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理判事判)

쉴만한 물가

20140906 - 이판사판(理判事判)


평소 쓰는 말인데 이 용어의 한자가 숫자의 이(二)와 사(四)가 아니라 이치(理)와 일(事)에 관련된 용어인 것을 알고 의아해했었다. 심지어 사(四)는 죽을 사(死) 자로 알고 죽기를 각오한 표현으로도 생각했었다. 여하간 ‘마지막 기회'라는 의미로 정착된 이 말도 역시 유래가 있었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불교의 승려들은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사찰의 폐사를 막는 일을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하게 된다. 깊은 산으로 들어가 은둔하면서 참선을 하거나 경을 연구하는 일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불교의 명맥을 유지한 이들을 이판승(理判僧-공부승)이라 했고, 사찰의 유지를 위해서 백방으로 경영과 살림 등을 맡아 사찰 운영의 일들을 전담하는 이들을 사판승(事判僧-살림승)이라 했다. 사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상호보완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보완적 관계를 무시한 채 이판승과 사판승 사이에서 서로를 무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은 듯하다. 사판승이 없었다면 사찰이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고, 이판승이 없었다면 불교의 가르침들이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배경 속에 조선시대 승려가 되기 위해서는 이판승과 사판승 중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결정해야 했다. 그러나 어떤 승려가 되든지 억불 정책 가운데 승려가 된다는 것은 마지막 신분계층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이판이든 사판이든 마지막 방법이나 기회를 말할 때 ‘이판사판'이라 하며 끝장을 보려 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말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유사한 예로 문(文)과 무(武) 사이의 갈등이나, 오늘날 문과와 이과 사이의 갈등의 유래는 무척 오래된 듯싶다. 성경에도 이와 유사한 갈등 상황이 나온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려 했던 마리아와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했던 마르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물론 다른 해석의 여지도 있지만 이판승과 사판승 사이에 서로를 무시해서는 안 되는 보완관계인 것처럼 문무나, 문과와 이과나, 마리아나 마르다, 여와 야, 노사관계를 포함한 갑과 을의 관계 등등 모두 서로를 무시하거나 없어서는 안 되는 관계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마치 집안에서 내조와 외조가 서로 합력할 때 살림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어느 한편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디 이런 일들 뿐이랴! 상극되는 일과 분야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상호 공존해 가야만 하는 많은 관계 속에서 이판과 사판과 같은 유사한 갈등이 많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서 서로가 있기에 상호 존속이 가능함을 깨닫는다면 반목과 질시로 상호 비방하며 공멸하는 길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이판사판이 막판으로 어느 한편이 포기해 버렸다면 불교는 그 명맥을 이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유교 윤리의 최고의 덕목이라 하는 ‘인’(仁)이라는 글자의 한자 조합이 재미있다. 사람 인(人) 자와 두 이(二) 자가 결합된 형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말할 수 있겠고,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 관계를 바르게 세워 가는 것을 통해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인'이라는 글자의 의미에 들어 있지 않을까? 사람 ‘인’(人) 자에도 이미 두 사람이 서로 기대에 서 있는 형상이라 했다. 인간이든 사람이든 모두가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임을 인정하면서 나보다 더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으로 서로를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핵가족화되는 폐해에 대해서 이미 오래전부터 염려했던 바들이 지금 사회 곳곳의 다양한 관계의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결과가 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심히 염려된다. 우리 사회의 비인간적, 비상식적, 비도덕적인 많은 일들의 원인들 중에 하나는 이 관계의 파괴 내지 멸시로부터 인 것을 재확인한다. 선조들은 추석 명절들을 통해서 이러한 가족 간의 관계들을 확인하고 이어가길 바라는 뜻이 있었다. 우선 편한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들 앞에서 가족 간의 관계에 갈등의 요소들을 제거하고 관계를 더욱 돈독히 회복하는 이판사판의 막판이 아닌 상호 회복의 살림판이 되는 여정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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