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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19. 2022

요한복음 06:16-29 예수님은 새 출애굽의 주이십니

요한복음 06:16-29 

요한복음 06:16-29 예수님은 새 출애굽의 주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 후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는 무리들을 피해 산으로 간 사이,  가버나움으로 가던 제자들의 배가 풍랑을 만나 고생하다가 예수님께서 구해 주심을 경험합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바다 건너편까지 찾아 오자,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말씀하신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출3:14)와 같은 표현으로 ‘나’(20절, 에고 에이미, ‘스스로 있는 자’의 헬라어 표현)로 표현하고 하나님게 나라와 권세를 위임받고(단7장), 유월절 어린양으로 대속 제물이 되리라 예언된(사 53장) ‘인자’(27절)로 알리십니다. 


# 16-21절 예수님과 함께하는 곳이 우리가 당도해야 할 땅입니다.

예수님은 새 출애굽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본문의 여섯구절 속에 담겨진 이야기는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구원받아야 할 인간의 실존)의 이야기들을 연상시키는 표현들이 나옵니다. 캄캄한 밤에 바다에서 오랜 시절 잔뼈가 굵어진 이들이, 큰 바람과 파도에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활 때 주님이 오셔서 두려워 말라 하시고, 그들이 곧 가려던 땅에 이르게 합니다. 물 위로 걸어오신 주님을 본 제자들이 두려워하자 주님은 다시한번 자신의 정체성을 밝힙니다.(‘나’다 에고 에이미). 그러자 제자들이 기뻐하며 영접하니 배는 곧 가려던 땅에 이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새 출애굽을 통해서 구원하시며, 또한 우리로 생명을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풍랑(인생에 다가오는 문제들) 앞에 상식과 이성과 우리가 가진 모든 기술을 동원해도, 제자들은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혼돈의 바다)가 요동 쳐도, 주님이 함께 하시니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게 됩니다. 

주님의 부재에 어찌할 줄 모르던 이들, 정작 주님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과 따르자 두려워하던 제자들, 그러나 마침내 주님인 줄 알고 기뻐하며 영접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그곳이 우리의 목적지입니다. 주님을 멀리 떠나 있을 땐 두려움이지만, 다시 주님과 함께하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기쁨이 넘칩니다. 새 출애굽, 구원, 영생을 통해서 새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일들, 주님이 함께하는 생명,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을 얻도록 더욱 주님과의 관계를 점검할 수 있길 원합니다. 주님을 떠난 우리에게 올 수 없는 상태에서도 기적적인 역사로 먼저 다가오신 분도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과 함께 하는 바로 그곳이 우리가 가려던, 가야할, 가고 있는 땅입니다. 그러니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마다 우리가 기억하고 바라보고 구해야 할 곳은 우리 주님이심을 믿고 오늘도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 22-25절 우리가 바라고 찾는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람들은 바다 건너편에까지 집요하게 예수님을 찾아옵니니다. 왜 그렇게 예수님을 찾으려고 할까요? 마침내 예수님을 찾고 나서는 ‘랍비’라고 부릅니다. 아직 주님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이 무리들은 표적을 보고 믿는 무리들입니다. 이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자신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고 풍성하게 해주는, 그래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시는 분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후에 이들은 설렘과 기대 속에 주님을 찾고 있지만 아직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혹세무민하며, 우리의 필요와 탐욕을 채워주는 주님을 장사치들 마냥 팔아대며 선동하는 소리들에 함께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주님을 만나고 찾고 전하며 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진정 우리가 걷고 따라야 할 길입니다. 주님을 얼마나, 어떻게 알고 있으며, 또 말씀을 통해 얼마나 바르게 알아가고 만나고 있으며, 함께 나누며 전하고 있습니까? 지금 간절히 주님을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오래도록 주님을 알고 믿고 따른다 했는데 그 목적과 방향은 선한지 아닌지 늘 점검하고 있습니까?

제자들처럼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무리들처럼 기껏 랍비를 찾는 일에 배를 타고 물을 건너 부지런히 주님을 찾는 이기적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 26-29절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표적을 경험하고, 떡을 먹고 배부른 무리들이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 하십니다. 그 양식은 인자가 준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묻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예고하실 때 인자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께서 새언약의 제사에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임을 당함으로써 이 양식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율법(유대인은 율법을 양식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을 살려줄 것이라고 생각함)을 지켜야 할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지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은 ‘믿는 것’(현재형 동사로서 계속해서 믿는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이 양식으로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믿음이 순종, 영접, 사랑, 따름등의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믿음이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니고데모도, 사마리아 여인도, 왕의 신하에게도, 영생의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며, 살 양식이고, 영생을 얻는 길이며 주님의 일인 것입니다. 바로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의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는 일을 위해 요한은 이토록 예수님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지금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대속과 구원과 하나님의 일을 차근차근 순종해 가시며 신실하게 이뤄가고 있습니다. 새 출애굽을 완성하시면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새 백성으로, 새 창조를 통해서 새 사람으로 새 인류로 만들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세워가고 계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새창조되었기에 가능해진 일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법이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 사실을 알고 영접하게하고 마침내 온전히 순종케 하는 것입니다. 


# 거둠의 기도

새출애굽을 위해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

주님과 함께 하는 삶 그 자체가 

인생의 목표와 목적인 믿음 갖기 원합니다. 

주님을 집요하게 찾는 이유가 

썩을 양식을 위한 목적이라면 잘못된 열정을 버리게 하옵소서. 

오직 우리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새 백성,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족함 없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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