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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쉴만한 물가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20121109 - 개혁?


대선이 시작되면서 개혁, 쇄신, 혁신, 변화, 패러다임 쉬프트 등의 단어가 연일 정치인들을 비롯해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안된다는데 공감하는 듯하다. 정치계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면서 새 부대를 발표하고 제안하고 논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개혁은 무엇인가?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이전에 없던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참신한 아이템으로 무장하는 일들을 말하는가?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고 그럴싸한 공약들을 내 걸고는 있지만 해 아래 새것은 없다 했다. 살펴보면 이미 오래전에 있던 일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 반대했던 정책을 이번엔 찬성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다. 과거처럼 아날로그 시대에는 사람들의 기억에만 의존하다 보니 이런 말 바꾸기가 유야무야 되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서 이러한 말 바꾸기가 실시간으로 검색되다 보니 정치인들의 낯짝이 오히려 더 두꺼워진다. 버젓이 증거가 있는데도 오해라 한다.


이번 대선에서 많은 이들에게 참신하다, 개혁적이다 뭔가 다를 것 같다고 생각하는 안철수 후보를 보면 개혁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당연한 이야기들을 기록해 두었다. 몇몇 전문적인 분야를 제외하고는 적어도 정치에 대한 이러저러한 관심만 가진 자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며 의당 그리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글들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기본적이면서 본질적인 면이 발견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개혁이든 쇄신이든 중요한 것은 ‘본질에 충실한 것’’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예로 개혁이라는 말이 붙은 중요한 사건 중에 16세기의 종교개혁을 들 수 있다. 당시의 종교가 원래의 기능과 역할을 외면하고 타락하고 부패한 모습에서 원래의 교회의 본질을 찾아 바로 세운 것이 바로 종교개혁이다.


위키백과에 보면 정치(政治)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 조화로운 것, 네거티브한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는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는 의미가 들어있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정치(政治)는 다른 말로는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자신을 닦은 후 남을 돕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가(政治家)는 먼저 자신의 부 조화로운 것, 네거티브한 것, 즉, 천지자연의 이치에 조화하지 못하는 자신의 부정적인 측면을 다스려 극복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어려움, 곤란함, 부 조화로운 면을 제거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즉, 군자 또는 성인을 의미한다.” 고 되어 있다. 민주주의 주권은 국민에 있다는 사실부터 시작해서 정치인들이 잊고 있던 정치의 본질적인 면들을 찾아서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개혁과 쇄신이 아닌가? 이것은 정치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정책과 제도를 개선하더라도 그것이 처음에는 반짝해 보이지만 결코 오래지 않아 그 나물에 그 밥이 된다. 많은 이들이 개혁의 기치로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동일한 전철을 반복하게 되는 것은 방향을 잘못 잡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을 회복하지 않으면 그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공감을 이룰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일한 만큼의 대우를 받고, 정직한 자가 대우를 받으며, 가진 자 못 가진 자 차별 없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다 좋아하는 이상적 사회를 한꺼번에 이루긴 어렵다. 너무도 많이 왜곡되고 뒤틀린 지금에서는 반드시 살을 빼는 것처럼 한편의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어야 본질로 돌아갈 수 있다. 개혁을 생각할 때 상식이 통하는 사회, 본질의 회복을 염두해 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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