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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Nov 27. 2020

수능시험을 앞두고 폭탄선언을 하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부러운 아이

동생이 스스로 느낀 감정과 달리 나에게 동생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이였다. 마음이 선해서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착실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예쁜 데다가 공부까지 잘하는 아이를 누군들 아끼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동생은 만능 재주꾼이었다. 뛰어난 학업성적은 물론이고 피아노, 미술, 운동, 외국어, 독서 등 다 잘했다. 당연히 교우관계도 좋았다. 동생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난 부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한 번도 질투심을 느껴본 적은 없다. 그저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오히려 나도 더 잘해야겠다는 좋은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심지어 동생은 손재주까지 좋았다. 명절마다 오목조목 동생이 예쁘게 빚은 만두, 송편과 내가 만든 못생긴 음식은 늘 비교당하기 일쑤였다. 내가 동생보다 나은 건 키 하나밖에 없었다.


모든 배움에 빠르고 때로는 스스로 독학으로 터득하는 면을 보면 확실히 동생은 집중력이 좋고 두뇌가 비상한 것 같다. 이런 동생에게 암기 위주의 내신 공부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학교 공부를 그리 많이 하는 것 같지 않는데 늘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내가 그 정도의 성취를 거두려면 동생보다 몇 배는 더 책상머리에 거머리처럼 붙어있어야 했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는 비평준화 지역이라 고교입시시험이 있었다. 동생은 중학교는 달랐지만 고등학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입학을 희망했다. 무난하게(?) 성적 순위 1등을 기록한 동생은 입학식 때 전교생 대표로 입학 선서를 했다. 고등학교 3학년생들 틈에 서서 동생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은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던 폭탄선언을 날렸다. 수능시험을 몇 달 앞두고 갑자기 프랑스로 제빵 유학을 보내달라고 부모님을 필사적으로 조르기 시작했다. 고교 진학 후 학업성적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상위권이었다. 게다가 12년 정규 교육을 마무리 짓는 수능이 코앞이었다. 아무런 기미도 없이 제빵 유학이라는 너무나도 급격한 진로변경을 원하는 자식의 의견을 어느 부모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도 지금보다도 더 학벌이 중시되고 획일화된 교육이 당연했던 15년 전 대한민국에서. 가족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착실하고 말수가 적던 동생은 오랜 생각과 고민 끝에 절실한 심경으로 구조 요청을 보냈던 것 같다.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안타깝게도 동생의 생각은 수능을 앞둔 고3이 스트레스로 현실을 회피하고자 던진 충동적인 발언으로 치부되었다. 절실했던 요구는 거부당했다.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그해 동생은 여느 고3처럼 수능시험을 치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모님이 바랐던 대로 무난하게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에 합격을 했다.


동생은 대학생활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리엔테이션, MT 등 모든 학교 행사에 불참했고 강의는 갔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다. 자연스레 대학 내 아무런 인간관계도 맺고 있지 않았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이십 대 초반 몇 년 동안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어둡고 자유로운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아무도 동생에게 마음의 병이 찾아왔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십 대 내내 착하고 착실했던 만큼 뒤늦은 사춘기 방황기인 줄 알았다. 놓아두고 기다리면 자신 본연의 모습을 찾아 돌아올 줄 알았다. 스스로도, 가족들도, 주변 사람들도 모르게 동생에게 드리운 악마의 그림자는 짙어져만 갔다. 대학은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결국 자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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