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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Feb 08. 2021

누가복음 12:13-34 하나님나라의 생명을 주신 예수

누가복음 12:13-34 

누가복음 12:13-34 하나님나라의 생명을 주신 예수님


주를 시인하며 살라는 가르침 뒤에 여전히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모르는 이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주님을 이용하려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생명이며, 이 생명의 주권과 가치가 하나님께 있으니 재물이 아니라 생명 곧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라 하십니다. 

생명은 단순하게 살아 있음을 넘습니다. 존재 자체이기도 합니다. 그냥 있음이 아니라 지으신 분과 함께일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 살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生命). 그렇다면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불어 넣어 주신 이 생명의 가치를 알고 허락하시는 동안 지음받은 뜻을 따라 허탄한데 소망을 두지 않고 그의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와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참 생명을 제대로 살아내는 영생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13-15절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고 하십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형제와의 유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자 예수님은 탐심을 물리치고 생명의 근원과 가치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의 의미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주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래서 사망 가운데 살던 이들 곧 참 생명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 없이 이 땅의 다른 소유로 족함을 얻으려는 이들에게 다시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공급받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신 분이라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이를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사람은 여전히 생명과 복을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다른 소유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런 소유가 만족을 줄 수 없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소유를 탐하게 되고 그 탐욕으로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타인의 소유를 빼앗다가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러한  탐심을 물리치라 합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무리 많이 모은다 할지라도 참 생명을 얻지 못하면 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죄악의 근원은 탐욕입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사망에 이르고, 족함이 없이 끊임없이 소유를 탐하며 끌려 사는 탐욕의 노예로 살아가게 됩니다. 소유를 위해 살고, 소유가 삶의 목적이고, 일의 목적이고 수고의 목적이며, 이를 위해 모든 사람과의 관계와 사물과의 관계와 심지어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수단으로 삼게 됩니다. 예수님께 와서 유산을 나누는 재판장으로서의 역할을 요구하는 사람이 자신의 탐욕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수단으로 삼는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방향입니다. 하나님이냐 하나님 아닌 것이냐의 방향을 말합니다. 주를 향한 갈망은 생명을 공급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닌 것에 대한 탐욕은 결국 사망을 낳습니다. 아무리 이를 다른 무엇으로 포장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다시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 듣고 나의 갈망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점검합니다. 


# 16-21절 예수님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로 살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또 비유를 들어 이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설명합니다. 한 부자가 자신의 소유를 쌓아 둘 곳이 부족할 정도로 모아서 이제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리라 하는데 그의 영혼을 주께서 도로 찾으면 그렇게 모은 것은 결국 자신이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생명을 살라 하십니다. 

부자가 이미 부자이면서도 밭의 소출을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또 모았으니 그의 곡식과 소유의 넉넉함이 여러해  쓰고도 남음이 있을만큼 많은 것이었습니다. 부자에게 쉼과 만족과 즐거움 곧 행복(생명)은 소유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모아도 그것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또한 모은 것도 자신이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자신이 일평생 모은 것이 잠시 쉼과 만족과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진 몰라도 영원한 기쁨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라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족함을 얻는 곧 영생을 얻은 자라는 말입니다. 이는 참된 안식과 배부름과 풍성함과 기쁨을 누리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 온전히 채울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부자는 재물로 말미암아 이 참생명의 가치를 알지 못했고, 결국 세상의 소유로는 부요하나 하나님 앞에서는 부요하지 못한 자였던 것입니다. 

지금 주님을 알고 믿고 함께한다고 하는데 과연 주님이 나의 목자 되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내게 족함이, 내게 주 안에 있음이 참된 안식과 기쁨이 되고 있나요? 하나님으로 부요하다 하면서도 부자를 지향한다면 아직 믿음이 부족하다 할 수 있습니다. 


# 22-28절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을 중하여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합니다. 먹고 입는 것으로 목숨과 생명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까마귀를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제자들은 더 귀하다 하십니다. 아무리 염려해도 키(생명 연장)를 자라게 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일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것이 백합화(들꽃)만큼 훌륭하지 못합니다. 그런 흔한 들꽃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하물며 제자들을 먹이지 않으시겠느냐 하십니다. 이를 믿음이 작다 하십니다. 

우리의 염려와 수고가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거나 연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 생명에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기에,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은혜만이 우리가 먹고 입고 마시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온전하게 채워질 수 있으며, 살 수 있으며, 족함이 있게 됩니다. 이를 망각하고 우리 힘으로 이러한 것들을 보장받으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믿음없는 행위입니다. 들풀도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그것들보다 더 귀한 제자들은 그 필요를 하나님께서 더 중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만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의뢰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채우심과 공급하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집을 짓고, 수고하며 일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그 결과가 헛되지 않습니다. 친히 택하여 세우신 백성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충만하게 채우시는 주님이 우리의 주 되시니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다. 있는 것 안에서 자족하며 부족할 때 주를 바라고, 넉넉할 때 눈을 들어 나눌 수 있는 이들을 돌아보는 것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부요케 하신 주님의 뜻일 것입니다. 


# 29-34절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의 나라에 소망을 두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먹어야 할지 구하지 말라 하시고 헛된 소망(근심)을 품지도 말라 하십니다. 이를 구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이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채우시니 우리가 구할 것은 그의 나라 곧 아버지께서 왕되시고 다스리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채우시니 우리가 가진 것들은 구제하는데 쓰라 하십니다. 그것이 진정한 생명을 얻는 것이며 부요케 되는 것입니다. 다함이 없는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에 우리의 맘을 두라 하십니다. 

그의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채우심과 보호하심을 구하는 것은 우리의 필요는 주께서 아시고 채우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소유로 영생과 쉼과 기쁨을 보장받을 것이라 착각하지 말고 그러한 소유는 자족하되, 혹여 구제해야 할 이웃이 있다면 기꺼이 나누고 섬기라 하십니다. 이는 물질에 대한 중요한 자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을 주님이 허락하신 줄 알고 자족할 줄 아는 삶에 더해서 우리의 소유는 주님의 것이니 주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사용하되 무엇보다 어려운 이웃들을 섬기는 일에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함이 없는 보물을 하늘에 쌓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있어야 할 자리는 결국 우리 하나님 앞입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소유의 주권을 주께 이양하고, 주님의 공급하심을 자족하며, 더 가진 것을 이웃을 위해 나눠야 한다는 것을 즐거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우심을 믿는 자만이 그의 나라를 구하고 헛된 것을 탐하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참 생명의 길, 영생의 길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망은 주께만 있습니다. 


# 거둠의 기도

생명의 주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재물과 여타의 소유에 집착하지 않을

주님에 대한 믿음 주옵소서. 

지금 내가 가진 것에 자족할 줄 알고

헛된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시며

필요 이상의 소유는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로 사는

넉넉한 믿음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목숨과 몸을

또한 귀하게 여김을 감사하면서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을 따라

어리석은 길로 행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의 통치와 함께하심과 인도하심을 믿으며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다함이 없는 보물을 하늘에 쌓는 자로

즐거이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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