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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동행, 동역

20220316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배움, 동행, 동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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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공자의 말입니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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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배움을 통해 스스로 먼저 설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타인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이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이끌어 갈 수 있으려면 배움을 멈춰서는 안됩니다. 리더의 유통기한이 배움을 멈출 때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니 배우고 또 배워서 익혀가는 자라야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뜻을 모아 한 방향으로 이끌고, 구성원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만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뜻이 다른 이라 할지라도 설득하고 토론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품고, 말과 행실에 일치된 모습으로 신실함을 통해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 사람들의 비난이나 칭찬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자신과 조직의 목표를 위해서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물론 이러한 목표가 사익추구나 불의한 조직이라면 다릅니다. 그렇지 않은 조직이라면 타인의 평가에 분을 내거나 서운해 하지 않는 건강한 맘을 갖고 사람을 품어 주는 그런 사람이 좋은 리더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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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도 사유도 철학도 없고 임기응변으로 급조된 생각과 정책과 말들은 금새 바닥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함께하는 이들이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다양한 사람만큼 생각도 가치관도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율을 위해 윽박지르거나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과 토론과 타협등의 과정들을 통해서 합일점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럴 수 없거든 다름을 틀리다 하지 않고 인정하면서 둘을 다 품을 수 있는 넉넉한 아량도 있어야 합니다. 함께하는 이들의 면면이 이기적인 탐욕을 위한 철새나 똥파리같은 변묻은 이들이 태반라면 말할것도 없이 그 리더는 구린 것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 이들이 리더가 된다면 그런 조직과 공동체의 앞날은 암울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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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좋은 리더만 세워지면 조직과 공동체가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리더와 공동체는 상호 보완적인 유기체적 상호 책임과 의무가 있는 관계입니다. 리더의 언행심사에 대해서 그것이 어떤 의도와 철학과 목적을 갖고 있는지 그것의 유불리 뿐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해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공동체 구성원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구성원들이 깨어 있어서 리더를 향하여서 바로서게 하고 바른 것을 요구하고 협력해 가면서 견제와 협력의 균형과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리더에게 맹종하는 이들은 암적 존재이며, 오히려 직언하며 늘 객관적으로 자신을 점검할 수 있게 하는 사람, 그리고 옳은 일에는 잘 협력하는 이들이어야 합니다. 훈수만 두고, 비판만 하면서 정작 협력해야 할 때 발을 빼는 이라면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리더와 공동체는 서로 견제하고 또 협력하면서 함께 배우고 자라가고 성취해 가는 상호 책임과 의무과 혜택을 함께 누려 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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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리더든 구성원이든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앞서 일하는 이들을 향하여 비평하고 비난하고 딴지를 거는 일은 너무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훈수를 두거나 댓글을 다는 일도 쉽지만 어떤 생각을 정리하고 그렇게 본문을 쓰고, 정책을 연구하고 수립하여 실행하는 일들은 모두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비평하고 비판하며 댓글을 달고 갑론을박하는 일은 조금만 삐딱하게 보면 금새 비난과 정죄로 툭툭 쉽게 배설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라고 하면 잘 할것처럼 생각하지만 정작 해 보면 쉽지 않습니다. 앞서 보고 실행해 보면 생각처럼 쉽지 않고 미처 고려하지 못한 얽히고 섥힌 다양한 문제가 혼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비평과 비판을 앞세우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고, 실천과 행동을 앞세우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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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생각들이 상식일진대, 우리는 결국 배움이 부족하여 말도 못하고 그래서 생각도 없는 듯하고, 비판과 비난으로 일관하면서 자신의 정책은 없고 있어도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곁에 있는 이들은 온갖 비리들로 얼룩진 무리들이 빌붙어 있는, 이미 이전에 본론과 정책과 삶은 부정부패와 온갖 비리와, 국정농단과, 탐욕으로 올룩진 역사를 가진 그런 이들이 내세운, 무식하나 서슬퍼런 무력을 서슴치 않는 허수아비같은 이를 리더로 세우고 말았습니다. 일꾼을 뽑은 것이 아니라 일만 만들고, 일을 벌리고, 일을 망칠 것 같은 이를 세우고 말았습니다. 상식과 분별과 진실을 외면하고 지극히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무리들의 선동에 놀아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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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몰랐다면, 또 안 보인다면, 그래서 이러한 현상과 현실과 현황을 몰랐다면 그냥 무지랭이처럼 모자란듯 그렇게 살텐데, 뻔히 아는걸 모른척 할 수도 없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보이는 것을 안볼 수 없으니 그냥 손놓고, 넋놓고 살 순 없기에 더 안타깝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고, 소속된 공동체의 구성원이기도 하고 또리더의 위치에 있는 것도 있기에 염세적으로 외면할 수 없어 몸과 맘으로 느껴지는 책임이 한층 더 가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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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 출구를 찾기 위해 길을 모색하는 일을 다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을 함께 할 이들을 모으고 협력하고 뜻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다수가 선택한 결정의 결과가 예상대로 가든지 그렇지 않든지 일희일비하며 흔들리지 않고, 애초 잘못 심겨진 것을 옮기든지,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견제하고 또 인도하면서 품어 함께 살 수 있는 길로 차근차근 인내로 경주해 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배움도 동행도 그리고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고 동역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를 되새겨 봅니다.


2022년 3월 16일

평화의 길벗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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