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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pr 21. 2019

마태복음 28:01-20 십자가와 부활의 길 10 :

마태복음 28:01-20

마태복음 28:01-20 십자가와 부활의 길 10 : 큰 기쁨과 임마누엘


안식 후에 무덤으로 찾아간 여인들은 빈무덤과 천사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두려움과 큰 기쁨 중에 경배하며 주님의 명령을 듣게 됩니다.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에게 고하자 그들에게 돈을 주며 제자들이 도둑질해 간 것으로 소문 내도록 조치합니다. 갈릴리로 가신 주님은 열한 제자에게 선교 위임명령과 더불어 임마누엘을 약속하십니다. 


# 탄생과 부활의 그림 언어가 유사한 점들이 많습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마굿간에 태어나신 예수님,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어두운 무덤에서 다시 부활하신 주님,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들과 묘사된 단어들이 그렇습니다. 이 땅에 오신 모든 일들을 온전히 이루시고 이제 시작된 하나님나라의 일을 제자들에게 위임하고 계십니다. 


# 부활에 대해서(사실-증언, 의미-삶)

부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거를 듣고 증인이 되라는 것(복음서)과 부활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듣고 부활을 살라는 메시지(서신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부활의 역사적 사실은 그 의미를 드러내고,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은 결국 부활을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만일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을 단순한 사실을 알고 확신하는 신념의 차원에 머문다면 이는 화석화된 신앙일 뿐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부활의 의미 곧 우리를 새롭게 하여 새 사람으로 살게하신 뜻을 따라서 거룩한 백성으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이 땅에서 부활의 생명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 1-10절 예수님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습니다 : 큰 기쁨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으로 갔을 때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빈 무덤 앞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서워 떠는 여인들에게 천사는 위로하며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것과 제자들에게 이르러 갈릴리로 가서 주님을 뵐것이라고 전하라는 명령을 듣습니다.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가던 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경배하고 다시한번 갈릴리로 가서 만날 것을 약속합니다. 

*

주님이 어떻게 부활하셨는지는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빈 무덤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이야기만 있습니다. 

주님의 탄생 때에 등장하는 여인의 이름도 마리아인데 이제 부활의 증인된 여인의 이름도 마리아 두 사람입니다. 두 증인을 염두했으나 당대 여인의 증언이 법정에서 인정되지 않는 풍토인데 마태가 여인을 부활의 첫 증인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이 증언이 조작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만일 조작했다면 증인으로 부적합한 여인보다 남자를 언급했을 터인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탄생 때에도 천사가 등장했는데 이제 부활 때에도 천사가 나타납니다. 천사는 하늘로서 내려와 여인들이 빈 무덤을 확인할 수 있도록 무덤의 돌문을 굴려 냅니다. 천사의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기에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며 떨며 죽은 사람같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정작 주님이 죽으셨는데 이제 그 무덤을 지키던 자들이 죽은 사람같이 되어 역전됩니다. 

천사가 여인들에게 말한 것은 빈 무덤을 보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살아나셨다는 것, 이러한 사실을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알리는 것, 갈릴리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부활이 이루어 진 것인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설명은 없습니다. 다만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빈무덤을 통해서 확인시켜 주신 후에 결국은 이러한 부활의 주님에 대한 증인이 되라는 것과 제자들이 이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 더 비중있게 반복되어 제시됩니다. 천사와 예수님이 동일하게 갈릴리로 가라고 하시는 말씀이 제자들이 향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16절 이후에는 더 구체적인 사명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천사의 명령을 들은 여인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가다가 주님을 만납니다. 여인들은 주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주님은 무서워 말라 하시면서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면 자신을 보리라 다시 약속해 주십니다. 우선 천사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십자가 사건의 충격과 이변등을 경험한 여인들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문안하고 두려워 말라 배려하십니다. 큰 충격 가운데 있을 여인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또한 스승을 버리고 달아난 제자들을 향하여서도 형제라고 부르시면서 이미 그들을 위로하고 용서하시며 더 나아가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일꾼들로 세우실 것을 계획하고 계신 것입니다. 

*

굳게 닫히고 인봉한 무덤의 문이 열리고 빈 무덤이 증거하는 것은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음을 증명합니다. 진실은 장황한 설명이나 상세한 묘사도 필요치 않습니다. 진실은 짧고 분명하게 기술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천사와 예수님을 통해서 계속 듣는 말씀은 갈릴리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주님이 십자가 사건 전에 누누히 말씀하신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그러므로 이제 부활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도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것이 부활의 증인으로 부활을 살아가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갈릴리로 가라고 하신 이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선 주님을 버리고 떠난 제자들의 고향이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곳이며 공생애를 시작하셨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선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낙담하고 혼란가운데 있으며 두려움과 염려와 절망 가운데 있을 것을 아시고 그들을 먼저 위로하시며 당신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예루살렘이 아닌 변방 갈릴리로 가라신 것은 예루살렘은 심판의 장소이고 갈릴리는 천국 복음의 시작과 확장을 위한 장소라는 차이점 때문에 갈릴리로 가라고 하셨다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갈릴리는 이제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하고, 천국 복음을 몸소 살아내야 할 곳이 그들의 삶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예루살렘 같은 곳이 아니라 변방이고 낮은 곳이고 소외된 곳입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곳, 살아내야 할 곳도 바로 우리 삶의 자리이며 우리가 가야 할 곳도 그렇게 더 낮은 곳입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주님이 보내신 자리로 확신한다면 나는 어떻게 부활을 살아낼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주님의 위로와 회복케 하심을 경험하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누림과 충성의 균형을 이뤄갈 수 있길 기대합니다. 


