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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Feb 09. 2021

누가복음 12:35-48 인자의 재림을 준비하게 하시는

누가복음 12:35-48 

누가복음 12:35-48 인자의 재림을 준비하게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거룩한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여정을 왜 진실하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주인을 기다리는 종과 주인의 소유를 맡은 청지기 비유를 통해 가르치십니다. 깨어 준비하며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복되다 하시고, 많이 맡은 자의 책임은 그만큼 더 중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언급하십니다. 

신앙의 여정은 단거리 경주도 아니고 한 두 번의 결단과 헌신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랜 마라톤과 같고,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 여정에서 오래도록 지혜롭고 진실한 인내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은혜에 대한 누림도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 곧 사명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생명을 허락하사 살리실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누려야 할 부분도 있고, 또한 그에 따른 책임과 더불어서 왜 주셨는지 물어야하고 대부분은 우리의 이웃을 향해 흘려 보내고 섬겨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35-40절 예수님은 인자의 재림을 깨어 준비하는 종이 복되다 하십니다. 

그의 나라를 구하고 마음을 하늘에 두도록 교훈하신 예수님은 이제 그런 삶을 오랜 여정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치십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늘 깨어서 언제든지 주인이 오면 문을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하시고 그런 종이 복되다 하십니다. 그 이유는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을 자리에 앉히고 수종을 들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오는 시기는 언제일지 모릅니다. 그러니 종은 깨어 준비해야 하는데 주인이 생각지 않을 때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림과 종말은 그 시기에 대해 우주적 종말과 개인적 종말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은 우주적 종말의 시간으로 이해하기에 그 시기에 대해서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개인적 종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이 한계가 있기에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기껏 백년남짓한 시간들이 개인적 종말의 시한들입니다. 그 안에는 여러 변수들이 존재하기에 언제 개인의 종말을 맞을 것인지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결국 우리는 남은 여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종말을 기억하고 늘 깨어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롭다 할 수 있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종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몇 가지를 요약적으로 제시합니다. 허리에 띠를 띠라 합니다. 언제고 떠날 준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얘기입니다.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합니다. 밤이 깊을 수록 가야 할 길을 밝히려면 등불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또 주인이 오면 언제든지 문을 열어 주도록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과 무관심한 사람의 차이는 분명 다릅니다. 주님을 알고 믿는 사람과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라 하십니다. 

주인이 오시는 것을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동안 계속 가르치시며 모범을 보이신 하나님나라를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한다고 말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삶을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삶은 누림도 있지만 책임 곧 사명도 함께 있습니다. 그것은 가깝게는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42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청지기의 삶입니다. 

이렇게 깨어 있는 종에게 다시오실 주님이 하시는 일은 파격적입니다. 그 종을 자리에 앉히고 주인이 수종을 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온전하게 사는 것 곧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그런 삶에 대한 보상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종말과 한계를 기억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그리고 닥치는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면서 주어진 삶에 신실하려 노력하고 알 수 없는 내일을 주께 소망을 두면서 자족과 섬김과 누림을 지혜롭게 감당하고 살아갑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모든 삶에 대한 평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서 책임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이는 우리 삶이 우연의 연속이 아니라 존재의 목적과 이유가 있어 피조되고 태어나고 구원받았다는 것을 아는 삶입니다. 


# 41-44절 예수님은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복되다 하십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말씀이 누구에게 해당되는 것인지 묻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라고 답하십니다. 그래서 주인의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잘 나눠주면 그 종은 복되다 하십니다. 주인은 종에게 모든 소유를 맡겼다 하셨습니다. 

일차적으로 지혜 있고 신실한 청지기는 제자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많든 적든 모두 주님으로부터 위탁받은 이들 곧 우리가 사랑을 나누고 섬겨야 할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섬기고 나눠야 할 양식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유, 무형의 유산을 가진 우리들은 그 주권이 주께 있음을 알고 그것을 주님의 뜻을 따라 살리는 일, 섬기는 일, 사랑하는 일에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 있는 종은 이 모든 소유에 대한 주님의 뜻을 아는 자를 말하고, 진실하다는 것은 그것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거나 마지못해 하는 것이나 인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힘과 뜻과 정성을 다해 충성하고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많은 것들 아니 모든 것을 공급받았습니다(모든 소유를 위탁받은 청지기).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필요를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에 맞게 주시지만 우리를 통해 또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릴 것에 대해서도 그 양식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살리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일에도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유무형의 자산들을 맡겨주신 주님의 뜻입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뜻을 아는 지혜로 진실하게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것도 중요하고, 그것을 잘 누림도 중요하며, 그리고 주신 것을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한 맘으로 섬기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 삶의 여정들이 이러한 지혜와 진실함으로 채워져 살아간다면 주께는 영광이요, 기쁨이 되고 참으로 복있는 자로 사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 지혜와 진실함을 실천하는 복된 종 청지기의 삶을 온전히 살기 원합니다.

