순종이요 불경청이요 교만입니다. 결국 안식일 준수에 관한 것은 여호와의 율법의 준수 여부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식일 준수 여부는 여호와의 율법에 대한 준수 여부를 가늠하는 시금석과 같습니다(참고로 안식일 준수 여부로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으로 부상되는 시기는 포로기 이후의 신학으로 보여집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은 우상숭배와 혼합주의 그리고 정의와 공의가 무너진 것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엄밀하게 보면 안식일을 거룩히 하지 않으면 여호와의 율법에 대해 불순종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는 데로 귀결되니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구원을 완성하신 부활의 날을 기념하며 주일에 특별한 시간을 가집니다. 창조와 출애굽과 마찬가지로 부활의 날도 결국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고 새 피조물되게 하신 날이니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우리 주님이 그 목적을 완성하셨기에 오늘 우리는 주일을 거룩히 하므로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거룩한 백성, 거룩한 교회임을 인정하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참된 안식은 주님과 함께 함이요, 쉼은 주님안에 있으니 우리 주님을 믿는 이들은 참된 안식 안에서 주일 뿐 아니라 매일을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주의 인도와 주의 뜻을 따라 즐거이 살아가며 일해 가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24-27절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생사화복의 주권이 주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안식일 준수 여부에 따른 결과를 제시하십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하면 왕위의 보존과 백성의 생존이 이 성 안에서 영원할 것이며, 심지어 온 나라에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예배하는 이들이 제물을 들고 올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안식일을 거룩되게 하지 않으면 성문과 궁전은 불타고 삼켜 꺼지지 않게 되리라 하십니다. 


예루살렘 성문으로 왕들과 고관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출입하고 백성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평화롭게 약속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이들이 잘 사는 것을 표현합니다. 심지어 이 성이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의 평화와 보호는 혹은 병거와 말을 의지하지만 여기서는 오직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허락하시고 지켜 주셔야만 병거와 말을 타고 왕과 고관들과 심지어 백성과 주민들도 왕래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 밖의 땅과 평지와 산지도 마찬가지이며 그렇게 여호와의 보호사심으로 그곳으루부터도 번제와 희생과 소재와 유향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성전으로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식일에 대한 불순종은 결국 모든 것을 헛되게 만듭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불순종한 이들에게 남은 것은 멸망 뿐이라는 것이고, 지금 조상들이 바로 이 길로 행한 결과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치적 안정과 신앙적 자유함은 오직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외교적인 노력과 자신들이 가진 힘과 능력으로 해결해 보려 할 터이지만 어림없는 일입니다. 예루살렘 성의 안녕은 여호와의 허락하심에 주권하에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둘린 유다 성읍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신뢰하는 자들은 변함없이 여호와 앞에 나아와 예배할 수 있겠지만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더이상 예배할 수도 없고 이 문으로 출입할 수도 없으며 소멸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치적 신앙적 자유는 여호와의 주권 하에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기도
우리의 안식과 구원의 주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의 통치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매일의 삶이 주님과 함께하고 

주의 인도를 따라 

주 안에서 안식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임을 늘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안녕과 평화는 

오직 주의 주권 하에 있으니

주를 인도를 따라 매일 매일의 삶이

온전히 주를 의뢰하는 삶으로 점철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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