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이야기

고향의 추억

20151003 - 고구마 이야기


여름이 시작되기 전, 주로 비가 오는 날 고구마를 심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텃밭에서 자란 고구마 순을 정리해서 작은 다발로 묶은 뒤에 우비를 입고서 밭에 다녀오셨습니다. 비가 오기에 따라가지 못했는데 며칠 지난 뒤에 밭에 가보면 고랑마다 고구마 순이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소 두엄이나 변을 짚이나 왕겨에 넣은 거름을 뿌려서 고랑을 만들어 놓고서 비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심은 것입니다. 대량 재배는 아니었지만 제법 넓은 밭에다가 고구마를 많이 심었더랬습니다. 겨우내 쌀이 부족했던 시절 중요한 대체 식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놀기도 좋고, 일하기도 좋고 열매 풍성한 계절이 가을 이랬죠. 바람도 좋고 쾌청한 날이면 마을 어귀 도랑 끝(고구마 밭이 있었던 곳이 마을에서 시작한 도랑이 끝나는 곳이어서 지어진 이름인 듯)에 있는 밭으로 고구마를 캐러 갔습니다. 한여름 잘 자라 알이 차고 굵어져서 고구마 잎이 조금씩 말라져 수확기가 차면, 고구마를 캐는 일은 벼 수확하는 일만큼 온 가족이 동원되었습니다. 고구마를 캐는 괭이와 호미 그리고 담을 가마니와 옮길 지게, 지게에는 발대가 얹혀야 했습니다. 이 발대 지게는 수확한 고구마를 부지런히 집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고구마 넝쿨을 먼저 걷어 냈습니다(여름엔 이 순을 걷어서 여러 가지 반찬거리로 쓴 것으로 압니다). 걷어낸 고랑들 한켠에서부터 호미로 고랑을 깍듯이 고구마를 캐갑니다. 자칫 고구마에 생채기라도 나면 금세 고구마가 썩어버리기 때문에 조심스레 고랑을 팠습니다. 그럼 진보라색 고구마들이 주렁주렁 나왔습니다. 꿉꿉한 흙이 마르면 이내 연보라색으로 됩니다. 보통 길쭉하게 생긴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크기는 천차만별이었습니다. 큰 것에서부터 적당한 크기 그리고 길쭉하면서 가느다랗고 조그마한 것까지 모두 다 수확했습니다. 생으로도 먹을 수 있기에 하나씩 껍질을 깎아서 베어 물면 달 착한 그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따로 준비된 새참이 없기에 고구마로 대신하고선 부지런히 캤습니다.


집으로 가져온 고구마는 크기별로 구분을 한 후에 잘잘한 것들은 따로 빼고 굻고 좋은 것들은 흙을 최대한 털고 모아서 겨우내 먹을 수 있도록 저장했습니다. 추운 곳에 두면 고구마가 얼어버려서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불이 들지 않는 한데 있는 헛간에 그냥 둘 수 없어서 온기가 있는 방에 저장해야 했습니다. 지리산 골짜기 집은 난리로 말미암아 소개당한 뒤에 들 가운데 벽돌과 초가로 이어진 집이었고, 한참 후에는 양철로 지붕을 얹었지만 여전히 단열재 하나 제대로 없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부엌과 마루 그리고 방이 두 개인 정말 작은 집이었습니다. 늘상 불이 들어오는 방이어야 겨우내 고구마가 얼지 않기 때문에 결국 안방 한켠에 고구마를 들여놓았습니다. 그래서 안방에는 대나무로 발을 만들어 한 귀퉁이에 둥그렇게 그것을 세워서 고구마를 저장했습니다. 천장까지 놓인 둥그런 대나무 발에는 여러 가마니 분량의 고구마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래서 이 고구마 뒤주 덕에 그렇지 않아도 좁은 방은 겨우내 훨씬 더 비좁았습니다.


한편 큰 고구마들은 또 칼로 삐져서 고구마 ‘빼때기’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또 아주 작고 가느다랗게 된 것들은 삶아서 햇볕에 말려 ‘쫀데기’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 둘 다 한겨울에 먹는 정말 맛있는 간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삶아 먹는 고구마가 왜 그랬는지 소위 물고구마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밤고구마처럼 그렇게 맛있는 것을 안 심고 그렇게 물고구마를 심는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아마 토질 문제일 거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습니다. 하여간 이 물고구마를 삶아서 먹으면 밤고구마처럼 포근포근하진 않지만 그래도 맛있었습니다. 사실 이 물고구마는 쇠죽 솥에 불을 넣으면서 구워 먹는 것이 제일 맛있었습니다. 저녁에 먹고 남은 고구마를 아침에 차가워진 채 먹고선 이불속으로 들어가서 몸을 뎁혀가며 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삶아먹고, 구워 먹고, 말려 먹고 그냥 먹기도 하면 어느새 안방에 있던 고구마 뒤주에 있던 고구마가 줄어들고 눈이 녹을 때쯤엔 안방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고구마 저장용 발도 치워졌었습니다.


요즘에 어떤 어른들은 감자나 고구마를 아예 안 드시는 분이 계십니다. 배고프던 어린 시절 끼니가 제대로 없어서 먹던 그 고구마가 질려서 대부분 먹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간식 정도로 먹고 그마저도 아이들은 점점 고구마보다 더 달콤한 다른 것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먹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배부른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어째서 더 맛있는 많은 것들을 먹는 것 같긴 한데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이 태반입니다. 땅에서 먹거리가 나고 자라고 열매 맺는 것을 보고, 그것을 땀 흘려 수고하여 수확해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배우며 자랄 때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는 것을 어떻게 잊지 않고 지켜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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