 

# 45-48절 예수님은 많이 맡은 자의 책임이 중하다고 하십니다. 

만일 종이 주인이 더디 온다 생각하여 종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은 커녕 학대하고 자기만 먹고 산다면 생각지 않은 때에 주인이 와서 그 종을 벌하게 될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도 않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않는 종은 많이 맞을 것이고,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입니다. 그만큼 많이 받고 많이 맡은 이들에게는 상응한 것을 요구하십니다. 

앞서 깨어 준비하면서 지혜 있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 결국 주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선택사항이 아니라 제자는 당연히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청지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고 위임받아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권이 주님에게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도 않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않는 종은 큰 벌을 받습니다. 잘 모르고 한다 해도 그 책임이 없다 하지 않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모두다 이해하지만 잘 모르고 그랬어도 책임을 묻는 일에 있어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경종을 줍니다. 주님의 뜻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이도 문제고, 그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행동하는 이도 문제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갈망과 배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 필요합니다. 지혜와 진실함도 요구됩니다. 하루도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 없고 늘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이 긴장을 놓쳐버렸고 안일한 만족에 빠져 있으며, 무엇보다 주님의 뜻을 다 안다고 착각하고 아예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위 구원환원주의에 빠져서 구원 받았으니 다 된거라는 심각한 착각에 빠져서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을 상고하지 않고 그 뜻을 제대로 모르다 보니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따라 삶과 세상과 사람을 해석하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이기적인 탐욕을 이루기 위해서는 열심이나 이웃을 바라보는 이타적 삶의 사명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이를 비롯하여 우리가 가진 교리와 신학의 전통은 상당수 신앙과 삶이 분리되고, 믿음과 행함이 분리되고,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분리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지함 속에서 누군가의 선동에 쉬이 부화뇌동하는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생각없이 살아가고, 생각없이 설교를 듣고, 생각없이 세상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생각없는 종교인이 되어서 소경이 인도하는지, 도둑이 인도하는지 분별하지 못하고 그저 앞사람이 가는 넓은 길로만 행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하나님의 필요성 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신앙을 버리는 일들이 있고, 이러한 상황이 주어진 하나님의 뜻에 관심도 질문도 하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없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이제는 다시 깨어서 준비하고 지혜로보 진실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교리에 대한 이해와 믿음의 차원을 넘어 신학도 그리고 성경에 대한 지식과 신앙적 삶의 이해등 모든 분야에 대한 재고를 통해 다시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알고 세우고 깨달아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전통과 역사를 무시하지 않되 온고지신, 반면교사를 삼고, 새로운 세상의 도전 앞에 다시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경을 깊이 상고하고, 그 말씀으로 무장한 지혜로 패역한 세상 속에서 진실함으로 살아 빛과 소금으로 나와 세상을 변화시켜 가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은 골방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과 독대하며 그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은 그 뜻을 따라 작은 일 하나하나 소홀히 여기지 아니하며 각자에게 주어지고 맡겨진 만큼의 사명을 진실함과 충성됨으로 채워가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줄 믿습니다. 그렇게 뿌리고 심고 물을 주는 일들을 때를 따라 잘 감당해야 할 사명이 하나님나라의 청지기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인줄 믿습니다. 


# 거둠의 기도

우리를 천국의 청지기로 불러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위임하신 주님

이 모든 것을 향한 주의 뜻을 아는 지혜와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진실함과

늘 깨어 있어 준비하는 믿음으로

이 사명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주의 뜻을 아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알게 된 그 뜻에 충성된 종이 되길 원합니다. 

이 시대 교회를 부르시고 세워가시는 

주님의 뜻을 바로 알아

빛과 소금의 사명을 바로 살아

주께 영광되게 하옵소서. 

