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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관(可觀)과 장관(壯觀)

쉴만한 물가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20131031 - 가관(可觀)과 장관(壯觀)


‘가관’(可觀)이라는 말은 '꼴이 볼만하다’는 의미와 ‘경치가 볼만하다'는 의미가 있는 말로 주로 비웃는 말에 부정적으로 사용된다. 이와 비슷한 말로 ‘장관’(壯觀)이라는 말이 있는데 ‘굉장하고 장대(壯大)하여 볼 만한 경관’이나 ‘구경거리가 될 만하거나 꼴이 볼만하다는 뜻으로, 남의 상태나 행동거지를 얕잡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장관이라는 말은 긍정적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가을이면 긍정적 의미의 볼거리들이 많아진다. 산천 초목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여 가는 광경은 우리 눈을 정화해 준다. 단풍, 억새, 각종 유실수, 파란 하늘, 가을바다, 황금들녘, 코스모스, 들국화, 만국기… 풍성하게 군집된 이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가관과 장관의 탄식을 자아낼만한 그림을 제공하고 있다. 눈과 마음이 정화되고 오래도록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그 그림들을 하염엾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식었던 열정도, 지친 심신도, 흔들리던 마음들도 어느새 희망과 설렘에 용솟음친다.


누군가 지구에 살아 있는 생물 가운데 환경오염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사람이 문제라고 했다. 그래, 사람이 문제다. 굳이 지구까지 아니어도 지금 이 나라에서 가관과 장관이 부정적으로 쓰일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날마다 가관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일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잠시 그러한 것들을 피해 눈을 들어 산과 하늘을 보고서 정화되지 않으면 도무지 눈을 뜨고 살 수 없는 부끄럽고 꼴불견인 광경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젠 일일이 헤아리지 못할 정도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갈수록 가관인 박씨와 갈수록 장관인 박씨가 있다. 갈수록 가관인 사람은 가게 하나 운영도 못할 실력이지만 온갖 부정을 다 동원해서 큰 백화점을 운영하게 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부정을 인정하는 것은 죽어도 싫고, 점점 꼴불견인 일들이 자꾸만 쌓여 간다. 측근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가관인 사람들이다. 부정부패의 온상인 것 같은 집단,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도 책임도 못 지고, 무슨 말을 하는지, 했는지도 잘 이해 못하는 유체이탈 화법에서부터 하는 꼴이 영락없는 왕조시대의 여왕 노릇이다. 그 밑에서 실 눈뜨고 간신배처럼 살살거리며 권력에 눈먼 이들을 보노라니 참 가관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 흙탕물 같은 곳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감당하면서 우리에게 장관을 보여주는 박씨가 있다. 처음에 그가 시장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이 의아해했다. 행정가도 아니면서 할 수 있을지, 어리숙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긴가민가 했다. 그러나 달랐다. 하는 일들이 하나하나 어찌 그리 시민의 가려운 부분을 제대로 긁어 주는지, 말도 행동도 하는 일도 어찌 그리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이전 시장의 쓰레기 치우는 일에서부터 하나하나 차곡차곡 해결하고 채워가고 투명하기까지 한지, 그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다.


좋은 꼴만 보고 살 순 없다고 말한다. 피치 못하게 봐야 하는 일들도 많다. 그래서 되도록 좋은 것만 보려고 일부러 눈을 감기도 하고, 돌리기도 하고, 멀리까지 일부러 가서 바라보기도 하지만, 우리 눈에 들이대는 이 시대의 꼴불견들이 심신을 피로하게 한다. 가을의 가관과 장관이 없었다면 어찌했을까? 눈을 감고 말았을 것이다. 못 볼 꼴들을 보여 주고 있는 정부의 가관(假官)과 장관(長官)들이 이 가을의 장관(壯觀)들을 보고 정신을 차리고 좋은 가관(可觀)을 보여줘서 국민이 가관(歌管)으로 장관(壯觀)을 이루는 그런 정치의 가을 풍경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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