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20151011 - 열매를 거두는 일도 맺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농업의 기계화는 많은 농산물의 대량 생산과 어려운 작업들을 편리하게 해 주었습니다. 벼농사에서의 모 심기와 해충 방제 벼베기와 탈곡 그리고 건조에서 쌀을 생산하는 공정에까지 굵직한 이앙기나 콤바인 그리고 약을 살포하는 기계에서부터 자잘한 도구들까지 많이 개발된 편입니다. 손으로 하던 일들이 소 한 마리 생기므로 많이 줄어갔는데 기계는 그런 동물들이 하지 못하는 일도 척척 해낼 뿐 아니라 여러 날을 사용하고도 기름만 잘 먹이면 시키는 대로 다 하기 때문에 많은 유익을 얻었습니다.
지역마다 농, 축, 수산물의 특성화 작물들을 재배하는 상황에서 각각의 일에 필요한 기계들 또한 다양하게 발전해 왔습니다. 개발자들에게 참으로 고마운 일이고 그런 기계들이 작업을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합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때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들입니다. 농기계들의 가격이 쾌 비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당 작물의 생산에 쓰일 기계를 장만하면 그 작물의 수입으로 기계 값을 충당하려면 여러 해를 지나야 하고 그렇게 기계값 다 갚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을뿐더러 손익분기점을 넘어 제대로 이익을 산출할 때쯤엔 공교롭게도 기계의 수명이 다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전엔 농어촌 자녀들의 학비 때문에 빚을 지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귀농한 이들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보면 이런 시설이나 기계값 때문에 빚을 지는 경우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물론 기계값이 적절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굵직한 기계들 일수록 그런 경우들이 많았기에 기계를 개발하고 만들어 내는 이들과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 모두 이러한 부분들이 고민이며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는 즈음 벼를 수확하고 여러 농작물들의 추수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 하는 작업이 하나 있습니다. 단풍이 다 지고 남은 나무에 주황색으로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감을 곶감을 만들기 위해서 따는 일입니다. 대봉감이나 기타 연시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들엔 좀 다릅니다. 아예 처음부터 감나무를 낮게 길러서 손으로 직접 따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감 따기가 그리 많이 고민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다리를 두고 올라간다거나 요즘엔 기계의 힘을 빌어 사람을 높이 들어 올려서 높은 곳에 있는 감을 따는 경우들도 있는데 이 또한 수월한 일은 아닙니다. 혼자서 할 수 없고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수확한 감을 가지고 곶감을 만든 작업에는 감을 깎는 기계들이 나름대로 있습니다. 어름 감을 깎는 기계를 보고서 그 원리의 단순함과 기발함에 얼마나 신기하던지, 비록 손으로 돌리고 크기가 일정하게 깎이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하룻밤에 깎을 수 있는 양을 배로 늘려주었습니다. 이후의 건조 작업도 싸리나무 대에 꿰어서 처마 밑에 길게 매다는 방법이나, 플라스틱 핀에 꽂아서 실에 매다는 방법 등 다양한 도구들도 개발되어서 나름 많이 편리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곶감을 만들기 위한 감(필자가 살던 곳에서는 물감으로 만든 곶감이 제일 좋다고 했습니다)은 보통 기계들이 들어가기 옹삭 한 곳이나 산에 있었기에 그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다른 기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무나 커서 그냥 손으로 딸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상 따는 방법은 대나무로 만든 일명 ‘쪽대’라고 하는 것으로 일일이 따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많이 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많아야 서너 개입니다. 대부분은 한 개를 땁니다. 가지를 너무 크게 꺾어 버리면 다음 해에 그 가지에서 나온 가지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지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쪽대와 감을 담는 가마니를 들고 나무 중턱 즈음에 올라가서 쪽대 끝에 감나무 가지를 넣고 돌려 꺾은 후에 다시 내려서 감을 떼고 다시 올려서 따는 작업이 감나무 하나 다 수확하는데 종일 걸립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그렇게 하다가 그냥 후드려서 떨어뜨리기도 하는데 깨진 감은 곶감을 할 수 없어서 그래서도 안됩니다(밑에 망이나 다른 것을 깔아서 깨짐을 방지하는 방법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 보통 집중력과 인내를 가지고서는 아무나 감을 딸 수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종일 딴 감을 밤새도록 깎고 꿰어 걸고서 수 일을 말린 후에 다시 싸리나무 끝을 정리하고 한 접씩 만들어 내는 작업은 여러 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그렇게 내어 놓은 곶감 한 접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작아서 또 놀랬습니다. 이렇게 곶감 감 따기는 기계화가 안된, 아니 되기 힘든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아예 요즘 시골엔 감 따기를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다 수확한 후에 까치밥 하라고 남겨둔 몇 개를 빼면 감나무는 어느새 옷을 다 벗습니다. 천둥과 먹구름 그리고 봄부터 비바람을 맞고 햇볕을 품고서 맺은 열매를 아낌없이 다 준 것입니다. 그렇게 열매 맺기도 어려울뿐더러 맺은 그 열매를 수확하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모든 과정들을 아는 이만이 열매를 맺게 해 준 자연과 그것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준 수고의 손에 대해 고마워하면서 아끼고 보존하며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제대로 알고 사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