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인연

어떤 나무와 어떤 인연을 맺게 될까

by 마야

+ 소나무와의 인연


화단에 소나무 하나가 불쑥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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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발아 한 소나무다.

시골생활 8년 차에 자연 발아한 소나무를 처음 보았다.


사연이 많은 화단이어서 화단 속 안의 흙이 그리 좋지 않은 상태다.

화단에 심어둔 꽃들이 시들지 않고 살아남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는 공간인데, 그런 곳에 떡하니 제멋대로 자리를 잡고는 뿌리를 내려버렸다.

잘 살 수 있으려나, 바라보는 나만 속이 탄다.

바라보는 이의 속이 타는지 마는지 이 아이는 뾰족뾰족 새싹 시절을 지나 어느새 가지를 뻗은 작은 나무가 되었다.

새싹 시절, 화단 주위를 오고 가며 '뽑아서 다른 곳에 심을까?'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던가.

괜히 뽑았다가 죽이는 거 아닌가 싶어 그 앞에서 손을 대었다가 떼었다가 혼자 움찔움찔.


예전에 잘생긴 소나무를 가져다가 밭에 심어둔적이 있었는데 뭐가 잘 맞지 않았는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죽어버린 적이 있다.

애지중지 가져다 심은 나무는 시들하다 죽어버리고, 오히려 나무 심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공간에서는 이렇게 굳건하게 잘도 자란다.

내 손이 문제인가. 그러니 결론은 함부로 손대지 말고 '알아서 자리 잡았으니 알아서 잘 살아남거라!'


그리하여 비탈진 작은 화단에 소나무 한 그루가 살게 되었다.

의도치 않은 갑작스러운 인연에 낯을 좀 가리긴 했다만, 지금은 매일 들여다보는 듬직한 친구가 되었다.

소나무는 장수의 상징이 아니던가. 내 곁에 오래 남는 인연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 뽕나무와의 인연


나의 작은 텃밭에서 뽕나무 여러 개가 자라나려 한다.

주변에 뽕나무도 없는데 도대체 씨앗이 어디에서부터 날아온 걸까.

새들이 오디를 잔뜩 먹고 우리 밭에서 똥 파티를 한걸지도 모르겠다.


뽕나무는 번식력이 너무 좋고, 뿌리를 뽑아내기도 어려워서 텃밭에선 반갑지 않은 나무다.

다른 곳에서 뽕잎을 따다가 반찬 해 먹을 땐 '뽕나무 좋다!'라고 했으면서, 너무 잘 자란다고 질색해하는 것도 참 이기적이다 싶다만, 좁은 곳에서는 함께 하기 참 어려운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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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먼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오른 뽕나무 하나.

다른 뽕나무들은 작은 가지일 때 모두 잘라내었는데, 가장자리여서 신경을 쓰지 못한 사이 키를 쭈욱 올려 나무다운 티를 뽐내기 시작했다.

커다란 뽕잎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으니 손을 대는 게 미안해진다.


이곳은 다른 작물들이 없으니 크게 자라도 괜찮지 않을까? 하며 마음이 살랑 움직인다.

자를까 말까 자를까 말까 또 손이 움찔움찔.

결국 '너무 크지 않게 자주 손 봐주고 뽕잎이나 잔뜩 따먹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냥 두었다.

자주 손 봐주겠다는 다짐은 잘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마음만큼 발길과 손길이 미치지 못한다.

무성하게 자라난 거대한 뽕나무를 보며 이 시절 잘라내지 않은 걸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겠나. 나무와의 인연에 이리도 미련한 것을.


뽑아내고 뽑아내도 자꾸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뽕나무들을 보며 '나랑 살고 싶은가 보다' 하며 마음이 동하는 것을 보면 인연이 아닐 수가 없다.


+ 인연이란 것


의도한 인연이건, 의도하지 않은 인연이건 자연스럽게 내 곁에 머물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렵게 만난 소나무, 만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만날 수밖에 없었던 뽕나무.

그리고 밭에 심어진 작은 나의 다른 여러 나무들.

텃밭을 거닐 때마다 내 옷깃을 슥슥 스치는 나뭇가지와 잎들 덕분에 이 삶이 자연스럽고 평안하게 흘러간다.

모든 인연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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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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