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풀들이 무성해지는 시기다. 예초기를 자주 꺼내든다.
예초기를 본격적으로 돌리기 전에 괜히 소리도 조금 질러보고 발을 굴러 땅에 진동을 내기도 한다.
주변에 있는 곤충들이나 작은 동물들에게 나름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서로 마주쳐봐야 좋을 게 없다.
나도 놀라고, 그들도 놀라고.
나는 놀라는 것에 그치지만 그들은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니 우린 서로 마주치지 않는 게 좋다.
요즘 밭 주변에 나비들이 무척 많다.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우리 농장에 찾아와 준 게 고맙고 그들이 살만한 곳이 되었다는 것에 기쁘기도 하다.
풀 속에서 곤히 쉬고 있던 나비 한 마리가 나의 신호를 감지하지 못한 모양이다.
사정없이 돌아가는 예초기에 나비의 날개가 순식간에 찢겼다.
나비를 발견하자마자 예초기 버튼에서 손을 떼었지만 나의 눈과 몸의 반응속도는 기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내 눈에 안 띄었을 뿐이지 이런 일이 한두 번 이었겠는가.
막상 눈앞에서 그 모습을 마주하니 내가 그리 야만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초를 끝내고, 찢겼던 나비의 모습이 계속 맴돌아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밭을 둘러보는데 새삼 작은 아이들이 눈에 더 많이 들어온다.
작은 잎 위에 더 작게 앉아있는 개구리 한 마리.
다행히 잘라낼 일 없는 맥문동 잎 안쪽에서 쉬고 있는 달팽이.
부화한 지 얼마 안 된 건지 공격력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무해한 모습의 작은 사마귀.
잠깐 사이에 여러 작은 생명들을 만난다.
나비에게 더 미안해진다.
최상위 포식자로써 어쩔 수 없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미안합니다."
조금 더 예리한 시선과 마음으로 밭을 돌봐야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