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게 없다?

20220318_쉴만한 물가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남는 게 없다?


어릴 적 산골짜기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곳까지 온 보따리 장사 아주머니께서 하시던 말이 정말 그런 줄 알고 그 먼 곳까지 오셔서 필요한 물건을 주시니 참 고마운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년 내내 애쓰게 농사지은 농산물을 갖고 와서 건네 줄 때도 남는 게 없다는 말에 괜스레 미안하고 고마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좀 커지고 시장에 들러서 물건을 파는 이들이 값을 흥정하면서 건네는 남는 것도 없다는 말은 어느 날엔가부터는 물건을 비싸게 팔아 이윤을 더 남기기 위해 하는 상투적인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되어서 자영업을 하는 이들 곁에서 일을 하면서 들었던 남는 게 없다는 말은 월급 적게 주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장사를 해보면서 아내 사장님이 가끔 남는 게 없다는 말을 할 때 당신도 어느새 사장님이 하는 말을 한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수 일을 장사를 해보면서 정산을 해보니 정말 남는 게 없다는 말이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진짜구나 하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장사라고는 산에서 산나물이며 고사리 끊어다가 팔아본 것이 전부인 우리가 장사를 하면서 경영이나 경제에 대한 부분은 고사하고 장사의 기본도 모른 체 하다 보니 남는 게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오죽하면 카페에 오는 손님이 물건값을 정해 놓은 것을 보시고 이렇게 하면 남는 거 없이 남 좋은 일만 하게 된다고, 직접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물건값을 턱없이 잡아 두었다고 당신이 정해 준 가격으로 하지 않으면 애쓰고 팔아도 결국 남는 것은커녕 손해가 날거라고까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가격을 책정하고 운영하면서 설마 했는데, 달과 해를 넘겨 정산해 가는 과정에서 돌아보니 그런 이들의 말이 괜한 얘기가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제대로 모르지만 가격의 책정은 단순한 원가에 마진을 조금 붙이는 것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인건비를 비롯한 운영비와 여타의 경비를 함께 계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나물 고사리 끊어다 팔 때는 산이 다 키워준 것을 다만 가져다가 팔면 남고 고작 수고한 인건비 정도 들어간 것을 건지면 다 남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것마저도 농산물은 아무리 비싸게 팔아도 어느 날엔가는 골병이 든 병든 몸을 지켜내지 못한 계산착오로 정말 남 좋은 일만 하고 말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기실 농사는 장사가 아니라 정말 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는 장사를 한다면 그건 정말 경영을 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여러 가지 조건들이 좋았다고 볼 수 있고, 파는 물건 또한 진짜 상품성이 있기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 먹고 말 그대로 대박이 나거나, 대박까진 아니어도 자신이 일한 만큼의 인건비 정도 건지면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웬만해서는 자신의 인건비도 못 건지는 경우들이 태반입니다. 원가를 절감하고, 쉬지 않고 일하면서, 최대한 마진을 잘 계산해서 많이 팔려고 해도, 원가에서도 변수가 있고, 쉼 없이 일하고 싶어도 일감이 없거나, 마진을 잘 계산한다 하더라도 손님이 찾지 않으면 또한 문제가 됩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 앞에서는 배겨낼 장사가 없습니다.


사실 현상 유지만 된다고 생각한 하루 매출 금액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곧 그 금액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카페 운영을 혼자서 하긴 무리가 많습니다. 말 그대로 화장실도 제대로 가기 힘들고, 식사도 당연히 제때 하기가 여간해서는 어렵습니다. 그러면 사람을 써야 하는데 그만큼 인건비에 비등한 매출이 늘어야 합니다. 대박이 나서 쉴 틈 없이 일하려면 그만큼의 원가에 들어가는 재료비등이 당연히 늘어나고, 한 두 사람으로 불가하기에 더 많은 사람이 소용되면 인건비는 대등하게 또 올라가야 하고, 마찬가지로 그만큼의 매출과 마진이 상승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쁘게 장사를 해도 결국엔 마진은 자기 인건비 건지면 다행이라는 말을 앞서 장사하는 분들이 조언해 주셨는데 그 말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대박이 나면 좀 버는 것 같은데 결국엔 남는 건 별로 없고, 어느샌가 몸이 망가지고 여타의 무리수 때문에 남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아마 이런 얘기를 하면 장사를 해 보신 분들은 미소를 지으실 것입니다. 이제 알았냐고.. 정말 그렇습니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 몰랐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카페 일은 정말 보기와는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카페는 백조 같다고 했는데 참으로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겉에서 보기엔 고상해 보이고 편해 보이고, 남는 시간에 이것저것 즐겁게 취미 생활도 하면서 살 수 있겠다 싶지만, 일단 주방에 들어가고, 여타의 음료를 준비하고 직접 생산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백조가 수면 아래에서 물갈퀴를 쉼 없이 굴러야 하는 것처럼 정말 많은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은퇴 후에 한다거나 남는 시간에 카페나 하지라는 말은 정말 잘 모르고 한 얘기라고 되도록이면 도시락이라도 싸고 말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저는 이윤을 목적으로 카페를 운영한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습니다. 주일에 성도들이 교제하고, 평소에 책모임이나 아카데미와 여타의 모임이 필요한 장소로 쓰고, 남는 시간에 이왕이면 교제하기 좋은 카페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모르고 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카페를 오픈하기 위해 준비하고 코칭을 받으면서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좋은 컨설턴트를 만나서 카페를 오픈할 수 있었고, 아내의 많은 희생과 여타 고마운 분들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모든 분들이 그런 행운이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몇몇 지인분들이 카페를 오픈하셨지만 몇 달 안돼서 포기하거나 넘기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카페는 현상유지만 된다면, 이 말은 카페 오픈에 들어간 경비랑 운영에 필요한 비용들이 손실 없이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정도의 유지를 말하는데, 그렇게만 된다면 저의 인건비 정도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 수고해 준 아내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지만…. 다만 남는 것은 정말 제가 필요한 사역에 카페 공간이 가치 있게 잘 쓰이면 그것이 남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카페의 경영이 큰 손실 없이 운영되어야 하고, 최소한의 이윤이 남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하드웨어가 노후될 때, 그리고 여러 가지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비용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유지하긴 어렵게 될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아내 사장님이 최선을 다해 경영손실을 메워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되었고, 여러분들의 도움의 손길들 또한 카페 유지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저는 이상적인 생각을 유지할 수 있는데,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하 사장님(?)을 몰랐다면 암담했을 텐데 그나마 뚫린 하늘이 있어서 여전히 꿈꾸고 있습니다.


