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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ul 21. 2019

에스겔 07:14-27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에스겔 07:14-27

에스겔 07:14-27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전쟁이 시작되면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중하게 여기던 은금과 우상들도 그들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토록 믿었던 성전은 더럽혀지고 더이상 하나님의 묵시를 들을 수 없게 된 후에야 하나님께서 여호와인줄 알게 될 것입니다. 


# 14-18절 하나님의 심판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전쟁을 위해 온갖 것을 준비하였지만 나갈 사람이 없습니다. 성안에는 전염병과 기근으로 죽고, 밖에 있는 이들은 성밖에 있는 이들은 칼로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산으로 도망치는 이들이 있다하여도 슬피 울며 넘어지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두려움과 수치가 그들을 덮을 것입니다. 

*

하나님의 심판의 전쟁이 시작되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르면 그 무엇으로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아예 쳐들어온 이방의 군대를 향하여 싸움도 제대로 할 수 없이 먼저 죽을 것입니다. 성안에선느 기근과 전염병으로, 성 밖에서는 이미 임한 칼로 말미암아 죽게 됩니다. 설령 산으로 도망하는 이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성을 잃은 슬픔에 잠길 것이며, 살아갈 용기와 희망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슬픔 가운데 두려움과 수치로 치를 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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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면 그동안 그들이 믿었던 하나님의 부재와 유기를 경험합니다. 그들이 알고 있고 믿고 있는 하나님은 그들의 욕망의 화신일 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과 이기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을 뿐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경고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무시했던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 아닌 것으로 자신들의 안위를 삼고 산 것입니다. 

잠시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에 거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뭔가를 준비한다고 삶의 보호와 보장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정작 그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입니다. 나팔을 불며 온갖 것을 준비한다 하여도 아예 싸울 사람이 없습니다. 안팎으로 오는 하나님의 진노의 칼날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설령 산으로 도망하며 살아 있다 한들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과 수치로 옷입고 살아갈 이유와 목적과 희망이 모두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19-20절 은과 금 그리고 우상은 능히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며 모았던 은과 금이 정작 하나님의 진노의 전쟁 앞에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들을 구원하지 합니다. 그제서야 후회하며 결국 은을 거리에 던지고, 금을 오물같이 여기게 됩니다. 은과 금으로는 그들의 심령을 족하게 못하고, 주린 배를 채우지도 못하며 결국 죄악의 걸림돌이 되어서 나락으로 빠지게 합니다. 그러기 전까지 그들은 은과 금으로 사고 만든 화려한 장식 곧 우상과 미운 물건들을 세우고 바라보면서  말미암아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 거라 자랑하면서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을 오물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

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돈이면 안되는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물이 조금 모이면 금새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물질을 더 의지합니다. 그것으로 생명이 보장되고 보호된다고 장담합니다. 급기야 그 재물은 죄악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교만을 품게도 합니다. 그래서 가증한 우상과 부정한 물건들을 만들고 채웁니다. 재물을 모으면서도 죄를 짓고, 그것을 사용하면서도 또 죄악을 범합니다. 그리고 이젠 하나님보다 그 재물이 삶의 이유가 되고, 목적이 되고 우상이 됩니다. 더이상 하나님이 없어도 살수 있다고 생각하며 급기야 교만을 품고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장담하던 그 재물들이 정작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는 아무런 보장도 보호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무용지물이 되게 하시니 은을 던지고 금을 오물처럼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늦었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구원하지도 못하고 심령을 족하게도 못하며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하게 됨을 뒤늦게서야 철저하게 깨닫고 후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여전히 우리 신앙을 위협하기도하고 흔들리게도하고 미혹하고 넘어지게 하는 것은 당연 돈입니다. 주님이 그토록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지만 많은 이들이 돈 앞에 명예도 신앙도 가족도 신의도 모두 저버립니다. 신앙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돈에 가치를 둡니다. 그래서 돈이 많아지면 많아진 대로, 적으면 적어진대로 그의 영혼이 사로집하고 걸림이 되어서 피폐해집니다. 돈의 우상, 돈의 화려함, 돈의 가증함에 매료될 수록 우리 영혼은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집니다. 

