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20131025 - 농노를 사랑한 여인 고다이버
1898년 영국의 화가인 존 콜리어(John Maler Collier)가 고다이버 부인의 일화를 다룬 그림이 있습니다. 80년대 우리나라 멜로 영화였던 애마부인에 나오는 포스터처럼 흰 말 위에 붉은색 천을 덮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올라앉아 마을을 지나는 그림입니다. 인터넷과 신문 잡지에 이제는 너무도 노골적으로 게재되고 등장하는 수많은 성적 용어나 그림들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담긴 숭고한 그림입니다.
11세기경 잉글랜드 중부지방의 코벤트리에서 이곳의 영주인 레오프릭은 자신의 영주 안에 있는 농노들을 대상으로 혹독한 소작료를 징세합니다. 이러한 정책으로 모두들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영주에 반기를 든 것은 농노의 대표도 민중봉기도 아닌 영주의 부인인 고다이버였습니다. 가혹한 남편의 정책으로 인해 죽어가는 농민들을 보다 못한 고다이버 부인은 여러 차례 남편에게 세금을 줄여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레오프릭은 부인의 말을 무시하면서 계속 농민들을 탄압해 갑니다. 계속되는 부인의 간청에 레오프릭은 수용하기 힘든 제안을 합니다. 정말 농노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체로 영지를 한 바퀴 돈다면 청을 재고해 보겠다고 말합니다. 영주는 당시 16세 가톨릭 신자였던 부인 고다이버가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고다이버는 며칠 뒤에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여 어느 이른 아침 말에 올라 영지를 돌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영주의 부인이 자신들을 위해 알몸으로 영지를 돈다는 소문을 접한 농노들은 그 마음에 감동하여 레이디 고다이버가 영지를 돌 때, 누구도 그 알몸을 보지 않기로 하고 집집마다 문과 창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내려서 영주 부인의 희생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여기서 생긴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이라는 말은 “전해 내려 오는 관습과 상식을 깨는 정치행동” 또는 “잘못된 권력에 맞서 항거하며 희생을 꺼리지 않는 정신”으로 쓰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고다이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온갖 부정과 부패 속에서 물타기와 회피와 기만과 줄 대기 그리고 모르쇠와 딴청과 말꼬리 잡기 등으로 본질을 왜곡하고 덮으려고 일관하는 비상식적인 정치판 속에서 모든 것을 잃을 각오로 진실을 외친 이들이 있습니다. 정치인들 중에서도 검찰 내부에서도 그 부패의 온상 속에서도 연꽃처럼 진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을 각오로 나선 이들이 있어 부끄러운 현실의 왜곡된 부분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11세기 농노들은 창문과 커튼을 내리고 숨어서 경의를 표하고 고다이버를 지켜 주었듯이 오늘 우리는 이 시대의 고다이버들에게 이렇게 경의를 표하며 또한 그들을 지켜야 줘야 할 진대 이기적 자아가 꿈틀대는 우리의 모습이 불쑥 떠올라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자녀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았노라 말하기 위해서 사의를 표했던 한 검사님의 사퇴의 변이 다시금 무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킵니다.
정치가 우리에게 밥을 주진 않습니다만 우리 앞에 있는 밥상은 걷어찰 수 있습니다. 또 정의가 밥을 먹여주지는 않지만 정의가 무너지는 순간 우리가 가진 권리가 착취되는 것을 지킬 수 없습니다. 정의와 정치를 위해 싸운다고 쌀 한 톨 안 나와도 적어도 수년 동안 피 흘려 가까스로 세운 민주주의와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정치와 정의를 외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다이버들이 일깨워 준 역사적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