누가복음 12:35-48 인자의 재림을 준비하게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거룩한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여정을 왜 진실하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주인을 기다리는 종과 주인의 소유를 맡은 청지기 비유를 통해 가르치십니다. 깨어 준비하며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복되다 하시고, 많이 맡은 자의 책임은 그만큼 더 중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언급하십니다. 

신앙의 여정은 단거리 경주도 아니고 한 두 번의 결단과 헌신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랜 마라톤과 같고,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 여정에서 오래도록 지혜롭고 진실한 인내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은혜에 대한 누림도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 곧 사명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생명을 허락하사 살리실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누려야 할 부분도 있고, 또한 그에 따른 책임과 더불어서 왜 주셨는지 물어야하고 대부분은 우리의 이웃을 향해 흘려 보내고 섬겨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35-40절 예수님은 인자의 재림을 깨어 준비하는 종이 복되다 하십니다. 

그의 나라를 구하고 마음을 하늘에 두도록 교훈하신 예수님은 이제 그런 삶을 오랜 여정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치십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늘 깨어서 언제든지 주인이 오면 문을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하시고 그런 종이 복되다 하십니다. 그 이유는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을 자리에 앉히고 수종을 들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오는 시기는 언제일지 모릅니다. 그러니 종은 깨어 준비해야 하는데 주인이 생각지 않을 때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림과 종말은 그 시기에 대해 우주적 종말과 개인적 종말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은 우주적 종말의 시간으로 이해하기에 그 시기에 대해서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개인적 종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이 한계가 있기에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기껏 백년남짓한 시간들이 개인적 종말의 시한들입니다. 그 안에는 여러 변수들이 존재하기에 언제 개인의 종말을 맞을 것인지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결국 우리는 남은 여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종말을 기억하고 늘 깨어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롭다 할 수 있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종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몇 가지를 요약적으로 제시합니다. 허리에 띠를 띠라 합니다. 언제고 떠날 준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얘기입니다.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합니다. 밤이 깊을 수록 가야 할 길을 밝히려면 등불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또 주인이 오면 언제든지 문을 열어 주도록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과 무관심한 사람의 차이는 분명 다릅니다. 주님을 알고 믿는 사람과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라 하십니다. 

주인이 오시는 것을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동안 계속 가르치시며 모범을 보이신 하나님나라를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한다고 말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삶을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삶은 누림도 있지만 책임 곧 사명도 함께 있습니다. 그것은 가깝게는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42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청지기의 삶입니다. 

이렇게 깨어 있는 종에게 다시오실 주님이 하시는 일은 파격적입니다. 그 종을 자리에 앉히고 주인이 수종을 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온전하게 사는 것 곧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그런 삶에 대한 보상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종말과 한계를 기억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그리고 닥치는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면서 주어진 삶에 신실하려 노력하고 알 수 없는 내일을 주께 소망을 두면서 자족과 섬김과 누림을 지혜롭게 감당하고 살아갑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모든 삶에 대한 평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서 책임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이는 우리 삶이 우연의 연속이 아니라 존재의 목적과 이유가 있어 피조되고 태어나고 구원받았다는 것을 아는 삶입니다. 

# 41-44절 예수님은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복되다 하십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말씀이 누구에게 해당되는 것인지 묻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라고 답하십니다. 그래서 주인의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잘 나눠주면 그 종은 복되다 하십니다. 주인은 종에게 모든 소유를 맡겼다 하셨습니다. 

일차적으로 지혜 있고 신실한 청지기는 제자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많든 적든 모두 주님으로부터 위탁받은 이들 곧 우리가 사랑을 나누고 섬겨야 할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섬기고 나눠야 할 양식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유, 무형의 유산을 가진 우리들은 그 주권이 주께 있음을 알고 그것을 주님의 뜻을 따라 살리는 일, 섬기는 일, 사랑하는 일에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 있는 종은 이 모든 소유에 대한 주님의 뜻을 아는 자를 말하고, 진실하다는 것은 그것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거나 마지못해 하는 것이나 인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힘과 뜻과 정성을 다해 충성하고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많은 것들 아니 모든 것을 공급받았습니다(모든 소유를 위탁받은 청지기).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필요를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에 맞게 주시지만 우리를 통해 또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릴 것에 대해서도 그 양식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살리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일에도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유무형의 자산들을 맡겨주신 주님의 뜻입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뜻을 아는 지혜로 진실하게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것도 중요하고, 그것을 잘 누림도 중요하며, 그리고 주신 것을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한 맘으로 섬기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 삶의 여정들이 이러한 지혜와 진실함으로 채워져 살아간다면 주께는 영광이요, 기쁨이 되고 참으로 복있는 자로 사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 지혜와 진실함을 실천하는 복된 종 청지기의 삶을 온전히 살기 원합니다. 

