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01-13
마태복음 17:01-13 예수님은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은 세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그곳에서 변형된 모습을 보이십니다. 또한 하늘에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을 또한 부활때까지 숨기길 원하시고 다시한번 고난의 여정을 예고하십니다.
# 1-4절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시는 분으로, 영광의 메시아이십니다.
엿새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모습으로 변형되십니다. 또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말하는 것을 함께한 제자들이 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여기가 좋다고 하며 초막 셋을 세분을 위하여 짓겠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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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새 후’라고 하는 표현은 이전 사건 이후의 시간을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한 시간이라기 보다는 고난받는 메시아 예언에 대한 말씀에 놀란 제자들의 마음이 진정될 만한 시간, 혼돈되 마음들이 정리되어가는 시간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출애굽기 24:15-16절에 모세가 산에 올랐을 때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다가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에도 엿새 후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결국 변화산 사건에서 예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만난 여호와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사건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도구로 엿새라는 시간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함께한 세 사람은 아마도 마태 공동체에서 중심 인물들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갔다는 것은 보통 산이 하나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기에 그곳에(통상 다볼 산으로 봅니다) 올라간 것이라 봅니다. 모세도 시내산에 오를 때에 세 사람(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이 함께 동반했습니다(출 14:1, 9).
그런데 산에서 변형된 예수님의 모습은 예수님이 신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표현들입니다. 해같이 빛나는 모습은 시내산에서 내려오던 모세의 모습을 상기합니다(출 34:29-35). 또한 옷이 희게 변한 것도 천상의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 이상의 신적 영광을 가지신 분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때에 또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과 더불어 보여진 인물들은 종말에 나타날 메시아의 때에 돌아올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신 18:15-18; 말 4:5-6; 계 11:3-13)들이었습니다. 동시에 모세는 율법,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들로서 둘 다 주검을 남기지 않은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율법과 선지자의 모든 가르침과 예언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함축하는 인물들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향후 부활에 대한 사건도 예시하는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베드로가 이 세 분을 위해서 초막 셋을 짓겠다는 표현은 아직도 베드로가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이전에 베드로의 고백과 주님의 칭찬 이후에 고난과 죽음에 대해 예고한 예수님에게 강하게 항변하다가 큰 책망을 들었던 베드로에게 변화산의 이 사건은 베드로에게 큰 격려를 주기 위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의 이러한 고백은 예수님의 이러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생각이나 신앙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심지어 여전히 예수님의 십자가 여정의 걸림이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메시아 예수님께서는 이 산에 머물 분이 아니라 산 아래 내려가 십자가를 지셔야 할 분인데 베드로는 또 다시 부족한 생각을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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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당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계시하시며 격려하시지만 여전히 제자들의 이해는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 강력한 사건을 경험하고도 베드로의 모습 속에는 그런 메시아에 대한 이해의 한계를 드러내고 맙니다.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아로서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 영광은 이제 곧 가야 할 십자가의 여정을 거친 후에라야 완성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과 예언을 온전히 성취하여 하나님나라를 세우고 주의 백성들을 모아 몸된 교회를 세우실 영광의 메시아이십니다.
