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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Nov 20. 2020

나도 우울증일까? 조울증일까?

우울증과 우울한 감정, 조증과 활기찬 감정은 어떻게 다를까?

으슬으슬 춥고 콧물이 나고 목이 붓고 열이 나면 감기에 걸린 건가? 라고 의심을 한다. 마찬가지로 우울증, 조울증도 마음의 병이지만 눈에 띄는 객관적인 증상이 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감정 범위인 우울하다, 슬프다, 비참하다, 의욕이 떨어진다, 기분이 좋다, 행복하다, 자신감이 있다를 넘어서는 균형이 깨진 감정 상태가 표정, 말투, 행동으로 나타난다.


우울증, 조울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감정을 어떤 객관적인 지표와 근거로 질병이다, 아니다를 진단할 수 있지? 싶었다. 감정을 약물로 조절한다는 치료법은 이해되지 않았고 거부감이 들었다. 스트레스 없이 잘 쉬고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다면 점차 회복되지 않을까라는 덧없는 생각을 했다.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위험하고 헛된 희망이었다. 일단, 약물로 감정을 조절하는 게 아니었다. 불균형 상태인 호르몬 또는 뇌 기능에 관여하는 물질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었다. 호르몬과 감정, 기분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과 조울증은 한 글자 차이이고, 조울증(양극성 장애)은 우울증상태도 겪기 때문에 헷갈리기 쉽지만 다른 질병이다. 현재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는 우울증이라는 단어에 더 익숙하다. 하지만 종종 보도되는 연예인들의 극단적 선택도 정신병리학적으로는 우울증이 아닌 조울증 때문일 확률이 더 높다고 보고 있다. 영어명은 완전히 다르고 각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 우울증 憂鬱症 depression : 기분이 언짢아 명랑하지 아니한 심리 상태. 흔히 고민, 무능, 비관, 염세, 허무 관념 따위에 사로잡힌다. 

- 조울증 躁鬱症 bipolar disorder : 정신이 상쾌하고 흥분된 상태와 우울하고 억제된 상태가 교대로 나타나거나 둘 가운데 한쪽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병. 조현병과 함께 2대 정신병의 하나이다.




내가 본 조울증은 긴 우울증상태 중에 잠깐씩 조증상태 또는 복합된 상태가 나타났다. (당시에는 눈치를 못 챘지만 돌이켜 보니) 복합된 상태가 약하게 오래 지속되기도 했다. 사람이 약간 달라졌다고 느꼈지만 우울한 상태는 경미했고 오히려 전보다 활력이 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짧은 기간 나타난 조증상태 때문에 조울증은 심각하고 위험한 질병이다. 위험한 이유는 조증상태가 금방 지나가버리면 가족은 물론이고 환자 본인도 병을 잘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본인과 가족 모두 잠깐 이상하다고 느낄지 언정 곧 원래 모습(처럼 보이는)으로 돌아온다. 조기에 병원에 갈 시기를 놓쳐서 모르는 새 방치해 병을 키우기 십상이다. 우울증상태인 기간이 길기 때문에 우울증으로 오해하기도 쉽다.


누가 보더라도 증상이 뚜렷해서 병원에 가면 이미 중증 상태다. 치료 기간도 길고 재발률도 매우 높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큰 심각한 질병이다. 언제 상태가 우울증, 조증으로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의사의 약 처방도 그때그때 다르다. 심한 경우 감정 상태가 날뛰기 때문에 꾸준한 일상생활 관리에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증상 정보를 한 번이라도 접해봤다면 의심 상황이 닥쳤을 때 빠르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돌이킬 수 없지만 늘 후회로 남아 있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듣고 이야기 나눈 조울증 증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우울증과 우울한 감정, 조증과 활기찬 감정은 주변 사람에게 어떻게 다르게 보일까.




