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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야 Oct 07. 2024

멀리하기엔 너무나 사랑스러운 당신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상

#생생한 알람


아침 8시쯤이 되면 현관문이 시끄러워진다.

고양이들이 문을 박박 긁어 대서다.

날카로운 고양이 발톱으로 유리와 철을 긁어대니 소리가 영 듣기 좋지 않아 자연스레 문을 열고 밖을 확인하게 된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빠딱빠딱 일어나 밥을 내놓으라는 고양이들의 귀여운 협박이다.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된 것 같은데 그새 어미를 따라 발기술을 익혔다.

어미를 따라 아가들까지 함께 문을 긁어대니 전보다 소리가 더 거칠고 강해졌다.

아가들이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나 보다.

문이 열리면 빼꼼히 안을 들여다보는 고양이들

길고양이라 하기엔 우리 마당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 마당냥이라 부른다.

고양이들은 자유로운 영혼이어서, 우리 마당에서 지내다가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는 일이 많다.

그래서 '우리 고양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나도 고양이들도 서로에게 너무 많이 길들여지지 말자 하는 마음이다.

마음 같지 않게 자꾸 좋아져서 문제지.


고양이들 덕분에 천장에서 들리던 쥐들의 우다다다 경주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밭에 구멍을 내고 다니는 두더지들이 고양이에게 무참히 물려 죽어 마당에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작은 뱀도 한 번씩 전시.

매달 나가는 고양이 사료값이 만만치 않지만 고양이의 보은이 있어 충분히 치를만하다.

게다가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아침마다 알람 역할을 자처하며 나를 일으켜 세워주니 얼마나 감사한가.


# 가까이할 수 없어요


어미 고양이는 학습이 되었는지 현관문을 열어놔도 집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아가들은 아직 뭘 몰라서, 현관문이 열리면 그 자그마한 몸을 잽싸게 움직여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우리 집은 고양이 절대 출입 금지!

나는 고양이들을 처절하게 가로막는다.

우리 집엔 고양이털 알레르기 있는 사람이 살고 있으니까.


고양이털이 조금만 날려도 금세 코를 훌쩍이며 힘들어하는 첫째 아이 덕에 고양이들은 절대 출입 금지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이는 고양이를 만져 볼 수 없다는 게 너무도 억울하다.

어떤 날엔 눈물을 주룩 흘리며 울기도 한다.

사춘기 소녀의 감수성이 폭발하는 날, 너무도 사랑스러운 그들을 가까이할 수 없음이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비참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가까이할 수 없어 바라보기만 하는 아이와, 집 구경 좀 하고 싶은데 영 문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하염없이 집 안을 바라보는 고양이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는 관계라니.

애절하다.


애절한 그들 사이에서 양쪽을 가로막으며 통제해야 하는 것은 나다.

아이가 계속 아프다면 나는 더 이상 고양이들이 우리 곁에 살도록 그냥 둘 수 없다.

그게 엄마이지 않은가.

둘이 가까이하지 않아야 지금의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함께 살 수 있다.


고양이를 만지고 싶어 떼를 쓰며 징징 거리는 아이는 잘 다독이고

자신만 왜 알레르기가 있냐며 원망할 땐 '알레르기에 이유나 원인 따위는 없다! 그저 그런 것이다!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만 집중하는 것이다'를 주입시킨다.

집안으로 들어와 함께 놀려고 애를 쓰는 아기 고양이들은 계속 문 밖으로 밀어내고 엄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고양이들이 알아듣고 훈련이 될 때까지 계속.


아! 마당에 밥을 두지 않고 멀리 하면 될 일인데

멀리하기엔 너무도 사랑스러운 그들.

마당냥이들과의 공생을 이루기 위해 착한 악역을 자처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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