# 11-15절 예수님의 부활이 헛소문이라는 것은 유대 지도자들의 음모로 시작된 것입니다. 

여인들이 갈 때 무덤을 지켜야 했던 경비병들은 이변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대제사장을 찾아갑니다. 장로들과 모여 의논한 후에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서 제자들이 밤에 주님의 시신을 도둑질해 갔다고 말하라고 시킵니다. 총독이 알게 되면 자신들이 조치하겠다는 약조까지 합니다. 결국 군인들은 돈을 받고 이들이 하라는 대로 해서 이러한 소문이 유대인들 가운데 오늘까지 퍼졌다고 말합니다. 

*

여인들과 상반된 남성들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누구보다 부활의 증인이 될 사람들, 그리고 누구보다 주님의 메시아 되심에 대해서 바로 알고 반응하며,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기뻐해야 할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모두 여인들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실망스런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가서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 경비까지 세워 굳게 지켰던 그들이 오히려 지금 거짓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고 거짓을 가리기 위해서 뇌물까지 써가면서 군인들을 사고, 더 나아가 혹시 발생하게 될 군인들의 경비실패의 책임을 무마하기 위해 빌라도까지 돈으로 매수하거나 조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태는 이들의 이러한 거짓된 술수가 결국 3-40여년이 지난 후까지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의심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고 이러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소문의 진상은 결국 종교지도자들이 거짓을 조장한 결과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으며, 진실은 침몰하지 않기에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연약한 이들을 들어서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시고, 당신을 배신한 이들을 용서하사 부활을 산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증거했어야 할 이들이 오히려 부활의 증거를 가리고 막고 거짓으로 덮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분명한 증거와 진실을 들었고, 자신들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신념과 신앙의 한계가 드러나고, 예수님의 말씀이나 상황들이 분명히 진실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실제적으로 체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지도자들의 마음은 강퍅하여 진실에 눈과 귀를 가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탄생하셨을 때에도 세상의 가짜 왕들은 이러한 진실을 가리고 숨기기 위해 영아 살해까지 자행하였습니다. 지금 돈으로 군인들을 사서 거짓을 소문내게 하는 이들의 행위는 영아를 살해한 것 못지 않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들입니다. 이들이 사는 성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이제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증거 앞에 우리가 가진 세상의 많은 신념과 확신들 그리고 지식과 믿음들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길 바랍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의 신실하심을 믿는다면 주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더 세밀하게 살피고 읽고 묵상하며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의 아비 마귀의 궤계와 인도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진리되신 주님의 말씀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삶이  십자가와 부활의 길로 행하는 삶인줄 믿습니다. 


# 16-20절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 임마누엘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님이 지신하신 산(변화산 후보 중 하나인 다볼산으로 추정함)에 이르러 예수님을 뵙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세로 모든 민족에게 가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풀고, 지금까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십니다. 그 길에 항상 함께하실 것도 약속하십니다. 

*

가룟 유다가 떠난 뒤에 남겨진 열 한 제자가 여인들이 전한 주님의 명령을 따라 갈릴리로 가서 주님이 지시하신 산에 이릅니다.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도 늘 이유가 많고 의심이 많아 즉각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갈릴리로 가는 모습은 그들의 마음에 조금씩 변화가 보이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뵙고 경배합니다. 이는 이제 메시아로서 주님을 바라본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 즉 주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게 서지 못한 이들도 있음을 언급합니다. 그런 제자들은 이후에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확실한 부활의 증인 곧 예수님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 되심을 확신하여 모든 의심을 떨치고 참된 증인이 됩니다. 

늘 산에서 말씀을 주셨던 주님, 시내산에서도 그리고 산상수훈에서도 그렇게 산은 늘 주님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가르치던 곳이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그 산에서 이전의 일들을 상기하게하고 최종적인 사명을 전하시기 위해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먼저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셨다는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이 권세는 공생애 시작 전에 사탄이 자신에게 절하면 십자가 없는 영광을 주겠다고 했을 때 거절한 것이며,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이전에 공생애 기간동안 치유와 축귀와 이적들을 통해 보여주신 권세에 더해, 하늘에서도 다시금 왕권을 회복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승천 후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을 통해서 더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이 권세를 가지신 것을 말합니다. 사탄과의 타협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사 십자가의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사 얻게 된 더 크고 완전한 권위를 얻으신 것입니다. 

