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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女性)과 여자(女子) 그리고 여인(女人)

쉴만한 물가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20131108 - 여성(女性)과 여자(女子) 그리고 여인(女人)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뒤에 누님이 훌쩍이는 소리를 들었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민방위 훈련이 나왔다는 것이다. 순진했던 누나는 제 잘못도 아니면서 당황하고 부끄럽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울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전화나 인터넷이 흔해서 바로 확인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어서 그 일이 있은 후로 누나는 맘고생이 많았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주민등록을 수정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이 흔한 것 같다. 다들 들어보면 여자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바로 하지 않아서도 그러지만 대부분 보면 출생 신고를 한 아버지가 술 한잔 하고서 제대로 출생 신고서를 기록하지 않아서라고도 하고, 동네 이장에게 부탁을 했는데 역시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서 이런 웃지 못할 일이 생겼다고 한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내리 주민등록등본을 떼서 제출하고 그렇게 학교를 다녔는데 왜 민방위 훈련이 나오고 나서야 성별이 잘못된 것을 발견했는지 의아스럽다. 자녀의 등록 사항을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가정도 문제이지만, 학교에서도 분명히 행정상의 착오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최근 한 여자 축구선수의 성별논란으로 시끄럽다. 그녀는 주민등록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수년을 여자 선수로 각종 국내 및 국제 대회에까지 출전을 한 전적을 가진 훌륭한 선수다. 그런데 국제 대회에서 너무 실력이 출중하다 보니 성별에 대한 이의 제기로 불편한 성감별 검사를 해야 했는데, 그런 안타까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제 역할을 잘 감당해 왔다. 그런데 국내의 몰지각한 일부의 축구 지도자들이 다시 그의 성별을 의심하며 근저 깔린 시기와 질투로 게임 출전 자체를 막으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 다행히 그런 사실이 밝혀져서 다시 출전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녀가 받은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여성에 대한 표현이 여러 가지가 있다. 성 정체성과 연관해서는 여성(女性)이, 자녀의 성별을 구분할 때는 딸이나 여자(女子)등으로 표현한다. 물론 이 용어들은 혼용되고 있다. 그런데 ‘여인(女人)’이라는 단어는 특이하다. 왜냐하면 여성-남성, 여자-남자는 다 남녀 공히 함께 연관된 단어가 있는데, ‘여인'과 같이 남성에게 쓰이는 말은 없다. ‘남인(男人)'이란 말은 쓰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인에 대한 어원이 어디서 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사람 인(人) 자를 붙여서 ‘여인'이라 한 데는 여성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본다. 사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은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여성과 여자를 한 사람의 ‘여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성숙한 사회에서 당연한 상식이다. 여자 축구 선수의 성별 문제를 제기한 이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남자들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이야기는 시대착오적인 이야기고 이젠 ‘암탉이 울어야 집안이 산다’로 바뀌었다. 남녀 차별에 대한 상당 부분의 문제들이 해결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 더 성숙해지는 사회에서는 남녀의 성 역할마저도 상당히 많은 부분 허물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서로의 특징에 대해서는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여성 지도력에 대해 훌륭한 사람들이 있지만 한편 많은 부분들이 삐걱거린다. 여성 지도자들이 부각되는 것은 상당히 발전된 모습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줄로 안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상식과 원칙을 지키며 오랜 세월 동안 차별 철폐를 위해 싸워온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조금만 문제가 있다 해도 한 사람으로서의 문제보다는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굴레를 씌울 소지가 아직도 다분하기 때문이다. 여성과 여자로 사는 우리네 딸과 아내와 어머니를 성숙한 여인(女人)으로 길러내고 불러주고 인정해 주는 성숙한 사회, 이젠 우리 사회를 그런 사회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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