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20150928 - 역사는 해석이 필요할 수 있지만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당쟁과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암투와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만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과 영조의 ‘사도세자’라는 명칭 부여는 그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비롯된 결과로 축소한다. 귀하게 얻은 아들이 자라면서 아버지의 뜻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대리청정의 기간 동안 아버지의 기대에 들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행동에 상처를 받아 광인(狂人)처럼 살게 된 사도세자는 결국 아버지가 뒤주에 가둬서 죽음으로 막아야 했단다. 그 어디에도 없는 형으로서 일주일 이상을 궁궐 한복판에서 죽어간 것이다. 조선시대 가장 부흥기였다고 하는 영, 정조 3대에게 크나큰 상처와 흠으로 남는 일이었다. 영화 <사도>에서는 그의 죽음에 대해서 한중록의 영향을 받은 해석으로 가족의 문제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다.
계백장군은 황산벌 전투에 나가기 전에 자식들과 아내를 죽이고 떠난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하자 의자왕은 계백을 보내서 이들과 싸우게 했다. 계백은 5천의 정예병을 뽑으면서 국가의 존망의 위기 앞에서 혹 처자식이 포로로 잡혀서 수모를 당할 수 있을 터인데 살아서 모욕을 당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 하여 스스로 가족들을 죽이고 전장에 나아가서 자신도 죽고 만다. 공교롭게도 신라 진영에서는 김품일이 16세의 어린 아들 관창을 홀로 적의 진으로 돌격하게 해서 사기를 올려 승리했다고 말한다. 백제로서는 계백의 비장함에 박수를 보내고 군사들은 사기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그 칼을 맞고 죽어가야 했던 처자식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화 <황산벌>에서는 계백장군이 결전을 나설 때 아내에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냄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냄기는 법이여!"라고 하면서 죽음을 종용하자 아내가 코웃음을 치면서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씨부려야지. 호랭이는 가죽 때문에 뒈지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뒈지는 것이여!!"라고 일갈한다. 나라를 위한 충성스러운 죽음이라고 역사는 해석하지만 그렇다고 처자식을 죽인 일이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던 때 사사들이 활동하던 때가 있었다. 이들은 주로 군사적인 지도자로서 외부의 침공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는 지도자들이었다. 그중에서 암몬이라는 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길르앗 사람이었던 입다라는 큰 용사가 사사로서 활동하게 된다. 기생의 소실이었고 형제들로부터 괄시를 받아 자랐지만 그의 주변으로는 잡류들이 따르며 나름 리더십을 인정받는 자였다. 암몬의 침공으로 국가적 위기가 덕쳤을 때 사람들은 입다를 지도자로 추대하면서 자신들을 구해달라고 요청한다.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 앞서 서원하기를 자신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어 귀향할 때 가장 먼저 자신을 영접하는 이를 번제로 바치겠다고 한다. 전쟁은 대승했다. 하지만 그를 맨 먼저 맞이한 이는 그의 딸이었다. 나름 전쟁의 승기를 몰아 자신을 괄시하던 형제와 사람들을 향하여 통쾌하게 복수와 과시를 계획한 입다는 자신이 서원한 대로 딸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서원을 지키는 신의 있는 사람이라고 했을지는 몰라도 그 역시 딸을 죽인 일을 이해할 수 없다.
추석 풍경이 많이 바뀌고 있다. 아니 수년 내에 이런 풍경은 지금과 많이 달라지리라는 것이 뻔히 보인다. 어른들은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고향을 찾고 차례와 성묘를 하고 친지들을 찾아보는 일등을 하면서 과거를 추억하고 어느새 풍족한 시절들에 대해 감사하면서 나름의 시가들을 보낸다. 하지만 아이들은 불편한 잠자리에서부터 만나본 적도 없는 조상들과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들은 까마득하고, 스마트폰과 텔레비전 앞에서 떠날 줄 모르고 동리 밖을 나가지도 않고 그 아름다운 시골정취도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나 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꿔 놓으신 작물들이 자라는 논과 밭에 따라가는 일도 일손을 돕는 일도 서툴기에 따로 놀았다. 왜 이런 명절이 생겼는지를 설명하더라도 농경사회의 전통을 책에서나 경험한 이들에게 해를 거듭하고 머리가 커질수록 자신들과 상관없는 명절이 된 것이다. 단지 학교에 가지 않고 쉬는 며칠의 시간에다가 친지들이 건네는 용돈 몇 푼에 잠시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불현듯 역사와 전통에 대해서 해석하고 설명하고 가르치면서 계승하고 싶어 했는데, 교훈을 얻을 수도 있고 잠시 추억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는 점을 절감하게 했다. 전해 주고 싶은 것만큼 전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그래서 해석하고 이야기해 주려고 하지만 어느새 아이들이 사는 세계와는 괴리가 크기에 이해의 다리는 자꾸만 멀어지고 길어진다. 어른들의 탐욕으로 아픈 역사적 전철을 따라 아이들을 희생시켜서 우리의 것을 지켜내려는 해석을 강요하기보다, 함께 만들어 가야 할 이해 가능한 역사를 계승하며 살아가도록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