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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Nov 25. 2020

폐쇄병동에서 벌어지는 일

곁에서 지켜본 조울증 입원

10여 년 전 중증 조울증으로 병이 진행된 가족을 소방관님들의 도움까지 받아서 힘겹게 입원을 시켰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병원이라는 부모님의 연락을 받자마자 손이 떨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경황이 없어 대리님, 과장님, 팀장님께 사정을 제대로 말씀을 드렸는지, 어쨌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갔다. 동생은 입원 수속 전 응급실에 머물고 있었다. 부모님께는 적대적이었으나 나에게는 우호적이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동생은 모진 말로 언니도 똑같다며 공격적으로 돌변했다. 만감이 교차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입원을 마친 후 간호사 선생님께 입원 치료 과정, 가족들이 지켜야 할 규칙 등 안내를 받았다. 집에 오기 전 의료진이 보호자에게 건넬 각종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 부모님과 나는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간신히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우리처럼 눈물범벅인 가족 세 명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삼 대 삼. 병원을 방문한 가족 수나 경황이 없기는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였다. 전쟁 속에서도 사랑과 우정이 피어난다더니. 절망적인 상황에서 순간 헛웃음이 지어졌다. 뒤이어 온 가족은 거울처럼 좀 전까지 우리 가족이 보였던 모습과 완벽하게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만 겪는 일이 아니구나. 어쩌면 생각보다도 흔한 질환인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에 어처구니없게도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정신과 입원실은 대체로 다른 병동과 달리 폐쇄돼 있어 폐쇄병동 또는 보호병동이라고도 불린다. 병동 전체가 철로 된 벽으로 막혀 있고 배우자, 부모, 형제 등 아주 가까운 가족만 면회를 할 수 있다. 면회 횟수, 주 면회자 등이 제한적이라 나는 가족이 입원 생활 중반에 접어들었을 때 딱 한 번 면회를 갔다. 면회 전 정해진 규칙에 따라 반입 제한 물품을 소지했는지 소지품 검사 절차를 거친다. 질환 특성상 환자가 자신 또는 타인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 보호자, 의료진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정해진 규칙이다. 정신과 병동이 폐쇄된 형태로 운영되는 이유도 안전한 치료를 위해서다. 환자가 타인과의 관계 등 외부 자극에서 벗어나 심신의 안정을 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료진의 허가를 얻어 보안이 해제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은 일반병동과 비슷하다. 간호사가 근무하는 스테이션이 있고 환자들이 생활하는 입원실, 의자 등이 마련된 널찍한 공용공간이 있다. 실내는 다른 병실보다 잘 정돈되어 있고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안전과 치료를 목적으로 규칙이 엄격하고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었기 때문으로 보였다.


병동 전체가 막혀 있고 정신 질환자에 관한 편견 때문에 ‘대체 저 안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질까?’라는 생각이 들기 십상이다. 부정적인 이미지에는 자신의 이익을 목적으로 권력을 오남용하고 의료진을 매수해 불법 입원을 자행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 탓도 있는 것 같다. 의료 조치가 불필요한 사람의 신체적 자유를 강제로 제한하고 의료진을 매수하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다. 한편, 나도 어렸을 때부터 어디선가 언덕 위의 하얀 집, 청량리 정신병원 같은 지극히 편견이 담긴 단어를 주워듣고 막연히 무서운 곳, 가면 안 되는 곳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내가 본 정신과 병동은 채광이 잘 되어서 생각보다도 밝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환자와 의료진(특히, 간호사 선생님, 레지던트 선생님) 사이에 교류도 많고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듯 보였다. 질환 특성상 상담치료 과정에서 성장배경, 가족관계 등 환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의료진과 나누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보호병동 특성상 간호사는 입원 중 생활 측면에서 환자들이 믿고 의지하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소한 요청이나 부탁은 모두 간호사 선생님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병동보다 환자와 간호사는 더욱 긴밀한 관계로 느껴졌다. 한마디로 그냥 사람 사는 공간이다.


정신과 병동에서 일어나는 풍경을 그린 웹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을 읽었다. 환자와 의료진을 특성에 따라 오리, 개구리, 곰 등 동물로 의인화해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정신병동에서 6년 간 일을 한 간호사의 시각이 담겨 있는데 그곳에서 생활하는 환자와 의료진 간 소통 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었다.


가족을 면회 갔을 때 많이 안정되었으나 말라서 앙상한 손 곳곳에 주삿바늘 자국이 눈에 띄었다. 열정이 넘치고 주관이 뚜렷한 아이가 약 기운 때문에 졸려서 눈은 게슴츠레하고 말은 어눌했다. 여러 약물 부작용을 토로했는데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져 생각이 잘 안 난다는 말이 가장 안타까웠다.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잠 잘 자고 밥 잘 먹고 의사, 간호사 선생님 말씀 따라서 약도 잘 먹고 치료 잘 받아서 얼른 퇴원하자고. 기다리겠노라고. 그동안에도 많이 보고 싶을 거라고.’ 말을 건네고 포옹을 했다. 병동 출입문 바로 안쪽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동생의 배웅을 받으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뗐다. 예쁘고 착하고 총명한 사랑하는 동생에게 왜 젊은 나이에 이런 고통이 찾아온 건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스러운 마음에 서글픈 눈물을 또 옷깃으로 훔쳤다.




조울증도 우울증처럼 우울증을 겪고, 우울증상태인 기간이 길기 때문에 오랫동안 두 질환을 헷갈려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질환을 감기에 빗대서 이해하고자 했다.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비유하니까.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조기에 치료하면 빠르게 호전될 수 있으므로. 그런데 가족이 겪고 있는 조울증은 감기보다는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에 더 가까워 보였다. 가족은 유전적인 영향은 아니지만 조울증은 일반적으로 유전적인 가족력이 발병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번 걸리면 재발률이 높고 매번 증상이나 상태가 달라진다. 그래서 괜찮아진 것 같아도 정기적인 의사 상담과 처방은 필수이다. 약 복용은 기본이고 스스로 수면과 식습관, 스트레스, 생활 관리도 필수이다.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평소 잘 관리하면 된다지만 자칫 방심하면 언제, 어떻게 급격히 안 좋아질지 알 수가 없다. 완치보다는 한번 발병하면 평생 관리 개념인 질병이다.


그렇기에 ‘나을 수 있어’, ‘기운 내 또는 힘내’라는 공허한 말은 건네지 않는다. 병을 앓고 치료하는 일이 의지대로 되지 않기에 오히려 마음의 상처와 자괴감만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너는 나에게 무척 소중한 사람이다. 네가 아프면 너무나도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 이 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빨리 회복하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 것 같다. 그런데 네가 더 잘 알다시피 조급한 마음은 회복에 별로 도움이 되질 않을 테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회복에만 전념해라. 지금 너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일이다.

백세 시대인데 다음 일은 그다음에 생각하자. 너는 재능이 많으니 분명히 길이 보일 거다. 나는 별로 염려하지 않는다. 

네 곁에는 언제든 무한히 지지하고 응원하는 가족들이 있다. 그리고 너는 존재만으로도 이미 우리에게 충분하다.

우리는 소울메이트니까 서로 같이 예쁘게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자.’


라는 진솔한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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