주님의 위임명령은 먼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지평이 이스라엘을 넘어서 모든 민족으로 분명하게 확대됩니다. 처음부터 주님은 유대인만의 왕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왕이심을 족보를 통해서 그리고 사역 가운데 믿음을 고백한 이들 중에 이방인들이 함께 있었던 것을 통해 계속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위임 명령에서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 삼는 것은 먼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합니다. 이는 다른 나라 곧 하나님나라가 아닌 다른 임금의 종노릇 하는 데에서 구원하여 하나님나라를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전에 세족식을 하시면서 주님께서 섬기는 자가 되라 하신 명령이 같은 명령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섬기는 일이고 세례를 주는 일입니다. 제자는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회복을 누리고 유지하고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또한 제자는 주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는 사람입니다. 가르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친 대로 살아내는 사람이어야 하고, 또 가르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주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주님이 분부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가르치는 것은 그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그렇게 살아낸 말씀으로 살아갈 사람들을 세워가는 것이 제자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이제 주님은 대 위임명령을 하신 후에 이 모든 일들을 이루시고 제자의 길을 떠나는 이들을 향하여 가장 강력한 위로와 소망의 말씀으로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십니다.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충격과 오해, 그리고 재림에 대한 잘못된 기대와 지식으로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위로와 소망은 결국 주님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세상이 끝날때까지 곧 개인의 종말과 우주적 종말이 올 때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신다는 이 선언은 복음서 처음 부분에서 예수님의 출생과 관련하여 언급되었던 ‘임마누엘’ 예언의 성취와 연결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1:23; 참조. 사 7:14).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를 이처럼 ‘임마누엘 사상으로 감싸는 ‘인클루지오’ 구조를 통해 예수님 자신의 임재가 임마누엘 예언을 궁극적으로 성취하는 것이며, 따라서 예수님께서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시는 분이심을 인상적으로 선언한다(참조. 18:20), 마태는 예수님의 이 선언을 그의 복음서의 마지막 절정으로 제시함으로써, 당대의 교회뿐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모든 세대(세상 끝)의 교회들도 예수님의 승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언제나') 예수님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의 특권을 누리게 될 것임을 약속해 준다.”_양용의 <마태복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p577에서 발췌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주님은 지금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신다. ‘함께하시는 주님’, 임마누엘. 우리 삶의 희망은 여기서 움터 나온다.”_김기석 <마태와 함께 예수를 따라> p315에서 발췌

*

주님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뜻을 따라 왕으로 오셔서 하나님나라의 일들을 가르치고 고치시고 전파하심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임한 제자들을 양육하시면서 천국 복음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모든 일을 이루신 후에 세워진 교회 곧 제자들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주께 돌아오길 바라시며 전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종말을 살아가고 종말적 삶을 살아가는 제자들을 향하여 함상 함께하실 것(임마누엘)을 약속하시면서 큰 기쁨과 위로와 소망을 주십니다. 

부활의 증인, 주님의 증인, 복음의 증인, 천국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부활의 소망으로, 주님의 제자로, 복음의 능력으로 천국의 백성으로 갈릴리 곧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그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붙여 주신 가깝고 먼 이웃들을 향하여서 동일하게 섬김을 통해 천국 복음의 삶으로 초청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주님과 함께 말입니다. 여기까지도 함께하셨고(에벤에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임마누엘), 이후로도 영원토록 함께하실 주님(여호와 이레)을 바라보며 주님이 가신 그 십자가의 길과 부활의 길을 올곧게 따르길 원합니다. 마라나타. 아멘


# 기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

우리 주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된 말씀을

묵상하고 알고 듣고 경험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허물과 죄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새 생명 허락하사 영생을 살게 하시니 

또한 감사합니다. 

부활의 소망이 지금 여기 갈릴리에서의 삶을

더 온전하고 책임있게 

그리고 거룩한 천국백성으로 그리고 제자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버리고 떠난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천국 백성으로 그리고 주님의 일꾼으로 

세워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렇게 초청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거짓된 소문들과 의심의 환경 속에서도

진리와 진실을 알고 보고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혼탁한 세대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이 말씀하신 가르침들을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잘 배우게 하옵시며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 하신 뜻대로

지금 허락하신 선교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할 수 있길 원합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잘 회복할 수 있도록 섬기며

주님의 말씀을 잘 살아내고 살 수 있도록 힘쓰며

그렇게 부활의 증인으로 합당하게 살기원합니다. 

종말을 살아가고 있음을 늘 기억하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주님을 기억하고

두려움과 기쁨 속에서 겸손히 그리고 거룩하게 

주님 가신 그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온전히 따르게 하옵소서. 

마라나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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