우울증일 때는 잠을 엄청 자고 주변 사람에게도 무기력한 상태가 확 느껴진다. 요 며칠 야근을 많이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살에 걸려서, 안 하던 운동을 무리하게 해서 재충전을 하려고 밥을 굶고 하루 종일 자는 느낌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할 수가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잠자는 것뿐이라 잠으로 도피해 빠져든 것 같은 인상이다. 식사는 거의 하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거나 슬픈 일을 생겨서 간장肝腸이 끊어지는 아픔을 겪어도 보통은 애도의 기간이 끝나면 다시 일상을 회복한다. 그런데 우울증에서 비롯된 무기력증은 그 시점에서는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는 불안감을 주변인도 느낀다. 한편, 생각이 너무 많고 멈출 수가 없어서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중구난방인 생각을 끊고 일을 하거나 잠을 자야 하는데 통제가 안 된다. 거식증과 폭식증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듯도 하다. 식사를 거부하면서도 몰래 먹고 남은 음식 포장지를 옷장 등에 잔뜩 숨겨놓기도 한다. 가장 기본인 수면과 식사에서 불균형이 발생해 삶의 균형이 완전히 깨져버린다.


조증일 때는 사람이 180도 달라진다.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의욕이 넘친다. 열정이 넘치고 몰입하는 긍정적인 상태가 아니다. 에너지가 솟구쳐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다. 과다한 에너지를 분출하느라 욕을 하는 등 폭력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평소에 차분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비난하고 질서 준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아이디어가 넘쳐흐르고 하고 싶은 일,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고 말을 횡설수설한다. 그 가운데 맞는 말들은 반박하지 못할 정도로 논리 정연 하기도 하다. 말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생각이 많다고 괴로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의욕이 솟구쳐서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문제는 현실성이 없는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가령,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바로 국회의원에 당선이 될 수 있을 확률이 100%라는 식이다. 의견에 반박하면 공격성을 보이고 지나치게 흥분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애교가 듬뿍 담긴 문자를 반복해서 보내기도 한다. 문제는 평소에 하던 말과 행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마음속에 담았던 말을 용기를 내서 한번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다. 행동을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반복한다. 조증은 스스로는 감지하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먼저 ‘너 좀 예전과 달라진 것 같아’라고 알아채는 듯하다.


결정적으로 돈을 펑펑 쓴다. 그냥 아무 물건이나 막 사기 때문에 100만 원, 200만 원 정도는 금방 동이 난다. 숫자 개념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은행에서 한 달에 100만 원을 납입하는 방카슈랑스를 계약했다가 가족이 가서 직원과 싸운 끝에 해지하고 오기도 한다. 딱 봐도 다른 사람과 말투나 행동이 다르다. 그런데 돈을 마구 쓰니까 무리한 보험 상품을 권유한 은행 직원처럼 이때다 싶어서 판촉 활동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한마디로 어수룩한데 지갑을 왕창 여는 미끼를 문 셈이다. 그분들의 판매 과정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고 잘 알고 있다. 정당한 절차로 판매한 물건을 일일이 환불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아픈 사람을 상대로 자신의 잇속을 과도하게 챙긴 사기 행각에 지나지 않는다. 거금을 한순간에 날린 것보다 판단력이 흐려진 이에게 덤터기를 뒤집어 씌우고자 한 불순한 의도에 씁쓸했다.


조증 상태가 끝나면 자신이 한 행동을 자각하면서 자책한다.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미안해한다.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자신을 향하면서 스스로를 해치는 자해를 하기도 한다. 온통 상처와 흉터투성이인 거즈로 감싼 손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미어진다. 스스로도 자제를 하고자 노력을 하는데 잘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가족으로서는 억장이 무너진다.




의료진의 도움과 스스로의 의지, 주변 사람들의 보살핌이 있으면 완치는 아니어도 점차 나아질 줄 알았다. 괜찮아졌다고 믿을 때마다 중증 상태가 반복되는 가족을 보면서 초기 가벼운 증상일 때 치료 시기를 놓친 게 그토록 가슴이 아플지 않을 수 없다. 주변인 또는 본인의 자각으로 증상이 가벼울 때 조기 발견해서 치료를 받는 사람이 늘길 바란다. 삶의 균형을 깨뜨리지 말고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을 계속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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