남는 게 없다? 그렇습니다. 남는 돈은 없습니다. 여전히 여기저기 끌어다 메꾸고 다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상품을 만들고 준비하는 일을 아내 사장님과 더불어 하나하나 감당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은 안 남았어도, 지난 15개월 동안 제게 남은 것은 많습니다. 우선 코로나로 예배당에 모일 수 없어서 많은 사역들이 멈춰야 하는 상황에 개업했는데, 돌아보니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카페가 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만 없지, 소통과 나눔과 채움과 여타의 일들이 모두 다 카페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예배도 제의적인 부분 이외의 만남이나 여타의 내용들은 카페에서 다 됩니다. 거기다가 제한된 구성원이 아니라 생전 만날 수 없는 많은 이들이 원근 각처에서 카페로 와서 많은 만남과 앎과 교제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애초에 필요한 공동체의 교제와 여타 독서모임이나 지역사회의 모임들을 위한 장소를 제공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예배당에 있었다면 만날 수 없었던 많은 만남이 카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카페 경영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음료를 만드는 방법이나, 지식들, 그리고 이러한 것을 경영하는 사업 경험과 지식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제게 남은 가장 소중한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이들을 전도하여 교회 구성원을 늘린다는 생각들은 애초에 하지 않았고, 카페를 운영하면서는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며, 잘 모르고 하는 얘기들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는 것이 사람이라는 얘기는 그런 뜻이 아니라 만남 그 자체의 소중함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이들이 카페 경영에 필요한 비용들을 음료를 구매하고 카페를 찾아 주면서 주신 것만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 이상으로 한 사람이 오고 만나고 알게 되는 것은 인생 여정에 크나큰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도움을 받든 지 주든지 그런 소통의 장소와, 다리와 가치를 갖는 것만으로도 큰 자산입니다. 이들을 장사하는 이들은 단골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미 오래 장사하는 사람들은 결국 남는 게 사람이고 단골이라고 합니다.


단골(丹骨)이란 말은 원래 길흉화복을 점쳐주는 단골네라는 세습 무당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 무당을 정해 놓고 찾는데서 유래하여 오늘날에는 무당의 의미는 줄어들고 가게나 식당을 정해 좋고 자주 찾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어찌 되었건 그런 단골들이 많은 것이 남는 것이란 얘기입니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제가 종업원(절대 사장님 아님)으로 일하는 우리 카페는 그래도 목사가 일하는 곳이기에 이왕이면 고객들에게 기독교적 가치를 전할 수 있길 바라는 맘으로 가치를 담은 카페로 운영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쉼과 소통과 채움이라는 모토로 인테리어도, 상품도 음악도 그런 가치를 담아보려는 시도를 해 봅니다. 캘리를 하게 된 것도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문구 하나 건네 드리며 잠시라도 의미를 얻는다면 이 또한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커피와 꽃과 캘리가 함께 있는 카페로 향후에는 책 있는 카페, 책 읽는 카페, 책 익는 카페로도 발전될 수 있길 구상하고 있지요. 카페 위층을 갤러리로 만들 구상을 하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꿈의 연장입니다. 그래야 허다한 카페 중에서 여기까지 찾아올 이유가 하나라도 더 생기니까요.


물론 아쉬움도 있고, 생각만큼의 성과에 못 미치는 부분도 있고, 뜻하는 바대로 시도했지만 좋은 결과로 귀결되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진상 손님 없이, 사고 없이 온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광양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것도, 찾는 이마다 이런 카페가 여기 있었네 하시면서 좋아하시고, 내어 드리는 음료를 보시며 환하게 바뀌는 얼굴을 보고, 가져가셔서 너무너무 예쁘다 하시고 가시면서 또 온다고 하시는 말을 들을 때도 기분이 좋습니다. 아쉬움과 보람들 하나하나 제게는 모두 경험을 통한 자산으로, 그리고 잘 융합되어서는 지혜로 남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돈은 안 남았지만 돈보다 훨씬 더 소중한 가치를 담은 사람을 비롯한 귀한 지혜들은 지난 수개월 거의 쉼 없이 달려온 제게 주님이 남겨주신 소중한 보물입니다. 그래서 고향 엄니가 전화해서 많이 벌었냐 하시면 아이고 남는 거 음써요 하려다가 잘 되고 있다고, 많이 벌었다고 말합니다. 남는 게 없다? 아니요 저 남는 거 아주 많습니다.


2022년 3월 18일

카페 종사 15개월째 평화의 길벗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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