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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Nov 26. 2020

100% 천사 같은 착한 내 동생

우리 자매는 싸운 적이 없습니다

동생과는 두 살 터울이다. 자매들은 옷 때문에, 서로 고집을 부려서 티격태격 싸운다고들 생각한다. <응답하라 1988>의 보라와 덕선이도, <작은 아씨들>의 조와 에이미도 사소한 일을 계기로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웠다. 자매간 싸움은 언니 입장에서는 갑자기 동생이 말도 안 되는(?) 고집을 피워서 일어난다. 동생은 자신의 세계관에서 분명히 사정이 있어서 의견을 강하게 내세울 테다. 그런데 언니는 동생의 돌발 행동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서 무의미한 충돌이 발생한다. 어른이 된 후 돌이켜보면 왜 굳이 서로 감정을 상하고 분란을 만들었을까 싶은 대부분 사소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때는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었나 보다.


이렇게 자매 싸움의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고 있으니 나도 분명히 자라면서 동생과 한두 번은 다퉜을 텐데. 어쩐 일인지 싸운 기억이 안 난다. 이건 정말로 100% 천사 같은 동생 덕분이다. 동생은 아주 어렸던 4~5살 이후로 나에게 양보를 일삼았기에 동생의 고운 심성 덕분에 다툰 기억이 다 덮어진 것 같다. 아! 가족 행사에 두어 번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갔는데 서로 싫어했던 기억은 있다. 부모님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우리 자매에게 크기만 다른 똑같은 옷을 입히곤 하셨다. 특히 동생은 어릴 때부터 패션 스타일에 강한 개성과 고집을 보였다. 어느 날 가위를 들고 자신의 앞머리를 직접 잘라서 엄마는 엄청 놀랐다. 아마도 그 이후로 둘이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 학교 친구이자 친한 동네 친구 두 명과 집에서 486 컴퓨터로 게임을 하곤 했다. 도스에서 윈도우로 운영 체제가 바뀌고 인터넷, 세계화 개념이 등장하던 때였다. 링크를 타고 새로운 정보 페이지로 넘어가는 하이퍼링크 개념을 교과서에서 배웠을 때 ‘이런 게 정말 가능해?’라며 신기했다. 방과 후 컴퓨터 수업에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만드는 실습을 앞두고 친구들과 어떤 아이디를 만들지 서로 이미지에 맞게 추천을 해주기도 했다. 우리 집 컴퓨터는 명령어 기반인 막바지 도스 운영체제에 그래픽 기반인 윈도우 3.1을 탑재하고 있었다. 절친 두 명과 지금은 유물이 된 이 컴퓨터로 갤럭시, 방울방울, 너구리 게임 등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친구들과는 각기 같고 다른 중고등학교에 진학 후에도 집이 가까워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다. 다른 대학교에 진학을 한 후에도 계속 소식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청춘 시절을 지켜보며 성장했고 20년 넘게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이젠 삼십 대 중반 어엿한 사회인이자 어른이 된 세 명이 모였을 때 꼭 빼먹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내 동생 이야기다. ‘00도 잘 지내지? 이젠 길 가다 마주쳐도 못 알아볼 수도 있겠다. 00 진짜 착했잖아. 자기도 컴퓨터 게임하고 놀고 싶었을 텐데. 우리가 놀러 가면 언니들 하라고 바로 자리를 양보해주곤 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신기하다니까.’ 그렇다. 어린 마음에 컴퓨터 한 대를 두고 서로 하겠다고 하루가 멀다 하도 다퉜을 시절이다. 그런데 동생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미담을 만들었다. 이토록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심성을 가진 동생과 어떻게 다툴 수 있을까. 동생의 착하고 어진 성품은 더 이상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동생의 착한 성품은 천성이면서도 둘째로서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던 것 같다. 장자長子가 낳은 첫 번째 손주인 언니(나)는 대가족 환경에서 늘 주목받는 존재였다.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같이 살던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까지 온 가족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다. 부모님도 첫 번째 자식이니 시행착오가 큰 만큼 더 신경을 쓰며 애지중지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물리적으로는 혼자 떨어져 있더라도 늘 누군가가 나를 보호하고 지지하며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공기처럼 당연해서 가족의 사랑이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세상을 알아 갈수록 얼마나 축복받은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뼛속 깊숙이 깨닫고 있다. 어쩌면 동생은 둘째로서 부모님과 가족에게 관심을 끌고 인정받는 방법으로 착한 아이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익숙한 언니와 달리 말썽 피우지 않고 고집부리지 말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차별점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철저하게 첫째 위주로만 굴러왔는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동생과 싸운 기억은 없는데 다퉜다고 같이 야단맞은 기억은 있다. 분명히 둘이 싸우기는 싸웠나 보다. 부모님은 둘 중 어느 편도 들지 않고 똑같이 혼을 내셨다. 나는 언니라서, 동생은 동생이라서 혼이 났다. 언니로서 참고 동생을 포용하지 못해서, 동생으로서 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들었다는 이유였다. 어릴 때는 금방 자라니까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으면 동생은 형이나 언니의 옷이나 물건 등을 물려받는다고 들었다. 들었다고 표현을 했듯이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각자 소유물 개념이 확실해서 동생들이 내 물건을 물려받아서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부모님께서 몇 번 시도하셨던 것 같기도 한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내 생각을 접으셨다. 나는 부모님께서 우리 삼 남매에게 공평하고자 무척 노력하셨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동생이 마음의 병을 얻은 뒤 ‘엄마는 언니와 이야기할 때와는 달리 나와 대화할 때는 눈도 잘 마주치지 않잖아.’라고 진심을 토로했을 때 엄마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중에 이 말을 전해 들은 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둘 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인데 동생은 나보다 말수는 적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소극적인 성격은 아니어서 집이나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는 아이들은 아니었다. 나는 집에서는 사소한 일에도 엄살을 부리면서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했다. 반면, 동생은 소리소문 없이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편이라 ‘알아서 잘하니까’라고 믿었기에 부모님께서 관심을 덜 주셨을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 동생은 나와 달리 가족에게 감정이나 속마음을 많이 드러내지 않았던 것 같다. 동상이몽同牀異夢이라고 같은 상황과 환경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절절히 느꼈다.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고 넘겨짚어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부질없는 일인지를 깨달았다.



총 3개의 글로 구성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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