# 45-48절 예수님은 많이 맡은 자의 책임이 중하다고 하십니다. 

만일 종이 주인이 더디 온다 생각하여 종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은 커녕 학대하고 자기만 먹고 산다면 생각지 않은 때에 주인이 와서 그 종을 벌하게 될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도 않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않는 종은 많이 맞을 것이고,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입니다. 그만큼 많이 받고 많이 맡은 이들에게는 상응한 것을 요구하십니다. 

앞서 깨어 준비하면서 지혜 있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 결국 주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선택사항이 아니라 제자는 당연히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청지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고 위임받아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권이 주님에게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도 않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않는 종은 큰 벌을 받습니다. 잘 모르고 한다 해도 그 책임이 없다 하지 않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모두다 이해하지만 잘 모르고 그랬어도 책임을 묻는 일에 있어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경종을 줍니다. 주님의 뜻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이도 문제고, 그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행동하는 이도 문제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갈망과 배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 필요합니다. 지혜와 진실함도 요구됩니다. 하루도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 없고 늘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이 긴장을 놓쳐버렸고 안일한 만족에 빠져 있으며, 무엇보다 주님의 뜻을 다 안다고 착각하고 아예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위 구원환원주의에 빠져서 구원 받았으니 다 된거라는 심각한 착각에 빠져서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을 상고하지 않고 그 뜻을 제대로 모르다 보니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따라 삶과 세상과 사람을 해석하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이기적인 탐욕을 이루기 위해서는 열심이나 이웃을 바라보는 이타적 삶의 사명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이를 비롯하여 우리가 가진 교리와 신학의 전통은 상당수 신앙과 삶이 분리되고, 믿음과 행함이 분리되고,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분리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지함 속에서 누군가의 선동에 쉬이 부화뇌동하는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생각없이 살아가고, 생각없이 설교를 듣고, 생각없이 세상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생각없는 종교인이 되어서 소경이 인도하는지, 도둑이 인도하는지 분별하지 못하고 그저 앞사람이 가는 넓은 길로만 행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하나님의 필요성 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신앙을 버리는 일들이 있고, 이러한 상황이 주어진 하나님의 뜻에 관심도 질문도 하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없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이제는 다시 깨어서 준비하고 지혜로보 진실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교리에 대한 이해와 믿음의 차원을 넘어 신학도 그리고 성경에 대한 지식과 신앙적 삶의 이해등 모든 분야에 대한 재고를 통해 다시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알고 세우고 깨달아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전통과 역사를 무시하지 않되 온고지신, 반면교사를 삼고, 새로운 세상의 도전 앞에 다시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경을 깊이 상고하고, 그 말씀으로 무장한 지혜로 패역한 세상 속에서 진실함으로 살아 빛과 소금으로 나와 세상을 변화시켜 가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은 골방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과 독대하며 그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은 그 뜻을 따라 작은 일 하나하나 소홀히 여기지 아니하며 각자에게 주어지고 맡겨진 만큼의 사명을 진실함과 충성됨으로 채워가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줄 믿습니다. 그렇게 뿌리고 심고 물을 주는 일들을 때를 따라 잘 감당해야 할 사명이 하나님나라의 청지기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인줄 믿습니다. 

# 거둠의 기도

우리를 천국의 청지기로 불러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위임하신 주님

이 모든 것을 향한 주의 뜻을 아는 지혜와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진실함과

늘 깨어 있어 준비하는 믿음으로

이 사명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주의 뜻을 아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알게 된 그 뜻에 충성된 종이 되길 원합니다. 

이 시대 교회를 부르시고 세워가시는 

주님의 뜻을 바로 알아

빛과 소금의 사명을 바로 살아

주께 영광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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