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되는 계절

쉴만한 물가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20140926_ 시인이 되는 계절


가을처럼 노래와 시(詩)가 많은 계절이 있을까? 사색과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는 말에 맞게 가을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은 수많은 노래를 낳게 했다. 큰 산 밑에 살았던 필자에게 가을은 오감 전체에 깊이 밴 흔적이 많게 한 계절이다.


<하늘이 온다>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멀리서 온다. 멀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온몸이.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에 호흡 호흡”(김의철 작사 양희은의 노래 ‘하늘' 중에서). 가을 하늘을 보면 늘 휘파람 소리와 함께 흥얼거리는 노래다. 가을이 오면 제일 먼저 하늘이 높아진다고들 한다. 늘 같은 하늘이 왜 높아졌을까? 아마도 푸른 하늘이 더 짙어져 깊어지기에 높아진다고 하지 않았을까! 하얀 손수건을 흔들면 금세라도 푸른 물이 들어 내 온몸을 적실 것 같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면 그 하늘에 뛰어들고픈 마음들이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그렇게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면 내 마음이 비취는 것 같아 훌쩍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꿈꾸던 지난 시절들을 돌아보게 한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노래 중에서). 가을바람도 문득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게 한다. 바바리 깃을 세운 이의 사색이 떠오르지 않던가! 올해는 유난히도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지 않았던가! 생률(生票) 밤이 떨어지게 하는 바람, 황금 들녘으로 무르익게 하는 바람, 구슬땀 흘리는 농부의 콧잔등에 있는 땀을 씻어주는 시원한 바람, 산등성이 억새를 흔드는 바람, 이런 바람들은 한아름 안아주고 싶다. 강가의 물안개를 거둬가는 바람, 산 허리를 두른 구름 떼를 올리는 바람 그 바람엔 시원함이 묻어 난다. 가을 전어 살찌우게 하는 그 바람은 절로 배부르게 하는 바람이다. 때로 “흐린 가을에 바람이 불면 나를 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이 떨쳐질까? 바람이 불면 내가 알고 있는 허위에 길들이 잊혀질까?”(동물원 노래 가사 중에서) 그렇게 가을바람도 나를 추스르게 한다.


<산이 익는다>

“드디어 산이 익는다. 뜨거움에 지질려 그만 산이, 산이 흘러내린다. 이골 저 골 기슭마다 공고르며 치달리며 용솟음치는 해일. 때론 울컥 각혈하는 산비탈. 용암과도 같이 핏빛 선연히 흘러내리는 자국 따라 후드득 날아오르는 불새, 불새 떼.”(‘가을 소나타’ 중에서) 가을 산처럼 가슴 벅차게 하는 페스티벌이 또 있을까? 형형색색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만산홍엽의 그 숲을 거니노라면 가슴 가득 차오르는 가을 향기 가득해진다. 산이 불러 그 산에 오를 때에 그 산은 우리에게 말할 것이다. 온 산을 물들인 그 뜻이 우리에게 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으며 때가 되면 떠나고 다시 오는 그런 세월 앞에 겸손히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온몸을 불태우는 그 열정 앞에서 탐욕에 점철되어 색을 잃은 인생의 군상들 속에 움츠러들었던 부끄러운 지난 시절들을 청산하고 다시 열정을 바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바라보게 한다.


<가을의 전설>

가을엔 어딜 가도 사색하게 한다. 하늘과 바람과 산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전설을 담고 있는 듯 수많은 이야기들을 쏟아 낸다. 그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여 보았는가?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들여다보았는가? 가을바람에 부질없는 탐욕과 미움을 흘려보내 보았는가? 가을 산행에서 산이 들려주는 속삭임에 나의 옹졸하고 이기적인 우리들의 세상을 비춰 본 적이 있는가? 그 사색들이 함축된 이야기가 시(詩)가 되고 삶이 될게다. 그렇게 가을은 우리에게 시인이 되게 한다. 나를 향한 이기적 시선을 돌이켜 주위를 둘러보게 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이유와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내일을 위해 오늘 서 있는 자리를 새롭게 할 마음으로 풍성케 할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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