우리 믿음의 여정 속에서 죽는 날까지 우리가 경계하고 싸우고 잘 다스려야 할 것이 바로 이 물질입니다. 마침내 진노의 날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는 그 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미래 경고하고 있는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지금 우리가 여기는 가장 소중한 가치과 생사화복의 주권이 우리 주님께 있음을 깨닫고 화려하고 가증하고 부정한 이 돈의 우상을 오물처럼 여기며 끌려가지 말고 다스려 살아가는 신앙이길 원합니다. 

이왕이면 많이 소유해 보고 나서 깨닫는다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궁핍한 중에라도 우리의 생명이 주께 있음을 믿으며 허락하시는대로 주시는 대로 그렇게 이끄시는대로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많으면 많은대로 주님의 뜻을 구하고, 부족하면 부족한 중에라도 주를 의뢰하며, 주어진 것에 자족하여 이 물질로 더이상 우리 삶이 죄악의 걸림이 되고, 교만해지지 아니하며, 가증한 우상으로 세워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21-24절 성전은 하나님께서 함께 있을 때라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졌던 소유를 결국 이방인과 세상 악인이 약탈하고 더럽히고 노략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얼굴을 돌이키리니 이방인들은 은밀한 처소 곧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고 포악한 자들이 들어와 더럽힐 것입니다. 마침내 그 땅에 피흘리는 죄가 가득하고 포악이 성읍에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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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라야 거룩한 전으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한 삶 곧 순종의 삶을 살아갈 때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성전 그 자체만으로 자신들의 안위가 보장 될 것이라 여기면서 정작 삶은 그에 합당하게 행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재물을 모으기 위해 착취하고 부정하고 교만히 행한 일들이 결국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성전을 버리시니 거룩한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그곳에 이방인과 포악한 자들이 들어가도 죽지 않고 오히려 더 더럽혀질 뿐입니다. 그들보다 먼저 그곳을 드나들던 제사장들이 부정하고 부패하고 불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히 제의행위들이 있었어도 죽지 않았던 것은 이미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전을 떠나고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방인과 포악한 자들이 그곳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더럽혀진 공간이 된 것을 증명할 뿐이었습니다. 야웨의 성소가 더럽혀 지는 것은 야웨의 허락하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이상 성전이 유린당해도 관여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

우리 삶이 부정해지고, 우리의 마음이 오염되고, 우리 삶이 포악으로 가득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것이라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오래전에 상실해 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양심과 마음으로부터 오는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고 양심에 화인맞은 자처럼 살다보니 주님의 몸된 성전의 부정과 부패와 타락,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넘어진 후에도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후에야 후회하며 알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 땅에 피흘리는 죄가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한 상태라면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성전 곧 주님의 몸된 교회요 성령의 전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고 있는지 아닌지 진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의 얼굴을 다시 내게로 향하사 주의 종으로 긍휼을 입고 죄악에서 돌이켜 거룩함으로 신실함으로 나아갈 수 있길 힘쓰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곳에서 하나님 아닌 헛된 우상에게 예배하면서도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우리 삶에 가득한 포악과 죄에 대해서는 무딘 감각으로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하나님의 영광이 나와 우리의 공동체에 함께하고 계신지 그 얼굴을 우릴 향하고 있는지 눈을 들어 두렵고 떨림으로 주를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 25-27절 심판의 날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묵시를 들을 수 없습니다.

패망이 이르게 되면 그들이 평강을 구하여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에 환난이 더해지고 소문에 소문이 무성해 질때면 선지자는 더이상 묵시를 들을 수 없고, 제사장은 율법의 기능이 소용없게 되고, 장로는 책략 곧 지혜를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왕은 애통하고 고관은 수시로 놀라고, 주민들의 손은 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행한 죄악대로 갚고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뒤라야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인줄 알게 될 것입니다. 