# 5-9절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 기뻐하는 자인 메시아이십니다.
베드로가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하십니다. 제자들이 두려워 엎드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면서 두려워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눈을 들어 보니 주님 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부활이후까지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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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의 가시적 표현(현현) 곧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의 상징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 결국 구름 가운데서 들려오는 음성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의 선언(마 3:17)과 일치합니다. 거기에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신 18:15)는 말씀이 추가되는데 이는 구약의 신명기 말씀에 대한 반향입니다(신명기 18:15 여호와께서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곧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실 것이니, 너희는 그를 청종하여라)
초월적인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두려움과 경배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엎드려 심히 두려워합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은 손을 대시면서 일어나라 하고 두려워 말라 하시며 인자하신 긍휼의 메시아의 모습으로 다가오신 것입니다. 눈을 들어 보았을 때 예수님 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경험을 하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주님께서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시는 것처럼 변화산이 우리가 거할 곳이 아니라 이 땅이 우리가 메시아 주님을 따라 살아야 할 곳입니다. 그렇게 주님은 친히 내려오셔서 십자가의 여정을 향해 나아가고 계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제자들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이요, 기뻐하시는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실 메시아이심에 불구하고 아직은 고난받는 메시아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더불어 여전히 자신들이 기대한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고, 거기에 변화산의 사건은 더더욱 자신들이 기대한 메시아 상을 고착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사건을 알리는 것을 보류시킵니다. 그러나 인자가 마침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제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메시아에 대한 바른 이해와 믿음을 가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그 이후로 미루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칭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들에는 승리하고 영광의 모습들로 연결되어 언급되고(16:13-20, 21-23), ‘인자(사람의 아들)’는 고난과 죽음과 연결되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16:21-23, 17: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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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셔서 다시금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세례 때에도 이와 같은 소리가 들렸고,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동안 여러가지 가르침과 사역들을 통해서 계속 증거하고 선포되었지만 아직까지 메시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제 십자가의 여정 앞에서 여전히 무지한 제자들을 향한 이 사건의 경험은 두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자비와 위로 가운데서 주님은 끝까지 이 십자가의 길을 가실 것이고, 그 길은 제자들도 가야 할 것을 계속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믿음이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영광의 주님을 볼 때에는 될 것 같은데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고 고난과 어려움이 올 때에는 금새 우리가 가야 할 천국 백성의 길 앞에서 멈칫거립니다. 그래서 영광의 길만을 가려 하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디 주님이 만지시는 영광의 체험들을 통해서 우리가 가야 할 이 십자가의 여정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온전히 감당해 나아갈 힘을 얻길 간구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여정에서 고난받으신 메시아, 그리고 마침내 부활하신 영광의 메시아 예수님을 온전히 증거하는 증인으로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 10-13절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예비한 길로 오신 인자로, 고난받는 메시아이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왜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할 텐데 이미 예언한 대로 그 엘리야가 왔지만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인자도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과 같은 대우를 받고 그렇게 또 고난을 받을 것임을 동시에 말씀하십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엘리야가 세례 요한인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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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말 4:5). 그래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의 그러한 기대는 성경에 기초한 것으로서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우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엘리야의 도래는 더 이상 미래적 사건이 아니고, 그렇다고 그 엘리야가 환상 가운데 나타난 엘리야도 아닌 이미 역사 가운데 실제 인물로 왔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엘리야의 회복하는 사역은 말라기가 예언한 바대로 세례 요한이 와서 성취한 것입니다. 하지만 서기관들은 그를 거절하여 죽였고, 결국 메시아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메시아를 거절하고 있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2절). 또한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의 도래 목표는 메시아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고난과 죽음을 전조하는 것임을 피력합니다(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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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변화산에서 나타난 두 인물 곧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서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해석적 대화가 이어진 것입니다. 5-9절에서 모세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신명기 말씀을 통해서 이제 예수님은 새 계명을 주신 왕이시니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10-13절 말씀을 통해서 엘리야는 세례 요한과 연관하여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그의 길을 예비한 것과, 고난 받는 메시아임을 나타납니다. 이 두 인물이 결국 율법과 선지자를 상징하고, 결국 모세가 예표한 인물, 여호와의 날이 오기 전에 나타난다는 엘리야 모두다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예언된 오리라 한 그 메시아가 맞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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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에게 모세와 엘리야라는 인물이 가져오는 기대와 소망 그리고 가르침들이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서 우리가 알기 원하는 메시아 상은 유대인들이 잘못 오해하고 왜곡된 정치적인 메시아나 임의로 대우한 메시아가 아니라, 영광의 메시아이면서 고난받는 메시아,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길을 여시는 메시아로 알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 기도
영광가운데 임하신 하나님 아버지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서
영광의 메시아, 고난받는 메시아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로
우리가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 그리고 믿음없음에도 불구하고
긍휼과 자비와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와 격려로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 믿음 주시옵소서.
주의 오실 길을 예비한 선지자임에도 불구하고
고난받는 종으로 충성하며 살다간 요한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한 각오도 갖게 하옵소서.
요한이 예비한 그 길로 오신 메시아 주님께서도
고난받는 메시아라도 살며
십자가의 길을 가신 그 길을 따라
우리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를
믿음과 용기와 능력 주시옵소서.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영광과 고난의 메시아이심을 바르게 이해하고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의 천국 여정에서
십자가의 길도 영광의 길도 능히 감당할
힘과 능력과 은혜로 채우심을 감사드리며
바르게 믿는대로 살고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살아내어서
메시아 우리 주님의 산 증인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