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Feb 04. 2022

요한복음10:22-42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요한복음10:22-42 

요한복음10:22-42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수전절 성전에서 거니실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확실하게 그리스도임을 밝히라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의 양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일을 해도 믿지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고 질책합니다. 급기야 아버지와 하나라는 말에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이라 하며 돌로 치려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을 인용하면서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히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나 그들 손에서 벗어 납니다. 이어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곳에서는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않은 요한의 증거를 참이라하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

# 수전절 배경

본문은 수전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월절 약 4개월 전입니다 수전절은 시리아의 헬레니즘 정책으로 더럽혀진 성전[헬라왕안티오쿠스 4세는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예루살랩 성전에 있는 기구들을 탈취했습니다(주전 169년). 뿐만 아니라 성전 제단에 쥬피터 신상을 세우고 돼지의 피를 바쳤습니다(주전 167년). 이것이 곧 ‘멸망의 가증한 것’이었습니다(막 13:14)]을 마카비 가문의 무장 혁명을 통해 주전 164년에 정결하게 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로서 ‘하누카’(히브리어, ‘봉헌’의 의미)라고도 합니다. 이 부분에서도 양과 목자의 주제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10장과의 시간 차이가 많지 않은듯 합니다. 그렇다연 9장의 맹인 치유사건과 현 본문과의 시간차 역시 크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_<묵상과설교> 


# 22-30절 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수전절에 솔로몬 행각에 거니시는 예수님께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그리스도이면 밝히라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이 믿지 않기에 당신이 행하시는 많은 증거도 받아들이지 않고, 말씀도 듣지 않고, 따르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믿는 자들 곧 만물보다 크신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이들에게 영생을 주어 영원히 멸망하지 않게 하실 거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과 아버지는 하나라고도 말씀하십니다. 

마카비 혁명으로 성전을 정켤케 하는 기념일이 수전절이기에 그동안 예수님의 메시아(그리스도) 되심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지도층 내부에서도 논쟁이 있고, 민심의 동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유대인들이 위협적으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한 메시아 상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그동안 당신이 많은 증거를 통해서 약속된 그리스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그리스도, 영생을 주시는 그리스도, 하나님과 하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표적과 일들과 말씀들을 전하셨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하지만 애초 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잘못된 전통과 왜곡된 신앙을 갖고 있었기에 결국 그리스도와 오셨음에도 알아보지 못하고 믿지 않고 급기야 배척하는 이유를  에수님은 상기시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이심에 대한 말씀은 그의 뜻과 역할과 일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간의 증거만으로,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그것을 증거한다는 것을 밝히고 계십니다. 그런 주님을 믿고, 그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 되신 주님을 온전히 믿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영생 곧 하나님의 생명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에 순종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를 구원과 하나님의 백성됨과 그의 양됨과 제자됨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의 말씀의 증언들인 성경을 듣고 묵상하며, 또 순종하며 살아가는지의 여부가 신자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늠합니다.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은 선한 목자되시는 주님이 하십니다. 그렇게 우리를 택하여 부르시고 이끄시고 행할 능력을 주사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도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님에게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_(로마서 8:37-39)


# 31-39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 안에 거하십니다. 

아버지와 하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이라 하며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합니다. 예수님은 여러가지 선한 일로 증거를 보였음에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유일신앙에 대한 한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유대인들의 의문에 예수님은 시편의 말씀(시편 82:6)을 인용하며 유대인들의 율법 이해의 문제점, 폐할 수 없는 성경을 언급하시며 그들의 판단 착오를 반박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버지의 일을 행하는 것을 것인데 이에 대한 믿음을 촉구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하나라고 하신 말씀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또 예수님을 잡고자 하지만 그 손에서 벗어납니다.  

선한 일이라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을 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로부터 오셨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아버지와 하나라를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율법 이해에 갇혀 사람이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그들이 알고 있는 율법(구약)에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거룩하게 해서 보낸 자를 아들이라 하는 것이 무슨 문제인지 되묻습니다. 그러면서 단순하게 하나님과 하나라는 도식이 아니라 보냄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말씀은 동시에 예수님께서 그들이 질문한 대로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성경을 통해 시작되고 확증됩니다. 하지만 그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이해하고 믿는 것은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환경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유일신앙을 따라 종교적 관습이 자리하고 그에 따른 성경의 이해를 갖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등장과 사역들과 표적들은 충격이었습니다. 민심이 동요하고 그에 따른 대응들을 논의하면서 자신들의 한계가 드러나고 그래서 더 긴가민가 하는 갈등에서 몇가지 기준을 갖고 예수님께 접근해 논쟁하지만 자신들의 논리의 한계가 드러나자 폭력을 행사하려 합니다. 이러한 반응은 스스로의 한계와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율법의 규정을 따라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말씀과 사역에 대한 합당한 반응은 회개와 믿음과 순종입니다. 애초부터 그럴 맘이 없이 접근하는 이들에게는 예수님은 신성모독하는 자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자요, 민심을 동요케 하는 반란자요, 유익이 아닌 손해를 보는 자요, 그래서 자신들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자로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여 고치고 바꾸고 내려놓고 변화해야 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강한 폭력적 행위로 가리고 저항하는 것입니다. 빛의 일을 어둠이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말씀을 통해 그 뜻과 일과 증거들을 보고 듣고 알아갈 수록 더욱 주님의 그리스도 되심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합당한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길 원하며, 날마다 말씀의 검으로 우리를 빚어서 온전케되고, 어둔 세상에 담대히 나아가 거치른 폭력적 행태가 아닌 거룩한 길 곧 주님의 방식으로 행할 수 있길 원합니다. 


# 40-42절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증거가 참됨을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유대인들의 위협을 피해 요단강 저편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곳으로 가십니다. 많은 이들이 그곳에 와서 예수님의 사역을 본 이들은 이전에 세례 요한이 증거하고 예비한 길로 오신 예수님께 믿음으로 반응합니다. 

유대인들의 위협을 피해서 가시기도 했으나 예수님께서 물을 건너실 때마다 그곳에는 늘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이 택하시고 붙여주신 이들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지금 가신 곳은 이전에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던곳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을 따르는 이들은 그의 증거를 따라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비록 요한은 표적을 행하지 않았으나 예수님은 표적과 이에 대한 설명을 하셨으니 이것을 본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여전히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가 있을지라도 점점 그 믿음이 온전함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계속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과 표적에 대한 반응이 둘로 나뉘어 지는 것을 보여주며, 지금 우리에게 합당한 반응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통해 우리 주님의 사역과 증거들을 보고,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알아가고, 그의 나라와 의를 따라 순종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영생의 길인줄 믿습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 그 음성을 따라 그 문으로 출입하고 목자가 주시는 생명의 양식으로 힘을 얻고, 목자의 지팡위와 막대기를 따라 안위하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이 허락하신 만큼,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주님이 베푸신 모든 것들을 온전히 누리며 거룩한 길로 행할 수 있길 원합니다. 


# 거둠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 말씀을 잘 듣고, 깨닫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더욱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우리의 믿음이 든든하게 자라가게 하옵소서. 

주님 손에 붙잡힌 대로, 주님이 주신 영생으로

감사함으로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로서

주님의 자녀로 살게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주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의 증거들을 따라

더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한복음10:01-21 예수님은 양의 목자와 문이시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