*

평강하다 평강하다 할 때에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줄 몰랐습니다. 자신들이 잘해서 그런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환난이 닥친 후에는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습니다. 이렇다 저렇다 잘난 사람도 많고, 이러니 저러니 나름대로 살 길이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하나님이 도움의 손길을 거두시고 진노와 심판을 행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묵시와 율법과 지혜(책략)로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음에도 듣지 않고 관심도 없으며 당연히 순종하지도 않았기에 마침내 더이상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어떤 메시지도 주지 않게 될 날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구하여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들을 훈계할 지침이 되는 율법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지혜, 위기를 극복할 책략도 더이상 가질 수 없습니다. 왕도 고관들도 백성들도 애통하고 놀라고 떨며 슬피 울게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그들이 행한대로 갚고 그들의 죄악대로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의 생사화복의 주권이 야웨께 있음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 살렘에 임할 때 얼마나 철저하게 이루어지는가를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상세한 묘사, 심판의 철저성을, 오늘 우리가 본다면 이렇게까지 피냄새를 풍겨야 하는가 하고 부정적으로 볼수 있는데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은 이스라엘의 죄악이 사소한 것이 아니라 철저 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사소했다면 사소하게 심판 했겠지만 이미 이스라엘은 597년 이미 하나님의 심판으로 위기 상황에 처했지만 결국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그 위기상황을 보고도 돌이키지 않는다. 이미 597년에 유다는 거의 망한 상태임에도 야웨에게 안돌아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임하는 심판은 강도가 높은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도 상황을 통해서도 그들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끝장낸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 중 일부만이 다시 살아 남게 될 것입니다. 

*

에스겔의 예언이 남유다가 멸망하기 훨씬 전임에도 생생하게 그 결말을 묘사하고 있는 것은 지금 이스라엘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적으로 지금 우리가 이 말씀이 들리고 읽혀지고 그래서 우리의 모습들이 비춰질 수 있다면 아직 우리에겐 돌이키고 온전해 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 모든 것이 패망에 이르기 전이라면 환난과 헛된 말들이 난무하기 전에 묵시와 율법과 지혜의 말씀 앞에 귀 기울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일을 더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하나님 아닌 것들 모두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알아야하고, 오물처럼 여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서 자칭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고 제의 행위들을 하고 있다고 자위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 아닌 것에 우리의 마음이 채워지고 쏠려 있고, 부정과 죄악과 포악으로 점철되어 있다면 우린 이미 거룩한 성전의 기능을 상실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패망이 이르기 전에 평강이 사라지기 전에 묵시와 계명과 지혜의 말씀 앞에 우리를 비춰 주야로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길 원합니다. 그래서 변함없이 우리 삶과 모든 일들이 주님의 면전에 있고 야웨의 주권하에 진행되고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고백하며 순종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 거둠의 기도

심판과 진노의 하나님

오늘 우리의 죄악을 깨닫고 

철저하게 이 죄악에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날이 이르기 전에

우리의 죄악을 날마다 깨달을 수 있는 

민감한 영적 감각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헛된 재물에 눈 멀지 않게 하옵시며

사신 우상, 가증한 우상, 미운 물건들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옵시며

지금 미혹된 심령을 돌이킬 수 있게 하옵소서. 

거룩한 성전으로서 부정한 것을 품고

가증한 것들을 섬기지 않으며

거룩으로 점철되는 삶이게 하옵소서. 

패망이 이르기 전에, 평강이 사라지기 전에

묵시와 계명과 지혜의 말씀앞에 날마다 나아가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길을 인도하심 따라

온전히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애통하고 놀라며 두렵고 떨림으로 

행한대로 보응하시고 되악대로 심판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긍휼과 용서를 구하고

모든 죄악에서 돌이킬 수 있게 하옵소서. 

교회의 죄악으로 세상마저 포악으로 가득하게 하는 상황 속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살아가는 길을 

온전히 지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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